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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니그로다미가(Nigrodhamiga) 본생 ①

기자명 각전 스님

새끼 밴 암사슴 대신해 목숨 내놓은 사슴왕

다른 무리의 사슴 살리고자 희생 자처한 우두머리
집단에 차별 두지 않고 베푼 인욕·자비·애민의 마음
사냥 좋아하던 왕 감복시켜 모든 짐승들 목숨 구해 

인도 아잔타 석굴 17굴에 그려져 있는 니그로다미가 본생담 벽화. 
인도 아잔타 석굴 17굴에 그려져 있는 니그로다미가 본생담 벽화. 

니그로다미가 본생담(Nigrodhamiga Jataka)은 사슴왕 이야기이다. ‘nigrodha’는 무화과과의 나무로서 용수(龍樹)로 옮기고 ‘miga’는 사슴을 의미하므로, 한자로 용수록 본생(龍樹鹿 本生)이라고 한다. 남전 ‘본생경’의 12번 본생담이다. 아잔타 석굴의 17굴에 벽화로 그려져 있다. 기원전 1세기의 바르후트 탑에도 부조로 조각된 작품이 남아있는데, 이를 보면 산치대탑에도 부조화되었을 가능성이 많다고 짐작된다.  

이 본생담은 앞서 연재했던 마하카피[대원, 大猿] 본생과 같이 부처님이 많은 과거생에 걸쳐 스스로를 희생한 이야기 중 하나이다. 마하카피 본생이 자신이 이끄는 집단의 구성원들을 위한 것이었다면, 니그로다미가 본생은 자신의 집단이 아닌 이웃 집단의 구성원이 그 집단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곤란한 지경에 처했을 때 이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이야기이다. 

동시에 자신의 인생 목표를 설정하고 임신한 줄 모르고 출가하는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을 지혜와 인내로 극복하면서 꿋꿋이 나아가 결국 처음의 목표를 달성하였다는 한 여성 수행자의 전생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면의 제한을 고려하여 니그로다미가 본생을 먼저 얘기하고 나서 다음 연재에서 여성수행자의 출가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전생담은 다음과 같다. 

옛날 바라나시에서 브라흐마닷다왕이 바라나시를 다스릴 때, 황금빛 나는 두 마리의 사슴왕이  각각 500마리의 권속을 거느리고 함께 숲 속에 살았다. 그 사슴왕의 이름은 니그로다 사슴왕과 사카 사슴왕이었다. 

바라나시의 왕이 사냥을 좋아하여 백성들을 자꾸만 동원하자, 백성들은 사슴 떼를 왕의 동산에 몰아넣은 뒤에 왕에게 그것들을 사냥감으로 삼도록 했다. 왕이 사슴 떼를 보고 그 무리 가운데 있는 두 마리의 황금 사슴은 그 몸의 안전을 보장해주었다. 그 뒤로 왕이나 왕의 요리사가 사슴을 사냥해 갔다. 그러자 니그로다 사슴왕이 사카 사슴왕을 불러서 자신의 권속과 사카 사슴왕의 권속이 교대로 순번을 정해서 하루에 한 마리씩 스스로 단두대에 목을 걸고 눕기로 약속하였다. 

어느 날 사카 사슴왕의 권속 가운데 있는 새끼 밴 암사슴이 당번이 되자, 그녀는 사카 사슴왕에게 가서 자신이 새끼를 배었으니 새끼를 낳은 뒤에 둘이 한꺼번에 그 당번을 받을 테니 순번을 다른 데로 돌려달라고 호소했다.  

사카 사슴왕은 “네 자신의 과보로 알고 가서 당번을 받아라”하면서 거절하였다. 그러자 그녀는 니그로다 사슴왕에게 가서 이 사정을 말하였다. 니그로다 사슴왕은 그녀의 순번을 미뤄주겠다고 하고는 자기 자신이 단두대로 갔다. 

요리사가 이것을 보고 몸의 안전을 보장받은 사슴왕이 단두대에 누워있는 까닭이 의아하여 왕에게 아뢰었다. 

왕이 곧 수레를 타고 와서 단두대에 누워있는 사슴왕에게 물었다. 

“그대는 왜 여기 누워있는가?”

사슴왕이 답하기를,

“대왕이시여, 새끼 밴 암사슴이 자신의 당번을 다른 데로 돌려 달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어떤 자가 받아야할 죽음의 고통을 다른 이에게 씌울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 목숨을 그 암사슴에게 주고, 암사슴에게 내려진 죽음을 대신 맡아 여기 누워있습니다.”
“황금 사슴왕이여, 나는 일찍이 이 세상에서 이처럼 인욕, 자비, 애민(愛民)의 덕을 갖춘 이를 보지 못했다. 그대 덕택으로 내 마음은 맑아졌다. 일어서라, 그대와 저 암사슴에게 생명의 안전을 보장해 주리라.”

연이어서 황금 사슴왕과 함께 이 동산에 있는 다른 사슴들, 동산 밖에 있는 사슴들, 네 발 달린 짐승들, 두 발 짐승들의 안전도 보장받았다.  

그러고 나서 니그로다 사슴왕은 인간의 왕에게 다섯 가지 계율(살, 도, 음, 망, 주)을 지키도록 하고, “바른 도를 행하십시오. 부모, 자녀, 바라문, 거사, 상인, 농부들에게 바른 도를 행하십시오. 그것을 평등하게 행하면 목숨을 마친 뒤에는 즐거운 천상 세계에 날 것입니다”라고 하여 인간의 왕이 실천할 바른 법을 일러 주었다. 

그 뒤에 암사슴은 연꽃 봉오리 같은 새끼를 낳았으며, 그 아들이 사카 사슴왕 곁으로 가자 이를 제지하고 그 아들에게 “사카 사슴왕 곁에 살기보다는 차라리 니그로다 사슴왕 곁에서 죽어라”하고 가르쳤다. 

안전을 보장받은 사슴들은 백성들의 곡물을 먹었는데, 사람들은 이를 제지할 수 없어 왕에게 이 사정을 호소했다. 왕은 “나는 신앙심으로 말미암아 니그로다 사슴왕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그러므로 나는 이 영토를 다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와의 서약은 깰 수 없다. 모두 물러가라. 내 영토 안에서는 사슴을 해치지 못할 것이다”하였다. 

그러자 니그로다 사슴왕은 밭 둘레에 풀잎을 맺기를 당부하고, 사슴들은 그 표시가 있는 곳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때의 사카 사슴왕은 데바닷다요, 그 권속은 데바닷다의 권속이며, 그 암사슴은 임신한 줄 모르고 출가했던 장로니이며, 그 아들은 쿠마라카사파요, 왕은 아난다이며, 니그로다 사슴왕은 부처님이었다.  

이 본생담의 주 내용은 니그로다 사슴왕의 초월적 희생정신이다. 사슴왕은 다른 사슴의 목숨이 아닌 자기 자신의 목숨을 바침으로써 새끼 밴 사슴의 안타까움을 해결하였다. 자식을 위한 부모의 희생, 배우자를 위한 희생, 가족을 위한 희생, 소속 집단을 위한 희생, 신봉하는 가치를 위한 희생 등 희생이라는 것은 어렵고 고귀한 일이다. 

더우기 자신의 소속 밖에 있는 어떤 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사슴왕은 자신의 소속이 아니라고 해서 배척하거나 도리어 그 소속집단으로 돌려보내거나 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가면서 적극적으로 포용하고 보살펴주었던 것이다. 그럼으로써 배척받은 한 생명체가 살아나고 그 후손까지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이니, 사슴왕의 집단 초월적이고 포용적인 희생 위에 새로운 해가 뜨게 된 것이다. 

동시에 구함을 받은 암사슴이 자식을 가르치는 태도가 보은(報恩)의 정신에 투철할 뿐만 아니라 엄격하고 단호하다. 자식에게 악을 가까이 하느니 선량함과 더불어 죽는 것이 나음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선과 악의 대비가 극명하기 이를 데 없다. 

마지막으로 약속을 저버리지 않고 지키는 바라나시 왕의 굳건함과 니그로다 사슴왕의 지혜로운 대처가 이 이야기를 마감하고 있다.

각전 스님 선객 agami0101@naver.com

[1619호 / 2022년 2월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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