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눈물이 저 가슴에 스밀 길 없나요/ 야속하게 흐르다 서럽게 떨어져도/ 빙 빙 빙 겉돌기만 하다가/ 제풀에 서로 적셔 커져버릴 뿐/ 당신은 조금도 나누어 머금지 않네요// 나만의 고단한 사리들을 쏟아 부은 것도 아닌데/ 당신과의 인연으로 엮인 염주알들인데/ 때구르르 하염없이 헤매이지만 않게/ 사랑으로든 지혜로든 빛나다 사라지게/ 다소곳이 손 모아 담겨 있게만 해줘요’(‘연잎 방울’ 전문)
연은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하얗고 붉은 꽃을 피워낸다. 물이 닿아도 흔적을 남기지 않고 그대로 굴러 떨어지기에 세간의 더러움과 미움에 물들지 않는 청정한 마음을 상징한다. 그러나 시인은 그런 연잎을 사뭇 다르게 본다. 고결함으로 세상의 찬탄을 받는 연잎이 아니라 그 연잎에 물들고 싶어 하는 가냘픈 물방울들의 시선이다. 어떻게든 곁에 머물고 싶지만 자신이 너무도 무기력하다. 하소연하고 매달리고 싶지만 연잎은 강철로 만들어진 양 끔쩍도 않는다. 누군가를 짝사랑했다면, 그 사랑에 다가설 수 없는 절벽 같은 상실감을 가졌더라면 이미 그는 연잎 방울이다.
고명숙 시인의 첫 시집에는 사랑, 그리움, 바람, 아픔이 묻어난다. 시인의 마음과 손길을 거쳐 정제되고 생명력을 부여받은 언어들이다. 한껏 싱그러운 봄날의 기운과 까맣게 잊어버린 추억들이 소환돼 눈앞에 아련히 펼쳐진다. 때로는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그의 깊고 꿋꿋한 내면도 슬며시 꺼내 보인다.
‘엄마와 한 이불서 같이 잠들던 시절 엄마는 성치도 못한 딸의 살만 닿아도 당신의 피로와 쑤시는 삭신이 다 풀린다 하셨네/ 엄마 다리에 울애기 다리가 올려지기만 하여도 엄마의 어깨와 팔에 울애기 손을 얹어만 놓아도 뻐근하고 저리던 통증이 사그라든다 하셨네’(‘몸이 마음만큼’ 중)
시인은 엄마의 기억을 떠올리며 말한다. ‘내 몸 비록 장애가 있어 불능 투성이어도 하룻밤 자고 나면 더 높이 샘솟는 생명력만은 너에게 전해줄 수 있으면 좋겠네.…내 몸 비록 흐느적흐느적 쓸데없이 흔들려 똑바로 지탱하기 힘들어도 너와의 교감선은 바로 맞출 수 있으면 좋겠네.’라고.
‘솟대문학’ 시 추천으로 등단한 시인은 불자장애인 모임 보리수 아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보리수 아래 시·노래 음반 ‘꽃과 별과 시’ 등에 작사가로, 한국장애인문학협회 시낭송회 및 동화집에도 참여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625호 / 2022년 3월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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