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판화로 관통하는 문 없는 경계

  • 불서
  • 입력 2021.12.06 11:33
  • 호수 1612
  • 댓글 0

문인가 하였더니, 다시 길
이철수 ‘무문관’ 연작판화 / 문학동네
220쪽 / 3만원

판화가 이철수가 데뷔 40주년을 맞이해 ‘무문관’을 선택한 까닭은 무엇일가. 죽비를 죽비라고 해도 안되고 죽비가 아니라고 해도 안된다. 입을 열어 대답해도, 침묵해도 안되는 절체절명의 순간으로 상대를 몰아붙이는 ‘무문관’을 이철수는 한 장의 판화로 관통한다. 언어나 문자가 진리를 곡해할까 경계했던 선승들의 가르침을 한 장의 판화로 현대인들에게 전달한다. ‘무문관’을 10년 이상 곁에 두고 탐독한 작가는 선승의 언어에 매이지 않고 한 장의 그림으로 자신의 안목과 화두를 펼쳐보인다. 40년 일궈온 예술적 성취와 성찰의 깊이가 선사의 화두에 미치지 못할 바 없다는 작가의 자신감이자 진솔한 살림살이다. 

문인가 하였더니, 다시 길
문인가 하였더니, 다시 길

‘무문관’은 1228년 중국 남송의 선승 무문혜개가 선수행에 길잡이 될 48가지 공안을 골라 해설과 송(頌)을 덧붙인 책이다. 옛 선사들의 오묘한 속 뜻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는 것이 공안이니 해설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난해하다. 읽는 이에 따라 견해와 뜻이 달라지기 마련. 이철수 작가 또한 ‘무문관’의 내용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을리 없다. 스스로 수행자가 되어 스승들의 말씀을 새기고 현실에 맞는 화두를 길어낸다. 때로는 스승에게 대거리하듯 말을 걸기도 한다. 독자적인 공부의 결과물을 한 장 한장의 판화로 담아낸 것이다. 판화 뒤에 그와 짝을 이루는 공안을 수록해 그림을 먼저 본 후에 글을 읽도록 구성해 자신의 공부를 점검하는 동시에 독자를 자연스럽게 화두 참구로 이끌고 있다. 

그 속에서 작가는 세속 언어와 인식에 매여서는 돌파할 수 없는 상황을 뛰어넘는 안목과 성찰 그리고 문 없는 경계를 지나 만나는 깨달음의 공간 또한 일상임을 한 장의 판화로 간명히 보여주고 있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612호 / 2021년 12월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