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기 신앙 위한 외세 개입 요청 정당한가

가톨릭의 천진암(天眞庵) 성지화 추진 등이 지닌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법보신문 이병두 ‘가톨릭의 원죄’, 진원 스님 ‘무례한 가톨릭’, 수경 스님 ‘역사를 지운 현장, 천진암을 다녀오다’ 참조) 한 종교가 자신의 종교 역사에 중요한 현장을 성지로 선포하는 것이야 밖에서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다른 종교에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리고 그 성지화라는 것의 배경에는 정말 가볍게 넘길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거의 모든 가톨릭 성지라는 곳은 조선왕조의 가톨릭 박해로 인한 순교의 현장이다. 가톨릭 박해로 인해 순교한 이들이 ‘성인’으로 시성(諡聖)되었고, 그들이 순교한 곳이 성지로 지정되는 것이다. 한국에는 103명이 로마 가톨릭 성인으로 시성되었고, 그들은 모두 조선왕조 때 박해를 받아 순교한 이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을 성인으로 받든다면 그들을 박해하여 죽인 조선왕조는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런 박해를 한 우리의 역사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박해를 받아 죽은 이들이 성인이니, 그들을 죽인 왕조는 ‘악(惡)’이요, 그런 우리의 역사는 ‘악’으로 점철된 역사로 평가되어야 하는가? 그 역사의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로서는 매우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물론 가톨릭에서 그렇게 규정했을 것 같지는 않다. 단지 그 종교의 입장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신앙을 지킨 측면을 높이 사서 시성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 시성은 객관적 역사와 일정한 관계를 지니고 있기에 단지 자신들 종교 안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오로지 자신들의 종교에 대한 투철한 신앙의 측면만을 부각시킨다면 정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자신들의 신앙을 펴기 위해 다른 종교를 해치는 행위를 한 것도 인정되어야 하는가? 신앙심이라는 이름 아래 범죄적 행위를 한 것은 어찌 보아야 하는가? 물론 가톨릭의 시성에는 엄격한 심사 절차가 따르기에 이런 일이 벌어질 위험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꼭 그렇게만 볼 일도 아니다. 103명을 시성했다면 그들의 순교가 종교를 떠난 객관적 시각 속에서 어떠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가톨릭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이 그 역사를 잇고 있는 우리 국민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아닐까 싶다. 유교 이념을 국가의 기초로 삼던 조선왕조에서 제사를 거부하는 등의 종교행태는 국가의 기본을 어지럽히는 일이었고, 탄압을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이 대규모의 처형을 정당화시키는 것은 아니겠지만, 박해 자체를 무조건 악으로 규정할 수도 없을 것이다.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현대의 잣대를 과거의 역사에 들이대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러한 문제점들이 모두 드러나는 것이 가톨릭을 박해하는 조선을 쳐 달라고 요청하는 백서(帛書) 사건으로 유명한 황사영의 시복(諡福; 로마 가톨릭에서 어떤 사람을 ‘복자’로 인정하는 것) 문제이다. (한국 가톨릭에서 로마 교황청에 시복 신청을 했고 지금 심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서 반역적 행위가 분명한 백서 사건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는 가톨릭 안에서도 논의가 많다. 그런 이를 시복하고 나중에 시성까지 한다면, 국가보다 신앙이 중요하다는 관점, 신앙을 지키기 위해 외세의 개입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관점을 강요하는 것이 된다. 적어도 가톨릭 신자에게는 그럴 것이요, 타종교인이나 일반 국민들은 그러한 관점을 받아들이라고 요구받는 것이다. 그 관점이 옳은지 그른지를 떠나서, 이렇게 진행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한국 가톨릭계에서도 심사숙고한 끝에 이루어진 일이겠지만, 그것이 단지 가톨릭 안에서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한번 분명히 인식해 주기를 바란다. 그리도 천진암 성지화 문제 등에도 자신의 신앙만을 중시하는 독선적 관점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한번 돌아보기를 바란다.

성태용 건국대 명예교수 tysung@hanmail.net

[1607호 / 2021년 11월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