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범어와 한역 다름 살피며 더 깊어지는 금강경

  • 불서
  • 입력 2021.10.12 10:46
  • 호수 1604
  • 댓글 2

금강경 원형 해당하는 범어본 번역 후 한역본과 일일이 대조
한문으로 전환되는 과정서 누락되거나 오역된 내용 바로 잡아
인도 사상과 문화적 배경에 대한 설명으로 원전 의미 되살려

산스끄리뜨 금강경 역해
현진 역해 / 불광출판사
480쪽 / 2만8000원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현진 스님의 이 책은 자의적 혹은 타성적으로 받아들이는 ‘금강경’ 이해를 벼락 같이 잘라내며 무유정법 무상정등각의 금강경 세상으로 이끈다.법보신문 자료사진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현진 스님의 이 책은 자의적 혹은 타성적으로 받아들이는 ‘금강경’ 이해를 벼락 같이 잘라내며 무유정법 무상정등각의 금강경 세상으로 이끈다.법보신문 자료사진

번뇌의 뿌리를 잘라내는 지혜의 칼 ‘금강경’은 가장 폭넓게 읽히는 대중적인 경전이기도 하지만 해설서가 유독 많다. 매년 출간되는 ‘금강경’ 해설서는 10여종, 여기에 개정판과 전자책까지 포함하면 20여종에 이르며, 서점에 유통되는 ‘금강경’ 관련 서적도 200종이 넘는다. 대부분 스님이나 불교연구자가 쓰는 여느 경전들과 달리 ‘금강경’은 소설가, 시인, 법조인, 명상가, 과학자, 경제인, 사회활동가 심지어 목사가 쓴 해설서까지 있다. ‘금강경’이 지니는 파격성과 열린 해석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지만 동시에 ‘금강경’에 대한 이해가 본래 취지와 크게 동떨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동아시아 최고의 경전 중 하나로 꼽히는 ‘금강경’은 오랜 세월 한문을 통해 이해돼 왔다. 402년 구마라집 스님을 시작으로 보리류지, 진제, 달마급다, 현장, 의정 스님 등에 의해 꾸준히 번역되며 ‘금강경’은 급격히 확산됐다. 그럼에도 표의문자인 한자의 특성과 문화적 차이로 명료한 번역은 쉽지 않았고 그로 인해 가중된 해석의 혼란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20세기를 거치며 ‘금강경’은 원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901년 동투르키스탄에서 범어(Sanskrit) ‘금강경’ 사본 일부가 발견된 후 1931년 지금의 파키스탄 카슈미르 북서부에 위치한 길기트에서 ‘금강경’ 사본을 찾아냈다. 또 1990년대 초 아프가니스탄 바미얀 계곡 동부에서 ‘금강경’ 필사본이 발견됨에 따라 완전본에 가까운 범어 ‘금강경’ 복원이 가능해진 것이다.

남양주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현진 스님의 ‘산스끄리뜨 금강경 역해’는 오랜 세월 해석이 분분했던 ‘금강경’의 진의를 오롯이 살펴볼 수 있는 역작이다. 1996년 봉선사 조실 월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스님은 불교원전 언어를 두루 익힌 학승이다. 중앙승가대 역경학과에서 공부하고, 인도 푸나에서 8년간 범어와 팔리어를 수학했다. ‘중국정사조선열국전’ ‘치문경훈’을 비롯해 ‘산스끄리뜨문법’ ‘빠알리문법’ ‘담마빠다-고려가사·한문·빠알리어로 읽는 게송과 배경담’ 등을 편역·집필했을 정도로 한문과 범어 모두에 정통한 불경언어의 고수다.

산스끄리뜨 금강경 역해
산스끄리뜨 금강경 역해

‘산스끄리뜨 금강경 역해’는 스님의 안목과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이는 범어와 한문에 두루 밝아야 하고 인도고대문화와 중국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없이는 애초 불가능한 일이다. 스님은 ‘금강경’의 원형에 해당하는 범어본을 번역한 후 한역본과 일일이 대조해 완역했다. 범어에서 한문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누락되거나 오역된 내용은 바로 잡고, 당시 원전의 뜻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인도 사상과 문화적 배경에 대한 풍부한 해설을 덧붙였다. 범어 원문에다 구마라집과 현장 스님의 한문본까지 함께 수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역경승들의 고민과 그것이 어떻게 한문 ‘금강경’에 투영됐는지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설명도 돋보인다.

‘금강경’에 자주 등장하는 상(相)은 한역본으로만 이해하기 어려운 대표적인 사례다. 범어 원문에서는 ‘상’에 해당하는 단어가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인지되거나 감지된 결과물로서의 표시는 락샤나(lakṣaṇa), 정신적으로 세밀하게 가늠한 것은 니미타(nimitta), 기억이나 경험, 혹은 타인의 설명으로 보완함으로써 안다고 여기는 것은 산즈냐(saṁjñā)가 그것이다. 그럼에도 번역자들에 따라 동일한 ‘상’으로 옮겼고, 이로 인해 문맥을 오해하는 상황도 벌어지게 됐다.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의 사상(四相)에 대한 해석도 범어본과 한역본은 확연히 다르다. 아상은 고대 인도 브라만교에서 고정불변의 실체인 아트만(ātman)이 존재한다고 여기는 생각, 중생상은 브라흐만과 합일돼 절대 상태로 돌아가지 못한 채 이 세간에 전변체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믿고 이를 참이라 여기는 생각, 수자상은 자이나교의 지와(jīva)를 고정불변의 실체로 여기는 생각, 인상은 불교의 한 부파인 독자부(犢子部)에서 행위의 주체 또 윤회의 주체로 뿟갈라(pudgala)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여기는 생각이라고 말한다. 이렇듯 ‘금강경’은 당시 불교계 안팎에서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는 실체론을 전면 비판하고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인 무아법으로의 회귀라는 목적성을 염두에 두고 펼쳐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강경’은 중국에 이르러 자신들에게 생소한 아트만이라는 개념에 국한되지 않거나 심지어 그것을 생략해버린 채 그저 ‘상을 버려라!’로 표현을 전환함으로써 상, 자아, 중생에 국한되지 않고 일반화된 상태로 전개됐다. 결국 ‘그 어떤 것도 무엇이라 할 만한 고정불변의 실체를 지닌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동아시아에 정착하게 됐다. 상을 없애자는 무상은 고정불변의 실체가 있다는 생각을 없애자는 무아상의 변질이 아니라 일반화를 통한 발전이라는 게 스님의 설명이다.

스님은 한역본에 등장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모든 상을 없애라는 세존의 가르침으로 무아법을 일컫는다고 말한다. 무아법은 더 이상의 것이 없는 최상의 깨달음이요, 해탈로 나아가기 적절한 깨달음이며, 앞서 수행을 완성한 이들의 깨달음과 같이 완벽한 깨달음이란 의미라는 것이다. ‘금강경’을 일상적으로 수지독송하면서도 ‘참나’ ‘주인공’ ‘진아’ 등 용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한국불교계에 많은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수많은 의미가 씨줄과 날줄처럼 엮인 불경에서 무엇을 움켜쥘지는 전적으로 개념이해와 해석에 달려 있다. 이 책은 자의적 혹은 타성적으로 받아들이는 ‘금강경’ 이해를 벼락 같이 잘라내며 무유정법 무상정등각의 ‘금강경’ 세상으로 이끌어준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604호 / 2021년 10월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