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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 논란 제주 근대불교사 쟁점 재조명

  • 교학
  • 입력 2021.10.22 22:10
  • 수정 2021.10.24 16:00
  • 호수 1606
  • 댓글 0

봉려관불교문화연구원, 10월16일 제주 휘슬락호텔 세미나장서
봉려관 스님 새 행적 소개하고 무오년 법정사 항일운동 집중 탐색

왜곡 논란이 있는 제주 근현대불교사 쟁점을 재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열려 이목이 집중됐다.

봉려관불교문화연구원(이사장 효덕·원장 혜달 스님)가 10월16일 제주 휘슬락호텔 세미나장에서 ‘근대제주불교 역사 그리고 그 진실을 찾다’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다. 이 자리는 그간 한국불교사에서 크게 조명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최근 역사왜곡 논란이 있는 제주 근대불교 쟁점을 집중 탐색하고자 마련됐다.

첫 주제발표에 나선 이성수 동국대 박사(불교신문 기자)는 일제강점기 언론(매일신보·동아일보·조선일보·조선중앙일보) 보도에 나타난 봉려관 스님의 새 행적을 찾아냈다. 특히 1918년 3월2~3일 봉려관 스님이 언론에 첫 등장한 ‘매일신보’ 내용을 언급하며, “전국으로 배포되는 중앙 언론이 지리·문화적으로 소외됐던 제주도에, 더구나 여성에 대한 인식도 높지 않았던 시기, 봉려관 스님을 이렇게 비중있게 다룬 건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박사에 따르면 봉려관 스님은 일제강점기 불교 포교만이 아니라 구제 활동과 교육 사업에도 앞장섰다. 1925년 제주도민이 흉년으로 고통 받자 스님은 제주기근구제회 집행위원을 맡아 활동했다. 또 제주지역 학생들이 지리적·경제적 어려움으로 진학에 어려움을 겪자 1930년대 중반부터 교육 사업에 나섰다. 이날 봉려관 스님이 김근기 제주불교협회장, 안도월 스님과 함께 1만원을, 해남 대흥사가 1만원을 학교 건립기금으로 출연해 제주중학강습원이 설립됐다는 사실도 새롭게 드러났다.

이 박사는 “언론에 비친 봉려관 스님은 자신의 소신과 결단으로 출가했고, 전법과 더불어 제주 근대화를 이끈 ‘적극적인 비구니’였다”면서 “그럼에도 정부, 지자체, 불교계 등에서 봉려관 스님을 무녀로 왜곡 표기하는 사례가 있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 발표자로 나선 안후상 노령역사문화연구원 이사장은 “‘무오년 법정사 항일운동’을 주도한 세력이 불교계가 아니라 불교인으로 위장한 보천교도, 즉 신흥종교인들”이라고 주장했다.

안 이사장에 따르면 1910년대 강증산 계통의 신종교가 전국으로 확산됐고, 1920년대 초반 제주 인구 절반이 보천교도였으며, 일제가 보천교금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때문에 “제주도민이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법정사 항일항쟁’은 ‘보천교의 난’이며 이들이 일제 탄압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불교인으로 위장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 이사장은 “특히 법정사 주지로 알려진 ‘김연일’이라는 인물은 보천교 문헌에 음양, 복서, 점술에 능한 ‘술사’로 기록돼 있다”면서 “보천교의 후천선경 신정부 건설운동을 전개하며 강증산 가르침과 풍수지리 등의 ‘도술’을 수단으로 제주도민을 끌어 모은 스님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러나 ‘법정사 항일운동’이 무오년(1918) 봉려관 스님이 창건한 제주 법정사에서 스님과 신도들이 일으킨 항일운동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1919년 3·1운동보다 5개월여 전 봉기한 독립운동이지만 그간 ‘보천교의 난’으로만 인식돼 연구가 활발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1991년 김봉옥 제주향토사학자(1923~2002)가 국가기록원에 소장돼 있던 ‘정구용 재판기록 판결문’을 발견하면서 불교 지도자들이 이곳에서 일제 제국주의에 맞서 항일운동 전개한 곳이라 알려지기 시작했다.

안 이사장 주장에 논평자로 나선 쌍계암 주지 상민 스님은 “제주도민 절반이 보천교도였다면 어떻게 변변한 도관 하나 남아있지 않고, 보천교가 법정사 항일운동의 주체였다면 왜 부처님이 모셔진 법정사에서 운동을 전개했냐”고 반박했다. 2014년까지 서귀포시청에 근무했던 상민 스님은 재직 당시 김봉옥 제주향토사학자로부터 ‘수형인 명부’ 사본을 건네 받아 후손 50여명을 찾아다니며 구술을 채록했다. ‘보천교의 난’으로 알려져 있던 사건을 ‘법정사 항일운동’으로 바꾼 장본인이기도 하다.

스님은 “무엇보다 후손들 증언 가운데 자신의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가 보천교도였다는 분은 단 한 분도 없었다”면서 “못들었다고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객관성이 담보된 재판 기록이 있으니 이를 우선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술사’는 당시 관상과 터를 볼 줄 아는 사람을 의미했고, 당시 많은 스님들이 신도를 위해 이러한 소양을 갖췄었다고 덧붙였다. 특히 “보천교가 항일운동에 주체였다면 보천교도 박주석이 왜 거사(항일항쟁)가 있기 한 달 전에서야 참여를 했겠느냐”고 꼬집으며 “법정사 항일운동은 불교계가 주도한 운동이 맞다”고 강조했다.

이날 혜달 스님은 “제주 법정사는 봉려관 스님이 1909년 해남 대흥사 심적암에서 일본군에 급습 당한 스님과 의병들의 참사를 목격하고서 짓게된 사찰”이라며 “봉려관 스님을 제외하고는 법정사도, 무오년 항일운동을 언급할 수 없으나 정작 유구가 남아있는 절터에 가보면 안내판에 봉려관 스님의 행적이 다 지워져 단 한마디도 언급돼 있지 않다”고 강하게 문제 제기했다. 이어 “구술이든 문헌이든 분석 교차 검증을 통해 스님의 행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제주 근현대불교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옥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장도 고개를 끄덕이며 “항일 여성운동사 100주년에 비구니 스님들이 나서지 않아 아쉬움이 있었는데 봉려관 스님이 새 연구를 열어준 것 같다”면서 “2012년 제주 독립운동가를 조사하면서 제주 여성들이 깨어있고 실천성이 강하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제주여성 정체성을 찾아가는 데 불교가 새롭게 조명 될 것 같다”고 전했다.

김창식 탐라성보문화원(제주도의회 교육의원)은 “이제야 제주불교 역사가 밝혀지는 것 같다”면서 “무오년 법정사 항일운동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독립운동이기에 대한민국 이슈가 되기에 충분하지만 그러지 못해 안타깝다. 오늘 토론을 바탕으로 우리 문화원에서도 제주역사를 면밀히 살펴보겠다”고 전했다.

두 사람의 주제 발표에 앞서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4·3뿌리, 자주정신과 항일의 사력’을 주제로 기조 발표를 했다. 사회는 김진희 사단법인 탐라성보문화원 기획부장이 맡았으며, 종합 토론은 허남춘 국립제주대 국문과 교수를 좌장으로 진행됐다. 두옥문도회 스님들과 이석문 제주 교육감 부인 송영옥 씨 등 사부대중 50여명이 참석했으며, 이날 독립운동가이자 한국 여의사 1호였던 고수선(1898~1989) 선생의 자제 김률근 광복회 제주지부장도 자리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학술대회는 그간 잘 부각되지 않았던 근현대 제주불교사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다만 사료나 발굴조사 등 역사 고증이 부족해 일부 사실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학계나 종단, 제주지역 차원에서 근현대 제주불교사를 위한 심도 있는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무오년 법정사 항일운동 발상지. 
무오년 법정사 항일운동 발상지. 

제주=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606호 / 2021년 10월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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