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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대중 함께 화두 뚫는 도심 속 선불장 발원”

  • 교계
  • 입력 2022.03.04 10:34
  • 수정 2022.03.04 16:26
  • 호수 1623
  • 댓글 0

상도동 보문사, 지하1층·지상2층 규모 선원 불사 진행
백중 전 완공 앞두고 4월3일 1029일 제2차 기도 입재
“부처는 저잣거리서 출연…대중 속에서 발심·수행해야”

도심 속 수행도량으로 손꼽히는 서울 상도동 보문사(주지 지범 스님)가 선불장의 면모를 드러낼 선원불사를 진행하는 가운데 불자들의 원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한 1029일 기도에 입재한다. 앞서 2019년 5월5일 선원불사 및 영가천도를 발원하며 1차 1029일 기도에 입재했던 보문사는 코로나19의 거친 파고 속에서도 중단없이 기도정진을 이어와 2월27일 회향을 맞이했다. 이기간 보문사는 ‘선사의 할 소리, 가을을 물들이다’라는 주제로 ‘7인 선사 대법회’를 봉행, 숨 가쁜 도시를 선사들의 법음과 불자들의 정진으로 물들였다. 또 수행에 목말라하는 시민들에게 활짝 열려있는 정진도량이자 전국의 수좌스님들이 언제든 바랑을 내려놓고 좌복을 펼칠 수 있는 수행 공간을 마련하고자 선원불사를 시작해 진행 중에 있다.

오는 4월3일 2차 1029일 기도정진에 입재하는 보문사 주지 지범 스님은 “40년 넘게 선원에 살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시은을 받았고 지금도 신세 지고 산다”며 “아름다운 선원을 만들어 사부대중을 시봉하는 것이 남은 생의 목표”라고 굳은 원력을 밝혔다.

상도동 보문사 주지 지범 스님.
상도동 보문사 주지 지범 스님.

주지 지범 스님은 1978년 나주 다보사에서 출가 인연을 맺고 이후 줄곧 제방선원에서 용맹정진을 거듭해온 수좌다. 2001년 은사이자 보문사 주지였던 정진 스님 입적 후 주지 소임을 맡게 됐다. 하지만 평생 수좌로 살아온 지범 스님은 주지 취임 후 곧바로 대웅전에 좌복부터 펼쳤다. 상도동 주택가 끄트머리에 자리한 보문사는 그대로 보문선원이 되어 주중 참선법회와 주말 철야정진이 펼쳐졌다. 번듯한 선원은 아니었지만 구참 수좌스님이 직접 수행을 지도한다는 입소문이 퍼지며 수행에 목말라하던 불자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지범 스님은 그러나 안거철만 되면 다시 방부를 들이고 제방선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수좌스님의 발길을 막을 수 없었던 신도들과 재가수행자들은 주지스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몇 해를 보낸 지범 스님은 깊은 고민을 안고 2018년 화엄사에서 동안거에 들었다. 사부대중이 함께 수행하기 위해서는 선원불사가 불가피했다. 하지만 선뜻 결심을 하지 못한 채 동안거가 시작됐다. 아침저녁 각황전에 들어 500배씩, 하루 천배를 올렸다. 선원에서의 10시간 화두정진과는 별도로 매일 천배의 강행군. 스님은 결국 회향을 이틀 앞둔 새벽, 차디찬 각황전 바닥에 쓰러졌다. 아마 잠시 정신을 잃었을 것이다. 꿈을 꾼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명한 목소리가 들렸다. “지범수좌, 그 불사 하시게.”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한마디는 선명했다. 눈을 떴을 때 더 이상 남아있는 고민은 없었다.

상도동 보문사에 들어설 선원 조감도. 
상도동 보문사에 들어설 선원 조감도. 

“오랜 준비 끝에 2019년 7인 선사 대법회를 성황리에 회향한 후 불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몇 개월 안에 전 세계가 코로나19라는 질병에 휩싸일 줄 상상도 못했습니다. 해가 바뀌고 상황이 점점 나빠지면서 불사를 중단하거나 좀 미루면 어떻겠냐는 주변의 조언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불사가 중단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때 들은 목소리는 내 안의 소리였습니다. 사부대중이 함께 수행해야 한다는 확고한 믿음, 원력의 소리였다고 생각합니다. 원력이 있다면 내 안에서 여래가 늘 출연하신다는 것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보문사와 맞닿아있던 두 채의 가정집을 매입해 시작한 선원불사는 현재 지하 1층까지 공사가 진행된 상태다. 삼성산 자락인 상도동의 비탈진 언덕에 자리잡는 선원인 만큼 튼튼한 기초공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1년여의 시간을 들여 다진 튼튼한 토대 위엔 지하1층, 지상 2층, 연건평 290평 규모의 선원이 들어설 예정이다. 지범 스님은 오는 가을, 백중 즈음 완공을 기대하고 있다. 선원에는 80평 규모의 시민선방과 수좌스님을 위한 같은 크기의 선원, 그리고 언제든 쉬어갈 수 있는 방사도 마련할 예정이다.

“출가수행자가 산중 사찰에서만 수행하는 시절은 지났습니다. 예전에는 절에 가야 스님을 만날 수 있고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으니 수행하기 좋은 산중에 있어도 불자들과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소통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수행하기 좋다고 산중만 고집해서는 사부대중이 소통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스님이 세상으로 내려와야지요.”

서울 강남, 그것도 주택가 한복판에 선원을 짓는 지범 스님은 “대중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불교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한다. 무엇보다 출가수행자가 점점 줄어드는 추세 속에서 수행의 중심도 이제는 재가불자가 될 수 있도록 지도하고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도 강조한다. 하지만 번잡한 도심 속에서 출가자와 재가자가 함께 화두정진하는 것이 가능할까.

“굳건한 발심이 없으면 화두를 뚫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발심이 가능할까요. 내 안에 자비심이 가득해야 합니다. 자비심을 가득 채우는 방법은 중생의 기쁨과 아픔을 보고, 함께하고,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그러니 화두참구로 견성하고자 한다면 이웃의 기쁨과 아픔을 함께 하며 자비심을 키워 굳은 발심으로 정진해야 합니다.”

40여년 정진한 구참수좌의 조언은 묵직한 울림을 준다. 스님은 재가불자들에게도 당부를 잊지 않는다. “재가자 중에서도 탁월한 공부인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스님은 “선근을 심겠다는 마음으로 선방의 문고리를 잡아보라”고 권한다. 그 인연 공덕으로 깨달음을 이루기 바라는 마음이 묻어난다. 이제 막 토대를 드러낸 선원에 기둥이 올라가고 좌복이 펼쳐지는 날을 상상하며 다시 한번 1029일 기도 입재를 앞두고 있는 지범 스님은 “부처는 저잣거리에서 만들어진다는 말이 있다”며 “내가 깨달았다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보기에 그의 말과 행동이 부처다울 때 세간에 비로소 부처가 출연한다는 뜻”이라며 선원으로 눈을 돌린다. 분명 저곳에서 사자후 울리는 날이 올 것이라는 무언의 약속이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623호 / 2022년 3월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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