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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안의 뼈’ -최종월

기자명 동명 스님

뼈, 묵묵히 나를 지켜주는 호법신장

뼈사진, 내가 나를 만나는 행위
우리를 지탱해주는 버팀목이자
보이지 않지만 내 존재 그 자체
뼈 소중함 알고 공양 잘 올려야

내가 나를 만났다

유리 탁자에 올라가 눕는다
본 스캔*이 옷을 날려버리고
살을 지워버리고
모니터에 오롯이 남겨놓은 흰 뼈

그윽이 바라본다
있었던 듯 아닌 듯한
흙으로 돌아가기 전 최후의 형상

정지된 동작으로 누웠다 복종이다
이승을 건너가는 관절들이 환하게 서 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탐색전이 계속된다
흘러내리는 생애를 지탱해준 기둥

흰 장갑 끼고 지상으로 고이 모셔 올린다
모니터를 꽉 채우고 있는 어둠
조명이 비추고 있는 배경이다
선명하게 튕겨나온 뼈

끝났습니다

유리 탁자에서 일어서는


문을 나선다
햇살은 눈이 부신 날에

*본 스캔(Bone Scan) : 뼈에서 전이 여부를 찾는 기계

(최종월 시집, ‘좽이 던지는 당신에게’, 계간문예, 2020)
 

뼈는 무엇일까? 우리 몸을 지탱할 수 있게 뼈대가 있고, 그 뼈대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관절이 있고, 관절이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도록 연골이 있어서 우리는 앉고 서고 누울 수 있다. 뼈대와 관절과 연골까지를 뼈라고 한다. 뼈는 몸의 맨 안쪽에 있어서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우리의 살을 뚫고 뼈만 찍을 수 있는 사진이 있다.

뼈사진을 찍으려고 유리탁자에 올라가 눕는다. 뼈사진을 찍는 것을 시인은 “내가 나를 만나는” 행위로 생각한다. 뼈야말로 우리 몸의 가장 안쪽에서 우리를 지탱해주는 버팀목이기도 하고, 겉으로는 보이지 않아서 우리의 내면 그 자체일 것 같기도 하고, 우리 몸의 온갖 기관 중에서 가장 오래 남아 있을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김현승, ‘눈물’)이기 때문이다.

희한한 놈, 내 얇은 옷은 물론이고 살까지 다 지우고 흰 뼈만 들여다보는 그놈, 그놈의 눈이 옷과 살을 뚫고 내 몸의 비밀을 여지없이 “찰칵!” 단 한 방의 효과음으로, 또는 제법 긴 시간의 움직임을 통해 복사한다. 시인은 그 ‘비밀’을 이렇게 표현한다. “흙으로 돌아가기 전 최후의 형상”!

뼈사진이 제대로 찍히려면 기계에 순종해야 한다. 기계에 충실하게 복종하면, 기계도 충실하게 ‘너의 뼈는 이렇게 생겼어’ 하고, 마치 수행자가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자신의 몸을 스캔하면서 알아차리듯이, 기계는 내 몸의 뼈대를 순차적으로 알아차리면서 임무를 완성한다. 그 알아차림의 결과를 모니터에 띄우면, 아름답게 드러나는 ‘나’, ‘나의 뼈’, 하얀 뼈들의 조합에 의사는 ‘최종월’이라고 이름을 적어 넣는다.

“끝났습니다!”

기계가 말하는 건지 기계를 조종하는 사람이 말하는 건지 모르는 목소리가 들리면 유리탁자에서 일어서는 ‘나’, ‘나의 뼈’! 

이 시를 통해 새삼 ‘나의 뼈’를 생각해본다. 뼈는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 태어날 때부터 몇십년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나를 지켜주는 호법신장 같은 존재가 바로 뼈다. 뼈가 없다면 앉고 서고 눕고 걷는 모든 행위, 아니 나의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뼈의 소중함을 알고, 나의 뼈에게 적당한 공양물도 올리고, 나의 뼈가 건강을 유지하도록 적당히 운동도 해주고, 신선한 물과 공기도 마셔주어야겠다.

최종월 시인은 강원도 태백 출생으로 중앙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그가 쓴 시집으로는 ‘반쪽만 닮은 나무읽기’ ‘사막의 물은 숨어서 흐른다’ ‘좽이 던지는 당신에게’ 등이 있다.

동명 스님 시인 dongmyong@hanmail.net
 

[1615호 / 2022년 1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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