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두려운 일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가 늙고, 병들어 극심한 고통을 겪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끝내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어쩌면 병고에 시달리는 그의 고통보다, 혼자 남겨질 나의 고통이 더 두려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의 죽음이 안타까워 슬픈 게 아니라 평생 그리워할 자신의 외로움이 더 슬픈 것인지도.
25살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제삿날마다 절에 올라옵니다. 노보살님은 과일 몇 가지를 끌어안고, 지팡이를 의지해 절에 도착하고, 겨우 마루에 걸터앉습니다. 매번 절에서 모시러 간다고 해도 거절하는 이유는, 걸어 올라오는 이 정성마저 죽은 아들에게 복이 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기도 내내 어머니의 눈물은 옷소매를 적십니다.
노보살님을 보는 저도 눈물을 삼킵니다. 그러나 나의 눈물은 죽은 아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노보살님이 남은 삶 동안만이라도, 눈물을 거두고 진리를 알아, 자신의 죽음만은 행복하게 맞이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공부는 스님이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앙굿따라니까야’에 이르길, 어리석은 중생들은 큰 불이 날 때, 큰 비가 내릴 때, 도적들이 약탈하러 왔을 때 어머니와 아들이 서로를 구할 수 없는 것이 가장 두렵다고 생각합니다. 중생들은 사랑과 재물, 권력, 건강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계속 유지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잃는 것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어머니와 아들이 서로를 구할 수 없는 진실로 두려운 세 가지는 늙음, 병, 죽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늙어가고, 병들어가고, 죽어가는 아들을 보고 “나는 늙고, 병들고, 죽더라도 내 아들은 늙지 말기를! 병들지 말기를! 죽지 말기를!”하며 애 끓지만 아들을 구할 수 없습니다. 아들도 늙어가는 어머니를 보고 “내가 늙고, 병들고, 죽더라도 내 어머니는 늙지 말기를! 병들지 말기를! 죽지 말기를!’하고 바라지만, 어머니를 이 세 가지로부터 보호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세 가지 두려움을 버리게 하고,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사성제, 팔정도를 수행하는 것이라 단언하십니다.
며칠 전, 아픈 어머니를 잃을까 통곡하는 딸과 오랫동안 통화했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두려움에 사로잡힌 딸은 하나도 듣지 못했습니다. 호흡 명상을 통해 겨우 진정시키고 가라앉혔지만, 그 순간일 뿐입니다. 스스로의 힘을 기르지 않는 한,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녀가 사랑하는 존재는 어머니 뿐 아니라 아버지와 남편, 자식, 친구, 재산 등등 무궁무진하기 때문입니다. 죽음과 상실은 끊임없이 다가올 것입니다.
저는 모든 사람들에게 부처님 가르침을 듣고 관하고 수행하라 권합니다. 아들이 말썽부린다며 속상해 하는 젊은 어머니, 사랑에 속 타는 젊은이, 남편을 미워하는 아내, 삶에 의지가 없는 청년, 노숙자에게 이르기까지 만나는 사람마다 부처님의 가르침 배우기를 간곡히 이야기 합니다. 그저 한두 시간의 법문이 아니라, 본인의 지혜로 만들 수 있는 수행을 평생 동안 꾸준히 하기를 권합니다. 대상에 의한 순간의 힐링이나 만족, 기쁨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행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이 아니라도, 언젠가 반드시 가장 큰 두려움을 만날 것입니다. 절박한 그때, 자신만이 스스로를 구할 것입니다. 힘을 갖추도록 진리를 가까이 하십시오. 오직 그것만이 우리들의 눈물을 멈추게 할 것입니다. 끔찍한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의 길을 열어줄 것입니다.
5년의 글을 마무리하며, 어느 청명한 날, 위로 없이도 세상을 향해 우뚝 선 그대를 다시 만나길 바랍니다.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금해 스님 서울 관음선원 주지
okbuddha@daum.net
[1612호 / 2021년 12월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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