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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제82칙 덕산상당(德山上堂)

납자 질문 전에 행한 덕산방은 언어유희 경책

표출된 질문‧답변 사이 형성된
상징적 상관성을 보여준 공안
억지로 질문하는 찰나 개념 형성
개념 매이면 나아가지 못함 설파

덕산화상이 어느 날 상당하여 말했다. “질문하면 곧 허물이 있고, 질문하지 않으면 또한 어그러진다.” 승이 나와서 예배를 하자마자, 덕산이 갑자기 때려주었다. 승이 말했다. “제 이야기는 아직 질문도 꺼내지 않았는데, 어째서 갑자기 저를 때리는 것입니까.” 덕산이 말했다. “그대가 입을 연다고 해서 무엇을 감당하겠는가.”

덕산선감(德山宣鑒 : 780-865)의 시호는 견성대사(見性大師)인데 덕산방(德山棒) 임제할(臨濟喝)이라는 말처럼 교화수단으로 방(棒)을 활용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공안에서 문답은 수단이면서 수단으로 그치지 않고 목적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문답이 있는 곳에 선이 있고 선이 있는 곳에 문답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것이야말로 선의 문답이라는 의미이지 선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논의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묻고 답하는 그것으로 시작하고 끝이 난다.

본 문답에서는 바로 그와 같은 상황에서 매개체의 역할을 맡고 있는 수단으로서 언설로 표출되어 있는 질문과 답변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상징적인 상관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 공안이다. 덕산이 말한 ‘질문하면 곧 허물이 있고, 질문하지 않으면 또한 어그러진다’는 억지로 질문하는 찰나에 그 개념이 형성되고 그 개념에 얽매이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치를 설파한 것이다. 그렇다고 아예 질문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또 주와 객이 만나서 문답하는 상황에서 보면 참으로 곤혹스러운 장면이 연출되고 만다.

납자는 덕산의 설법을 듣고 묻고 싶었던 점이 있었다. 여법하게 질문하기 위하여 선지식 앞으로 나아가서 예배를 드리고 질문하려는 찰나에 전혀 예기치도 못하게 덕산으로부터 한 방 얻어맞고 말았다. 그러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지만, 납자에게는 대단한 오기가 있었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다. 곧 자신이 궁금한 점에 대해서는 미처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고 미리 부정해버리느냐는 질문이다. 그것이 바로 갑자기 얻어맞은 이유를 항변하면서 은근하게 내뱉은 질문이기도 하였다.

이에 대하여 덕산은 제법 선기가 엿보이는 납자를 향해서 엎어진 놈의 뒤통수를 한 방 더 걷어차는 격으로 더욱더 매몰차게 쏘아붙인다. ‘그대가 입을 연다고 해서 무엇을 감당하겠는가’라는 말은 이처럼 벌써 덕산 자신한테 얻어맞고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느냐는 것이다. 한 방 얻어맞는 찰나에 예배를 한다든가 질문을 한다든가 하는 행위가 깡그리 부정되는 이치를 알아차리지 못했느냐고 되묻는 것이다.

일단 납자의 언설을 통해서 질문으로 제기된 상황이 되면 어찌되었건 간에 덕산은 그에 답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부정을 하건 긍정을 하건 긍정도 부정도 아닌 어정쩡한 답변을 하건 모두 본질로부터 벗어나버리고 만다. 왜냐하면 진즉부터 의기투합했다면 질문하기 이전에 이미 답변해주는 것만 못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덕산은 아예 납자로 하여금 질문하는 것 자체를 부정해버리는 행위로써 썩 훌륭하게 답변해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납자가 입을 열어 제아무리 미주알고주알 온갖 질문을 해도 공허한 언어유희에 불과하다는 것을 일러준 것이었다.

덕산은 납자가 감당하지 못하는 것을 일러주기보다는 차라리 납자 자신의 허우대를 들이밀어 주장자를 얻어맞는 것으로써 덕산의 선기를 감당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그나마 낫다는 점을 연출하고 있다. 납자는 덕산의 그 말에 대하여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고 조용히 자기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이것으로 그 상황은 더 이상 주객의 분별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것으로 문답은 끝이 났다. 그렇지 못하고 본격적인 질문이 무엇이고 또 답변이 무엇인가 여기에서 따질 것은 없다. 다만 납자 자신이 덕산의 가르침을 어떤 모로든지 감당할 수 있는 것을 확인했다는 것만으로도 제법 위로를 받는다면 그것으로 제법 훌륭한 법거량을 마친 것이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604호 / 2021년 10월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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