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에는 게송 한 구절을 듣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던진 설산동자 얘기가 나온다. 부귀영화를 버리고 산중에서 정진하던 동자는 우연히 나찰이 읊는 “제행무상(諸行無常)하니 시생멸법(是生滅法)이라”는 게송을 들었다. 세상 모든 게 덧없으니 이것이 나고 죽는 법이라는 말이었다. 동자는 기쁨에 겨워 그 다음 구절을 들려달라고 간청했다. 나찰은 배가 아주 고프니 대신 당신의 몸을 먹을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동자는 선뜻 응했다. 나찰은 “생멸멸이(生滅滅已)이면 적멸위락(寂滅爲樂)이니라”라고 했다. 나고 죽는 것이 사라지면 이것이 고요한 열반의 기쁨이라는 의미였다. 동자는 환희에 겨워하며 곧바로 절벽에서 뛰어내렸고, 그 순간 나찰은 원래 모습인 제석천으로 돌아가 동자를 구해줬다는 얘기다.
간단한 스마트폰 검색으로도 방대한 지식을 알 수 있는 시대에 설산동자 얘기는 감흥을 줄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우리는 지혜롭고 설산동자는 어리석다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부처님을 비롯한 수많은 성현의 말씀을 쉽게 접하지만 그 지식이 나에게 참다운 이익과 행복을 가져온다고 할 수 있을까. 세상에 둘도 없는 영약을 먹고도 전혀 소화하지 못한 채 배설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것은 아닐까.
‘가슴을 적시는 부처님 말씀 300가지’는 잔치국수 들이키듯 후루룩 읽고 덮을 책이 아니다. 단단한 돌에 글을 새기듯 정성스레 끊임없이 되새기고 음미해야 할 성스러운 말씀이다. 대구 파계사 주지 성우 스님과 번역자인 지현 스님이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불경과 선어록을 가까이하며 찾아낸 금쪽같은 통찰의 언어들이다. 원래의 의미를 다치지 않고도 현대인들이 읽기 좋도록 솜씨 좋게 다듬은 데에는 두 스님 모두 시인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을 듯싶다.
‘지나간 과거에도 매달리지 말고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기다리지도 말라. 오직 현재의 한 생각만을 굳게 지켜라. 그리하여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진실하고 굳세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하루를 살아가는 최선의 길이다.’(법구경) ‘사람은 사람을 의존하고 사람은 사람을 구속한다. 사람은 사람으로부터 해를 당하고 사람은 사람에게 해를 입힌다.’(장로게경) ‘철없는 아이가 수면에 비친 달을 건지려고 하는 것을 보고 어른은 웃는다. 무지한 사람은 달을 건지려는 어린아이와 같다. 그는 이 모든 것을 영원한 실재라고 생각하며 자기 자신은 언제나 늙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을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대지도론) ‘황금이 소나기처럼 쏟아질지라도 사람의 욕망을 다 채울 수는 없다. 짧은 쾌락에 사람의 욕망은 갖가지 고통을 수반한다.’(법구경)
여기에 소개된 300가지 부처님 말씀은 진실하고 수승한 언어들이다. 게송 한 구절을 얻기 위해 생명까지 바치고자 했던 설산동자의 간절함을 떠올리며 읽고 암송한다면 이 책은 괴로움을 뿌리를 끊어내고 한없는 평안함을 선사할 것이 분명하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609호 / 2021년 11월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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