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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미하엘 엔데의 ‘모모’ 

기자명 박사

현재를 사는 행복은 결코 어렵지 않다

작지만 단단한 모모의 공동체
비양심 회색신사로 인해 파괴
시간의 꽃 찾아 현재 행복 회복
지금이 아니면 행복 찾지 못해

모모

우리는 늘 시간이 없다. 해야 할 일은 넘치고, 하고 싶은 일을 벌일 여유는 빠듯하다. 정신 차리고 돌아보면 하루, 한 달, 한 해가 쑥쑥 지나가고 정신 차리고 고개 들어보면 어느 사이엔가 계절을 건너 인생의 한 시절이 사라지고 있다. 손가락 사이로 시간이 술술 새나가는 느낌은 비유라기에는 지나치게 생생하다. 시간을 돈처럼 불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효율적 시간관리, 시테크 기술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시간’에 대한 부처님의 생각은 명료했다. ‘맛지마니까야’의 ‘지복한 하룻밤 경’은 부처님의 말씀을 이렇게 전한다. “과거를 돌아보지 말고 미래를 바라지 마라. 과거는 떠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다. 현재 일어나는 현상들을 바로 거기서 통찰한다. 정복당할 수 없고 흔들림이 없는 그것을 지혜 있는 자 증장시킬지라. 오늘 정진하라. 내일 죽을지 누가 알리오? 죽음의 무리와 더불어 타협하지 말라. 이렇게 노력하여 밤낮으로 성성하게 머물면 지복한 하룻밤을 보내는 고요한 성자라 하리.”

이 말씀을 모모가 살던 마을의 사람들이 먼저 들었다면, 회색신사 무리의 꼬드김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었을까? 어느 날 작은 마을의 후락한 원형극장에 나타난 고아소녀 모모는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무너져가는 작은 방에 자리를 잡는다. 사람들은 곧 모모의 특별한 능력을 알게 된다. 이야기를 성심성의껏 잘 들어줌으로써 말하는 사람 내면에 이미 있는 지혜를 저절로 일깨우는 것이다. 모모는 마을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다. 

그렇게 작지만 단단하게 쌓은 모모의 공동체는 회색 신사들이 나타나면서 무너진다. 그들은 마을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찾아가 그들이 어떻게 현재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지 계산해서 보여주고 그 시간을 아껴 시간은행에 저축하면 미래에 이자까지 얹어서 주겠다며 영업한다. 그럴듯한 꾀임에 넘어간 이들은 한가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줄이고 줄여 정신없이 바쁜 생활로 돌입한다. 사람들 사이의 인간적인 교류는 없어지고, 모모를 찾아오는 사람 또한 줄어든다.   

회색인간 무리는 양심적으로 은행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서 갈취한 시간의 꽃을 말려 만든 시가를 피우며 삶을 유지하는 이상한 존재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업’에 방해가 되는 모모를 없애려한다. 모모는 시간을 관장하는 세쿤두스 미누티우스 호라 박사를 만나 시간의 비밀을 알게 되고, 거북이 카시오페이아와 함께 회색인간들을 물리친다. 냉동창고에 갇혀있던 시간의 꽃이 사람들에게 돌아오면서 사람들은 다시금 행복한 ‘현재’를 살게 된다. 

현재를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작가는 그 풍경을 이렇게 묘사한다. “아이들이 길 한복판에 나와 놀고, 아이들이 비키길 기다릴 수밖에 없는 운전자들은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차에서 내려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사람도 있었다. 어디서나 사람들이 서서 다정하게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안부를 자세히 물었다. 일하러 가는 사람도 창가에 놓인 꽃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거나 새에게 모이를 줄 시간이 있었다. 의사들은 환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정성껏 돌볼 시간이 있었다. 노동자들은 일에 대한 애정을 갖고 편안하게 일할 수 있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가능한 한 짧은 시간 내에 가능한 한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저마다 무슨 일을 하든 자기가 필요한 만큼, 자기가 원하는 만큼의 시간을 낼 수 있었다.”

꿈같은 이야기다. 거의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현재를 사는 행복이 어렵지 않을 뿐더러 심지어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부처와 스승들은 힘주어 말한다. 틱낫한 스님은 “지금 이 순간 그대로 행복하라”는 소박한 문장으로 진리를 설파한다. 지금 여기가 아니면 우리가 어디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과거는 이미 가버렸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는데.

박사 북칼럼니스트 catwings@gmail.com

[1610호 / 2021년 11월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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