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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유림석굴 25굴 ‘미륵하생경변도’(‘불설미륵하생성불경’)

기자명 오동환

미륵보살이 출현할 때 세상은 어떻게 바뀔까

곡식 저절로 성장하고 길에 보물 널려…수명은 8만4000세
이 땅에 미륵 출현시키는 원동력은 사람이 심은 선근 인연
용화세상 도래는 현 세상의 변화 전제…고단한 현실의 반영

중국 안서에 있는 유림석굴 25굴 벽에 조성돼 있는 ‘미륵하생경변도’는 경전의 내용을 세세하게 묘사한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중국 안서에 있는 유림석굴 25굴 벽에 조성돼 있는 ‘미륵하생경변도’는 경전의 내용을 세세하게 묘사한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자치통감’ 204권에 의하면, 당(唐) 690년에 법랑 등의 사승(寺僧)들이 ‘대운경’을 편찬하고 표를 올렸다. “태후(측천무후)는 하생한 미륵불이시다. 이제 당이 염부제의 주인임을 천하에 공포하노라.” 측천무후는 얼마지나지 않아 스스로 황위에 오르고, 이어서 자신을 ‘자씨월고금륜신성황제(慈氏越古金輪神聖皇帝)’라 칭하였다. 또한 미륵경전의 내용에 따라 궐하에 칠보대(七寶臺)를 설치하고, 막고굴 96굴에는 자신을 모델로 한 대미륵상을 조성하였다.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제였던 측천무후가 권력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이처럼 적극적으로 미륵하생신앙을 이용한 것은 당시 사회 전반에 미륵신앙이 만연하였음을 반증한다. 이를 증명하듯 돈황석굴에서 미륵경변도는 당대에 집중적으로 조성되었다. 지금까지 집계된 총87폭의 돈황석굴 미륵경변도 중 61폭이 당대에 제작되었으며, 성당(盛唐) 시기 이후에는 미륵하생신앙이 주요 주제가 되었다. 그 중 유림석굴 25굴(776~781 조성)에 그려진 미륵하생경변도는 ‘불설미륵하생성불경’(구마라집 역, 이하 ‘성불경’)의 내용을 가장 세세하게 묘사한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벽화의 구체적 내용을 따라 경전의 대강을 살펴보자. 

미륵하생경전의 핵심은 미래에 미륵보살이 도솔천으로부터 이 땅 염부제로 하생하여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하고, 세 차례에 걸친 설법을 통하여 억조창생을 구제한다는 내용이다. 25굴 변상도 역시 미륵부처님의 세 차례의 용화설법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화면 중앙에는 미륵부처님이 대좌에 의좌(倚坐) 한 채 설법하는 자세로 정면을 향하고, 그 앞에 같은 자세의 미륵부처님이 좌우에 배치되어 설법을 하시는 장면이다. 중앙의 미륵부처님 뒤편에는 용화수 잎이 무성하여, 미륵부처님의 성불과 설법을 상징한다. 

이때 염부제는 양거라는 전륜성왕이 통치하는데 금륜(金輪), 백상(白象), 감마(紺馬), 신주(神珠), 옥녀(玉女), 주장신(主藏臣), 주병신(主兵臣)의 일곱 가지 보배로 나라를 평화롭게 다스린다고 하였다. 25굴 변상에서, 양거왕은 가운데 미륵부처님 발 앞에 칠보를 나란히 공양하고, 권속들과 함께 부처님께 귀의하여 설법을 듣고 있다.  

미륵부처님의 용화설법 장면의 주변부 공간에는 경전의 기타 세부 내용들로 채웠다. 상단 우측은 미륵보살이 도솔천으로부터 하생하여 시두말성(翅頭末城)의 바라문 집안에서 태어나는 장면과, 성도 후에 성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묘사하였다. 상단 좌측은 미륵 부처님이 대가섭을 만나는 장면이다. 석가모니 제자인 대가섭이 그때까지도 기사굴산에서 좌선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대가섭이 미륵 부처님께 가사를 전달하는 장면 또한 묘사하고 있는데, 특히 ‘성불경’에서는 이 가사가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사라고 설한다. 이것은 석가모니부처님과 미륵부처님 간의 법의 전승을 확인하는 것이다. 

미륵과 전륜성왕이 출현하는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 25굴 변상에서는 이때 염부제의 생활상들을 하단 주변부에 배치하였다. 우측 중단에 사람들이 나무로부터 옷을 얻어서 입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성불경’에서는 이때에는 옷이 나무에서 저절로 생겨 사람들이 마음대로 입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 아래 장면에서는 혼인예식에서 신부가 절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성불경’에 의하면 이때 사람들의 수명은 8만4000세에 이르며, 여성은 500세가 되어서야 결혼을 한다고 설한다. 

화면 좌측 중상단에는 하늘에서 종자가 떨어지고, 그 아래에는 농부들이 소를 몰고 경작을 하고 있다. 이것은 농사를 지을 때, “천신(天神)의 힘으로 한번 씨를 뿌리면 일곱 번을 수확할 수 있는” 풍요를 표현한 것이다. 다시 그 아래에는 노인이 봉분에 들어가 앉아서 가족들의 예를 받고 있다. 

경에서 설하기를, 이때의 사람이 수명이 다하면 스스로 묘에 들어가 임종을 맞으며, 사후에는 범천이 되거나 부처님 전에 태어난다고 하였다. 또한 이때는 온갖 보화가 넘쳐나서 사람들이 길바닥에 보물이 떨어져 있어도 전혀 탐심을 내지 않는다고 설하였는데, 바로 아래 두 사람이 보물을 그냥 지나치는 장면이 보인다. 

미륵부처님이 하생하는 용화세상은 아미타부처님의 서방정토에 비해 상대적으로 염오(染汚)된 세계이고, 56억만년 이후에나 도래할 세상이지만, 우리가 몸담은 바로 이곳에서 맞이하는 이상세계라는 점에서 의미가 특별하다. 바로 용화세상의 도래에 변화라는 전제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결핍과 병고와 다툼이 가득할수록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사람들은 용화세상을 꿈꾸고 미륵이 구세주로서 도래하기를 갈구한다. 그러나 오히려 경전은 그러한 현실이 변화하기 전까지는 결코 미륵의 하생이 실현되지 않을 것임을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다. 

용화세상은 여전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만, 과학기술의 발전 속에 급변하는 현대사회의 면면들을 살펴보면서, 언젠가는 경전에서 그리는 시대상이 현실화될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 만약 그렇다면 이러한 미래의 변화는 과연 누가 가져오는가? ‘성불경’에서 설하듯이 이때의 사람들은 모두 석가모니 부처님 시대, 즉 현재에서부터 “선근의 씨를 심어온 이들”이다. 대가섭이 전한 가사의 의미는 석가모니 부처님 때 중생들이 닦았던 선근 공덕이 그대로 미륵부처님의 세계에 계승됨을 천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불법의 가르침으로부터 부단히 “(선한) 인연의 싹을 심어오지 않았더라면 어찌 오늘(미래에) 나(미륵)를 볼 수 있겠는가?” 변화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확실히 안다면, 더 이상 측천무후와 같이 허망하게 구세주로서의 미륵 혹은 전륜성왕을 참칭하거나 또는 그것에 현혹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부처도 군주도 모두 중생의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오동환 중국 섬서사범대 박사과정 ory88@qq.com

[1624호 / 2022년 3월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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