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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산대극과 억불 가스라이팅

기자명 윤소희

스님 하대하고 놀려대도 이의제기 없는 불교인들

지방마다 이름 다르지만 주요 골격·성격 대동소이
불교비하적 내용 많아…문화호법 태세전환 요구돼
산대극은 홍법 불교 악가무…21세기 불교 달라져야

 

송파산대놀이 고사.
송파산대놀이 고사.

함경도에는 북청사자놀음, 황해도는 봉산・강령・은율탈춤, 강원도는 강릉관노놀이, 경상북도는 하회별신굿 탈놀이, 서울・경기는 양주별산대・송파산대・퇴계원산대놀이, 경상남도 낙동강 동쪽의 동래・수영야류, 낙동강 서쪽의 고성・통영・가산오광대 등 경향 각지에서 행해지고 있는 수많은 산대놀이를 보면 정월과 초파일을 보내느라 굉진천지했다는 ‘고려사’의 기록이 과장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을 보면 놀음・놀이・탈춤・야류・광대 등 지방마다 이름의 차이는 있지만, 주요 골격과 성격은 대동소이하다.

이들의 큰 틀은 중마당, 양반마당, 할미마당으로 구성된다. 하인 말뚝이가 양반의 위선을 풍자하는 양반마당, 젊은 첩과 노느라 고생하며 자식을 키워온 할미를 때려 죽게 하는 이야기들은 조선시대 남정네들만의 횡포이자 욕망과 불만의 분출구였고, 항거하는 여성이 맞아 죽는 장면에는 여자는 무조건 입 꾹 닫고 있어야 한다는 묵시적 메시지가 있다. 중 마당은 고승이 먹중들에게 조롱당하고, 술주정뱅이 취발이에게 얻어맞고 쫓겨난다. 고승을 놀려대는 먹중들은 고승보다 먼저 파계한 사람들인데, 산대극은 이들을 우호적으로 묘사한다. 억불 하에서 강제 퇴속당한 승려들의 처지는 묵과되고 있다. 

중마당을 좀 더 들여다보면, 상좌가 사방신에게 절하는 순서에서 ‘옴’이 두 막대기를 치다 상좌에게 빼앗기고, 제금을 치려다가도 빼앗기고, 제금으로 가슴과 등을 맞는 장면이 있다. 여기서 두들겨 맞는 것은 정신 차리지 못한 인물이 제지를 받는 내용인데, 이러한 대목은 불법을 공부하고 외도를 몰아내던 사찰의 교훈극과 맥락이 닿는다. 30여년간 이를 연구해온 이혜구 박사는 이 대목을 행도(行道)・고사(告祀)와 연결시키고 있다. 

도다이지 슈니에.
도다이지 슈니에.
고야산 슈쇼에.
고야산 슈쇼에.

인류 문화사를 보면, 민간의 제사가 고등 종교로 들어와 의례가 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고려곡물어(高麗曲物語)의 교훈적 줄거리와 연결되는 산대 과장 이야기 중, 막대기를 치고 쫓으며 고사를 올리는 방식이 오늘날 일본사찰의 신행과 의례 속에서도 발견된다. 고야산 대탑 슈쇼에(修正會)의 종반에는 ‘우옥장(牛玉杖·ごおうつえ)’으로 바닥을 치면서 한 해의 장수를 기원하고, 참배 신도들에게 부적을 두른 작은 막대(福杖)를 나누어준다. 여기에서 승려들이 지팡이를 찧으면서, 도량을 행도하는 순서가 있는데 이는 일종의 참과법회(懺過法會)로서 그 전통이 도다이지의 슈니에(東大寺修二會)와 연결됨을 고야산의 승려(井川崇高)가 밝히고 있다. 

서울놀이마당 고사 장면.
서울놀이마당 고사 장면.

그리하여 ‘동대사이월당연기회권(東大寺二月堂緣起繪卷)’을 찾아보니 슈니에의 주행법(走りの行法)은 도다이지의 개산승정 로벤(良弁, 689~774)의 제자 짓츄(實忠)가 752년 무렵 도솔천의 십일면관음의 회과(悔過)를 보고 인간계에 전하였다는 설화적 내용이라 감이 잘 안 온다. 그리하여 오늘날 도다이지의 슈니에 광경을 보면, 막대와 소대 불꽃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한국의 산대극에서 비슷한 장면을 보면 가운데 제상이 차려져 있고 그 옆에 불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지막 과정에서 고사를 지내는 장면이 있다. 

필자는 어린 시절 뭔가 잘못하면 “이 버꾸야”라는 꾸중을 들었다. ‘버꾸’는 소고의 경상도 명칭이었고, 퇴속한 승려가 유랑악사가 되어 두드리던 법구(法具)에서 비롯된 경상도식 발음이었음을 불교음악을 연구하며 알게 되었다. 놈팽이를 ‘건달’이라고 하는데, 실은 천상의 음악을 연주하는 간다르바이고, 불교의 호법신이다. 묘약 소마로 아픈 아이를 낫게 하는 간다르바는 압사라(앙코르와트 압사라춤의 주인공, 서양은 요정으로 번역)라는 요염한 여신과 커플이라 유생들의 질투를 샀던 것일까? 오늘날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불교의 본의가 전도되어 있는데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불자들 스스로 그 불교비하적 언어를 쓰는 경우가 많다. 

산대극에서 위세 떠는 양반과 할미를 구박하는 영감은 이 시대에 사라지고 없는 신분이라 이를 보고 기분이 상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아이들(파계한 상좌)에게 놀림당하는 승려, 퇴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동네 남정네와 싸움을 벌이는 승복입은 캐릭터를 보는 불자는 기분이 나쁘다. 그런데 승가에서 이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산대극이 본래 풍자극인데다 문화재라는 허가증을 받았으니 그래도 된다는 것인가? 독일의 어떤 지방에서 유네스코문화재 신청을 했는데 그 역사적 근저에 나치가 있어 심사에서 배제된 바 있다.

문화재는 인류 공동의 선(善)과 결을 같이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전 산대극에 있던 병신놀음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없고, 일본 군함도의 문화재 지정에 대하여 한국에서 강력하게 저항하고 이의를 제기한 바 있다. 문화재의 가장 핵심적 사안인 역사와 전통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산대극은 홍법 불교 악가무였음을 앞선 1~3회에서 얘기해 왔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조용하기도 하고, 시끄럽기도 하다. 그런데 “불교는 조용한 종교”라던 억불의 가스라이팅이 아직도 진행 중인 것이다. 21세기 문화시대를 맞은 불교는 불교문화 바로 세우기를 위한 모니터링과 전문가 양성 등 다각적인 문화호법의 태세전환이 필요하다. 

윤소희 음악인류학 박사·한국불교음악학회 학술위원장
ysh3586@hanmail.net

[1622호 / 2022년 3월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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