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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거북 - 하

인간은 큰 행운 움켜쥔 존재 일깨워

은혜 등진 바다거북 이야기는
반야귀선에 탄 행운의 인간이
악처에 떨어지는지 보여주고
어리석음 늘 경계할 것 강조

인도신화에서 신은 본래 불멸의 존재가 아니었다. 이에 선신과 악신은 불멸을 주는 불멸주(不滅酒) 쟁탈을 위한 유해교반(乳海攪拌)의 줄다리기 싸움을 벌이게 된다. 이때 메루산은 바다에 던져져 중심추가 되고 뱀 바수키는 천 년간 바다를 휘젓는 밧줄이 되었다. 하지만 바다 속에서 메루산이 자꾸 가라앉자 비슈누 신은 자신의 화신인 거북(Kurma)을 등장시켜 산을 떠받친다. 힌두우주론에서도 세계를 떠받치는 거대한 바다거북 아꾸빨라가 등장한다. 아꾸빨라는 우주바다를 지탱하고, 바다와 연결된 육지에서 등껍질 위에 대지를 수호하는 마하뿌드마라 불리는 네 마리의 코끼리를 동서남북 네 방위에 세워 세상 전체를 단단히 받쳐주는 괴력을 발휘한다.

불교에서 바다거북은 중생이 생사의 바다, 고통의 바다를 건너 해인(海印)의 세계로 가도록 돕는 사자(使者)로 등장한다. 그래서 바다거북을 사바세계를 헤쳐 나가는 반야귀선(般若龜船)이라 부른다. ‘잡보장경’의 ‘큰 거북의 인연[大龜因緣]’에서 이러한 바다거북 이야기가 전한다. 옛날 바라내국에 불식은(不識恩)이라는 거상이 있었다. 그는 500명 상인들과 함께 바다에 나가 보물을 구해오다가 물에 사는 나찰을 만난다. 거상과 상인들은 두려움에 떨며 천신·지신·일월의 모든 신들(日月諸神)에게 구제를 요청한다. 그때 너비가 1리(一里)에 달하는 커다란 바다거북이 나타나 사람들을 등에 태워 모두 바다를 건너게 해주었다. 지친 거북이 바닷가에서 잠시 잠이 들자 불식은은 큰 돌로 거북의 머리를 내려치려 하였다. 상인들은 거북의 은혜로 생명을 구했는데 죽이는 것은 옳지 못하다며 그를 말렸다. 하지만 불식은은 허기를 참을 수 없다며 거북을 죽이고 고기를 상인들과 나눠 먹는다. 그날 밤 엄청난 코끼리 떼가 몰려와 그들 모두를 밟아 죽였다. 이 이야기 속의 바다거북은 부처님의 전생이며, 이름 그대로 은혜를 모르는 불식은은 제바달다의 전생이다.

‘생경(生經)’의 ‘불설별유경’에도 바다거북이 등장한다. ‘별유(鼈喩)’는 ‘자라[鼈]의 비유[喩]’라는 뜻이지만 여기에서 자라는 바다거북을 말한다. 당시에 거북을 자라로도 불렀으나 크기가 크고 바다에 살기 때문에 바다거북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한 바다거북이 넓은 바다를 헤엄치며 즐겁게 놀다가 해안가에서 쉬고 있었다. 바다거북의 등껍데기[龜甲] 길이와 넓이가 각기 60리나 될 정도로 방대하여 육지에 엎드려 있는 모습이 마치 큰 언덕 같아 보였다. 그곳을 지나던 500명의 상인들은 바닷가에 높이 솟은 언덕을 보고 하룻밤 묵어가기로 한다. 저녁에 상인들이 밥을 짓기 위해 장작불을 지피자 등이 벌겋게 달아오른 거북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바다로 헤엄쳐 들어간다. 이에 바다거북의 등 위에 있던 500명의 상인들은 모두 물에 빠져 죽게 된다.

불교경전에서 가장 유명한 바다거북은 ‘잡아함경’의 ‘맹구경(盲龜經)’에 등장하는 ‘눈먼 바다거북[盲龜]’이다. 눈먼 바다거북이 바다에 떠올라 우연히 나무를 만나는 맹구우목(盲龜遇木)은 인간으로 태어나는 복된 인연을 비유한 것이다. 이 비유에 대해 빨리본 ‘발라빤디따경’은 눈먼 바다거북이 백년에 한 번 숨쉬기 위해 바다 위로 오를 때 나무판자 구멍에 머리를 넣을 확률과 악처(惡處)에 떨어진 중생이 윤회해서 다시 인간이 될 확률, 두 가지를 놓고 보면 후자가 더 어렵다는 이야기라고 상세히 설명한다.

거상 불식은은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바다거북의 은혜를 모르고 배고픔의 삼독으로 악행을 행해 코끼리에게 압살당하여 삼악도에 떨어진다. 또한 거대한 바다거북의 등을 언덕으로 오인한 사람들이 거북등에 불을 피워 음식을 만드는 것은 삼독이 증장되는 상황을, 고통 받은 거북이 바다에 뛰어들어 500명의 상인들이 죽음에 이르는 모습은 십악(十惡)을 범해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에 떨어지는 상황을 묘사한다. 어리석은 중생은 바다거북의 너른 등 위에 올라타 액난의 바다를 건너는 행운을 맞이하지만 불식은처럼 거북을 알아보고도 고의적 악행을 저지르거나, 혹은 언덕으로 착각하여 진리를 알아채지 못하고 삼독과 삼악도에 빠진다. 바다거북의 두 이야기는 반야귀선에 올라탄 엄청난 행운을 움켜쥔 인간이 어떻게 악처에 떨어지는지를 보여주며 그 어리석음을 늘 경계해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김진영 서강대 연구교수 purohita@naver.com

[1611호 / 2021년 12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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