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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전 대통령과 한국불교

기자명 법보
  • 사설
  • 입력 2021.11.01 11:11
  • 수정 2021.11.02 14:48
  • 호수 1607
  • 댓글 2

금강경 품었던 신심 깊은 불자 대통령
전법 새 지평 연 불교방송 개국 ‘선물’
18만장 분량 서명인 첨부 사면 청원
무상·무아 알았다면 ‘용서 구했을 것’

‘12·12 쿠데타·6·29 선언’의 주역이자 ‘보통사람’을 내건 첫 직선대통령 노태우 전 대통령(이하 노태우)이 10월26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유족 측은 이날 “아버지께서 평소에 남기신 말씀”이라며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그럼에도 부족한 점 및 저의 과오들에 대해 깊은 용서를 바란다. 내 생애에 이루지 못한 남북 평화통일이 다음 세대들에 의해 꼭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저의 과오들’에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강제진압이 함축됐음은 알겠다. 그러나 직접 용서를 구할 기회가 생전에 충분했음에도 이를 외면했으니 적어도 광주시민은 ‘사죄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진보단체들이 일제히 ‘노태우 전 대통령의 국가장’을 반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간과할 수 없는 건 ‘저의 과오들’에 10·27법난은 포함돼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군홧발로 불전을 짓밟았던 1980년의 10·27 법난 7년 후인 1987년 대선은 불자 노태우·장로 김영삼·가톨릭 신자 김대중 3파전으로 전개됐다. 어머니가 파계사 신도회장을 지낸 불자 집안의 노태우 역시 “출퇴근 할 때마다 차 안에서 금강경 독송 테이프를 듣는” 신심 있는 불자였다. 그래서일까? 김영삼·김대중 두 후보와 달리 그는 불교방송국 개국이라는 공약을 내걸었다. 

김영삼·김대중 단일화가 결렬되며 노태우가 당선됐고, 노태우 재임 때인 1990년 5월1일 불자들의 숙원불사였던 BBS불교방송이 개국했다. 이와 함께 중앙승가대 정규대학 인가도 노태우가 불교계에 안긴 ‘선물’이었다. 그러나 관점에 따라 ‘선물’을 넘어 ‘업적’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전파를 통한 전법의 새 지평을 여는데 지대한 역할을 한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전두환·노태우가 수감(1995.11)된 2년 후인 1997년 2월 조계종 중앙종회 수뇌부 5명의 스님이 안양교도소(전두환)와 서울구치소(노태우)를 찾았다. 노태우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108배와 금강경을 보면서 지낸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에 대한 ‘미안하다’는 것인지 구체적 설명이 없는 것으로 보아 ‘면목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불교서적을 전달한 5명의 스님들은 “순수포교 차원에서 면회한 것”이라고 했다.

그로부터 5개월 후인 7월 불교계는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사면 청원서’를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했다. 279만6558명의 서명인 명부를 첨부했는데 18만장 분량으로 45상자 한 트럭분이다. 조계종 종정을 역임한 혜암·법전 스님을 비롯해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54명, 태고·천태·진각종 등의 각 종단 원로 스님들이 서명했다. 5개월 후인 1997년 12월 두 전직 대통령은 사면됐다.

노소영씨가 밝혔듯이 노태우는 2010년 기독교로 개종했다. 2년간의 수감생활 동안 “성경을 2번 독파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옥중에서 ‘금강경’과 ‘성경’을 읽었던 노태우는 부처님이 아닌 하나님 품에 안겼다. 개종 1년 후 2011년 출간한 회고록에서 10·27법난은 “자신이 지시했다”면서도 끝내 참회만은 하지 않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국가장’에 대한 날선 비판의 목소리가 불교계에서 나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별세 소식과 함께 불교방송 개국의 감동이 새삼 밀려와서일까? 아니면 ‘저의 과오들’에 10·27법난도 함축돼 있다고 믿거나 믿고 싶은 것일까? 조계종 전 총무원장 월주 스님의 회고록 ‘토끼의 뿔과 거북의 털을 구하러 다녔소’에 그 실마리가 있을 듯싶다.  

‘요즘 노 전 대통령은 건강이 좋지 않고, 자녀들의 영향으로 개신교에 가까워졌다는 얘기도 들린다. 무엇을 믿든지 그것을 탓할 이유도, 생각도 없다. 그러나 최근 법난 31년 만에 비로소 자서전을 통해 “내가 불교정화를 지시했다” “불교를 너무 아껴 그랬다”는 얘기를 들으니 불교인의 한 사람으로 어이가 없다. 독실했던 불교신자의 입장에 현대 불교사 최대의 수난을 저지른 것을 오랜 시간 마음에 담고 있었으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측은지심도 생긴다.’

출퇴근 때 테이프로 듣고, 수감 중에도 108배하며 읽은 ‘금강경’을 관통하는 ‘무상·무아’를 제대로 알았다면 광주와 불교계에 용서를 구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씁쓸한 아쉬움이 남는다.

[1607호 / 2021년 11월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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