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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김해 정암사 일승교전(一乘敎殿)

기자명 법상 스님

부처님께서 숱한 가르침을 펴신 이유

부처님 가르침 찬탄하는 전당
진리로 중생은  깨달을 수 있어 
부처님은 고뇌 벗어나는 길 제시

김해 정암사 일승교전(一乘敎殿) / 글씨 농원 조춘호(農園 曺春鎬).
김해 정암사 일승교전(一乘敎殿) / 글씨 농원 조춘호(農園 曺春鎬).

佛身放光十方界 隨應示現轉法輪 
불신방광시방계 수응시현전법륜
方便說法八萬敎 穢土衆生度苦惱
방편설법팔만교 예토중생도고뇌
(부처님께서 방광을 시방세계에 놓으심은/ 중생의 근기에 응하여 이를 드러내어 법륜을 굴리고자 함이다./ 방편의 설법으로 팔만장교의 가르침으로/ 예토의 중생을 고뇌로부터 제도하기 위함이시라.)

이 주련은 ‘법화경’을 바탕으로 정암사 일승교전(一乘敎殿)을 낙성할 때인 2014년 5월 지홍법상(知弘法相)이 지은 시문이다. 일승교전은 ‘법화경’의 가르침이 일승으로 귀납되기에 붙인 이름이다. 일승교(一乘敎)의 주인공은 바로 석가모니부처님의 교설이므로 석가모니부처님의 가르침을 찬탄하는 전당(殿堂)이라는 뜻이다.

불신(佛身)은 부처님의 몸을 가리킨다. 불신에 대해서는 초기불교에서 대승불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고찰이 있었으며 이를 불신론(佛身論) 또는 불신관(佛身觀)이라고 한다. 초기 경전의 불신론에서는 부처님의 육신은 사라지지만 법은 소멸하지 않는다고 가르침을 주었다. 그러나 대승불교의 가르침인 ‘법화경’을 바탕으로 살펴보면 보드가야에서 도를 이루시고 쿠시나가라에서 열반에 드신 석가모니부처님은 응신(應身)의 부처님이다. 실체인 보신(報身)은 아주 오래전 성불하여 먼 미래세까지 항상 영축산의 정토에 머문다고 하였다. 이를 구원실성(久遠實成) 또는 상재영산(常在靈山)이라고 한다. 구원실성의 석가모니부처님은 법신, 보신, 응신의 삼신(三身)이 상즉(相卽)한다. 인위의 수행으로 비로소 성불한 것이 아니며 본래 그대로 어떠한 인위적 조작이 없는 부처님이다. 이를 본유무작(本有無作)의 삼신이라고 한다.

방광(放光)은 광명을 놓는 것이다. 이 이치는 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하여 구제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화엄경’에서는 족륜방광(足輪放光), 치간방광(齒間放光), 미간방광(眉間放光) 등을 드러냈으며 ‘법화경’에서는 미간의 백호상(白毫相)으로부터 동방으로 방광을 놓아 일만팔천세계를 빠짐없이 비추었다는 말씀이 있다. ‘무량수불경’에도 부처님과 보살들이 함께 수행자들에게 방광을 놓으시는 가르침이 있다. 방광이라고 하여 불상에서 이적이 일어나는 일들을 바라지 마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면 방광은 끊임없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수응(隨應)은 상대방의 근기에 따라 달리 대응하는 교화의 한 방편이다. 시현(示現)은 그때그때 적절하게 몸을 나타내는 불보살의 작용이다. 현시(顯示) 또는 현현(顯現)과 같은 뜻이다. 시현중생(示現衆生)이라고 하여 중생에게 몸을 나타내는 불보살의 신통이며 이는 불보살이 중생을 교화하고자 각 중생에게 가장 적절한 형상을 나타내는 것이다. 방광이나 시현은 모두 참다운 법을 굴리고자 함이다. 중생은 진리의 말씀으로 인하여 깨달을 수 있다.

방편은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기 위해 임시로 설정한 방법이다. ‘법화경’에서는 삼승의 수행자들을 일승으로 이끌기 위하여 설하시는 법문이 방편설법이다. 자칫 잘못하면 방편에 속을 수 있다. 방편은 깨트려야지 빠지면 안 된다. 이를 방편훼괴(方便毁壞)라고 한다. 중생의 근기는 천차만별이다. 중생의 근기에 맞게 부처님께서 가르침을 주셨기에 숱한 가르침이 있다. 문(門)으로 말하면 팔만사천법문(八萬四千法門), 경(經)으로 말하면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다.

예토(穢土)는 곧 사바세계다. 우리가 사는 세계를 왜 예토라고 하는가? 중생이 사는 세계는 번뇌와 망상으로 더럽혀져 있기 때문이다. 예토와 대비되는 표현은 정토(淨土)다. 예토와 정토는 모두 마음에 있기에 ‘화엄경’에서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하였다. 

도고뇌(度苦惱)에서 도(度)는 중생을 고통에서 끌어내어 극락으로 인도하는 것이므로 곧 제도(濟度)를 뜻한다. 고뇌는 심신의 고통이다. 고뇌는 오온으로부터 생기지만 오온이 본래 공하므로 고뇌도 본래 공하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에게 고뇌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제시하신다. 이를 모르면 그만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벗어나 헛길로 들어가는 것이다.

법상 스님 김해 정암사 주지 bbs4657@naver.com

[1614호 / 2021년 12월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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