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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난민의 공포심과 불교의 무외시 - 상

무외시, 공포를 덜어주는 휴머니즘의 극치

난민을 공포의 피해자 아닌 공포의 가해자 인식하는 편견 만연
무외시는 힘을 가진 자가 힘이 없는 상대에 베푸는 생명의 선물
무외시는 재보시‧법보시와 더불어 불교의 세가지 보시 중 하나

2018년 예멘 내전 당시의 급박한 순간. 폭격으로 사망한 사람을 들고 뛰는 사람들의 얼굴에 공포가 가득하다. 사진=엠네스티
2018년 예멘 내전 당시의 급박한 순간. 폭격으로 사망한 사람을 들고 뛰는 사람들의 얼굴에 공포가 가득하다. 사진=엠네스티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존속을 위협하는 외부의 도전을 ‘공포(fear)’로 받아들인다. 그중에서도 전쟁은 말 그대로 공포의 대명사다. 전쟁은 필연적으로 ‘난민(refugee)’을 발생시킨다. 그것은 목숨의 위협으로부터 생존을 도모하기 위한 존재들의 자연적 본능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하지만 어느 나라도 선뜻 구호의 손길을 내밀지 않는다. 국제난민을 둘러싼 각국의 대내외적 정치환경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탓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휴머니즘의 이상과 국가안보의 현실이라는 두 가지 도덕 가치가 서로 충돌하는 냉엄한 삶의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이런 난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제안하는 불교 윤리 논문이 있어 소개해 보기로 한다. 제임스 매디슨 대학의 크리스티나 A. 킬비 교수가 쓴 ‘위기의 국제난민과 무외심의 선물(The Global Refugee Crisis and the Gift of Fearlessness)’(Journal of Buddhist Ethics, vol. 26, 2019)이라는 논문이 그것이다. 저자는 ‘무외심의 선물(the gift of fearlessness)’인 무외시의 가르침을 통해 국제난민들이 겪고 있는 공포의 문제에 접근한다. 

2019년 7월 당시 유엔난민기구(UNHCR)가 파악한 국내외 난민의 숫자는 어림잡아도 7080만명이 넘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인류의 비극이 21세기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국제난민의 인도적 처우는 세계정치의 뜨거운 어젠다가 되고 있지만, 어느 나라도 실질적인 해소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난민 발생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인종적 소수와 종교적 소수의 인권에 대한 정당성 시비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일부 난민들의 테러와 이로 인한 트라우마는 정착 기대국가들의 자국민 보호주의와 외국인 혐오 분위기를 확산시켰다. 어느 순간부터 난민은 ‘공포의 피해자’에서 ‘공포의 가해자’가 되었다. 공포의 영향은 몸의 감각기관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염된다. 우리가 느끼는 공포는 이를 지켜본 주위 사람들을 덩달아 위축시키고 마음의 문을 닫게 만든다. 국가도 개인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공포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난민의 입국을 꺼리고 국경을 봉쇄하게 되는 것이다. 이 와중에 난민의 국제적 지위와 권리의 보장은 사문서가 되고 만다. 

저자인 킬비 교수는 여기서 남아시아의 고전적 난민 보호 윤리인 ‘무외시(abhayadāna)’를 소개하고 이의 현대적 적용을 과감하게 주문한다. 그에 의하면 무외시의 전통은 어려움에 직면한 국제난민 문제의 타결을 돕는 훌륭한 대안적 사고가 될 수 있다. 무외시의 윤리는 국가와 사회가 난민을 어떻게 보호해야 하며 또한 그것의 결과가 다시 국가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가를 설명해 준다. 공포의 피해자는 공포의 가해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보답으로 오히려 국가와 사회의 보호자가 된다고 본다. 인과법칙의 지혜다. 그런 점에서 무외시는 난민의 정착 노력과 이해 당사국들의 안보 우려를 동시에 정리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 불교윤리의 가능성을 듬뿍 함축하고 있는 셈이다.

인도의 종교 전통들에서 무외시는 대체로 “폭력의 위협을 받거나 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호나 안전을 제공하는 선물”로 이해되고 있는데, 개인과 집단의 구분 없이 두루 적용될 수 있는 관념이다. 힌두교 법전의 전통에 따르면 “국왕은 죄수들을 사면하고, 팔다리 절단과 투옥, 추방, 매질, 강도, 불명예 등을 당할 공포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하며 더 나아가 그에게서 피난처를 구하는 모든 사람을 구원해 주어야 한다.” 이처럼 무외시는 국왕의 중요한 통치 능력으로 인식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무외시의 발휘는 자연스럽게 권력의 관계를 동반한다. 무외시는 국민의 생사를 좌우하는 큰 권력을 가진 통치자이든 미물(微物)들의 운명을 결정할 작은 힘밖에 없는 보통 사람들에 의해서든 힘을 가진 자가 그럴 힘이 없는 상대에게 주는 생명의 선물이다. 무외시는 당사자 간에 서로 주고받는 쌍무적 관계의 선물이 아니라 낯선 사람들에게도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호의적인 선물로 여겨졌다. 무외시의 수혜는 특정인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공포로부터 보호가 필요한 존재들에게 힘을 가진 쪽이 당연히 제공해야 할 윤리적 당위의 영역에 속한다. 종교의 울타리도 훌쩍 뛰어넘는다. 무외시는 보호의 대상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본 휴머니즘 그 자체였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불교에서는 세 가지 보시가 전제되고 있다. 재보시(財布施)와 법보시(法布施) 그리고 무외시(無畏施)가 이에 해당한다. 전통적으로 전자는 재가자의 의무로 후자는 승가의 역할로 간주되었다. 이에 더해 무외시는 온갖 종류의 물질적 복지와 정신적 복지를 가능하게 만드는 근본토대로 작용한다. 불자 국왕은 재가자의 일원으로서 승가의 보호와 함께 위험에 직면한 생명을 보호할 인도주의적 책무를 갖는다. 티베트 불교의 한 주석서에서 파뜨룰 린포체(Patrul Rinpoché)는 보시바라밀을 설명하면서 ‘무외심의 선물(mi ‘jigs pa skyabs kyi sbyin pa)’을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무외시란 어려움에 처한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실제로 해주는 것이다. 예컨대, 그것은 안전한 장소가 없는 사람들에게 피난처를 마련해주고, 보호자가 없는 사람들에게 보호를 제공하며, 친구가 없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일을 포함한다. 특히 무외시는 당신이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곳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사냥과 낚시를 금지시키고, 도살장으로 가는 양을 다시 사들이며, 죽어가는 물고기와 벌레들 및 파리와 그 외 다른 미물들의 생명을 구하는 것과 같은 행위에 대해 언급한다.” 

티베트의 통치자들은 무외시의 이런 취지에 동조하여 필요할 경우 특정한 지역을 봉인하고 인간의 파괴행위로부터 자연의 동식물들을 보호하기 위한 행정조치를 취했다. 인도와 티베트의 불교 전통에서 위험에 처한 난민의 보호는 환경파괴와 동물복지 또는 경제적 제한의 정치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하물며 다양한 이유로 국제난민이 된 사람들에게 불교가 무외시의 완성을 모색하는 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이어서 무외시의 휴머니즘적 의미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논의를 소개해 볼 작정이다.

허남결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hnk@dongguk.edu

[1622호 / 2022년 3월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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