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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길 걷던 어린 시절  부처님 생각하듯이

기자명 하림 스님

숲이 무섭다는 어린 수행자에
“두려울 때 부처님 생각하라”
번뇌 일면 업식도 따라 올라와
가르침 의지하면 번뇌 사라져

법보신문 독자분들과 오랜만에 만나게 됩니다. 다시 글을 쓰게 되니 그동안 잘 계셨는지 안부도 궁금합니다. 원고 청탁을 받고 어떤 내용으로 만나야 할지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1년 전에는 아직 쓰지 못한 명상에 관계된 박사 논문을 쓰겠다는 다짐으로 절 식구들에게도 용기 있게 말하고 시간을 달라며 떠벌렸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3월부터 은사스님을 모시게 되면서 그 꿈은 저 하늘의 새처럼 다 날아갔습니다. 계획은 항상 변수가 따르고 아쉬움과 섭섭함이 따르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냥 접으려니 내가 실패자가 된 것 같아서 명분을 세워봅니다. ‘그래! 은사스님의 건강이 더 중요해! 나는 스님이면 되지 더 이상의 이력은 욕심일 뿐이야!’ 라면서요. 또 ‘나는 박사라고 불릴 만큼의 자격은 없는 것 같아!’라고 중요도를 줄이거나 물러남을 정당화합니다. 

요즘은 부처님의 삶에 관심이 더욱 많이 가고 있습니다. 돌아보니 정작 부처님과 그 가르침에 대해 깊이 살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부처님은 삼귀의를 하고 오계를 따르겠다고 하면 부처님 도량에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했습니다. 닭이 알을 품듯 부처님은 대중 속에서 중생을 성숙하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어느 어린 수행자가 숲에 가서 공부하려는데 무서워서 못하겠다고 부처님에게 하소연합니다. 그때 부처님은 “두려움을 만났을 때 부처를 생각하라. 그러면 두려운 마음이 사라질 것이다”라고 일러줍니다. 

돌아보니 나도 두려울 때 관세음보살님을 많이 찾았습니다. 오히려 커서 두려움이 적어지니 염불을 게을리 하게 됩니다.

중학교 때는 하동 쌍계사의 밤길을 걸었고 고등학교 때는 동두천 자재암의 밤길을 걸었습니다. 1~2㎞를 홀로 걸어가야만 합니다. 그 가는 길에 머리칼이 서고 등골이 서늘해지는 무서운 곳이 꼭 두세 군데 있습니다. 그곳을 지나가려면 혼자의 힘으로는 갈 수 없습니다. 그곳에 눈이 가려거나 두려움이 찾아오면 계속 “관세음보살”을 하면서 지나갑니다. 그래서 그나마 견디고 동국대를 갈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학교에 가지 않으려고 한 이유가 매일 만나는 그 길이 싫어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는 모르고 했지만, 부처님이 말씀하셨던 방법으로 두려움을 이겨냈던 것입니다. 내가 두려움을 만났을 때 부처님을 생각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벗어났으며 절에 의지하고 살았으니 삼귀의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얼마 전 겪은 일입니다. 어떤 분이 손님을 가벼이 여기는 듯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보는 순간 마음이 불편합니다. 불편함은 번뇌입니다. 번뇌가 일어나는 순간 내 업식이 따라서 올라옵니다. ‘그것은 옳지 않아!’ 그리고 화가 납니다. ‘앞으로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해야지!’라는 번뇌들이 올라옵니다. 그리곤 한동안 불편함을 붙들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모두 내게 나타나는 번뇌들입니다. 

이런 번뇌들이 나타날 때 나는 부처님을 생각하지 않았고 이럴 때 어떻게 하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다시 또 그 번뇌와 싸웠습니다. 이것은 부처님에게도 부처님의 가르침에도 의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좀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때는 절대로 못 넘어갈 것 같았는데 지금은 그 감정도 생각도 이미 없습니다. 다시 끄집어내어서 어떻게 해보려고 해도 이미 허공 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제야 생각납니다. 모든 것이 꿈과 같다는 것을요. 

다음에는 그런 번뇌를 만났을 때 어린 시절 부처님을 생각하듯이 염불을 하면서 그것이 번개처럼 사라지는 마음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지나갈 때까지 지켜보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아마도 내일 하루는 그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보내다 보면 어느덧 한 해의 마지막 날이 되어 있겠지요. 

하림 스님
하림 스님

다시 만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이런저런 허망한 이야기, 사라지는 이야기를 적으려니 무척 부끄럽습니다. 그런 줄 서로 알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하림 스님 부산 미타선원장
whyharim@hanmail.net

 

 

[1617호 / 2022년 1월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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