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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절은 위험합니다

기자명 황산 스님

사람 모이면 갈등은 발생키 마련
갈등 인정은 다름을 존중하는 것
세간은 갈등하면서 역사 만들어
시끄러운 지금 화합하기 좋은 때

봉사자도 많고, 공부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많을 때는 황룡사가 시끄러웠습니다. 불자님들이 서로 갈등하고, 절 운영에 대한 불만도 있고, 단체끼리 알력도 생겼으며, 처음 오는 불자들은 기존 불자들의 텃세에 불만도 상당했습니다. 기도나 봉사하러 왔다가 상처받고 가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 종종 들렸고 이 사람이 오면 저 사람이 가고, 저 사람이 오면 이 사람이 가는 등 포교당 특성상 여러 일이 복합적으로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조용합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갑자기 이상적인, 화합이 잘되는 사찰이 된 것일까요? 그렇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절에 오는 사람이 줄었으니 갈등을 일으킬 원인이 사라져서 조용해졌습니다. 모이는 사람이 없으니 말 그대로 절간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조용한 사찰이 되는 것은 절망적입니다. 차라리 시끄러울 때가 좋았습니다. 시끄러움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지금 생각하면 호강도 그런 호강이 없었습니다. 사람이 모이면 당연히 분파가 생기고, 누군가는 불만이고, 누군가에게는 권력이 집중되기도 합니다. 남을 잘 배려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주장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업을 하기 위해 절에 오는 사람도 있고, 허영심이 많은 사람이 절에 다니기도 합니다. 이기적이고 아만 높은 이가 절에 오기도 하고, 잔머리 굴리는 사람도 절에 다닙니다. 부자, 가난한 이, 어린이, 어르신도 절에 다닙니다. 스님들의 성향도 다양합니다. 그러니 모이면 갈등하고 시끄러워지는 것입니다. 그 시끄러움을 인정한 상태에서 치유와 화합을 위해 노력해야 갈등이 해결되지 갈등이 전혀 없길 바라는 마음으로 화합시키려 한다면 번번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찰뿐 아니라 가정이나 직장, 모임,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때 고부갈등이 사회문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1인·2인 가구가 대세를 이루니 고부갈등이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고부간에 만날 일이 없고 비혼주의도 심해져서 지금은 어떤 며느리라도 있기만 하면 고맙다고들 할 정도입니다. 직장도 직장이 잘 될 때나 서로 갈등하는 것이지 직장이 사라지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하면 서로 갈등할 때가 그리워집니다. 

갈등을 시끄럽다며 거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남의 입에 오르내리고 싶지 않다며 그 어떤 것도 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갈등을 거부하는 것은 화합을 거부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갈등을 인정하는 것은 서로 다름을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자비와 지혜의 산물이 바로 갈등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중생이 있어야 부처가 있고 중생으로 인하여 부처가 되듯, 갈등이 있고 그것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화합을 이루는 길이고 그것이 바로 부처의 행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갈등을 조절하는 방법으로 육화합(六和合)을 설하셨습니다. 

육화합이란 ①신화동주(身和同住)라 하여 몸으로 동고동락하며 화합하여 같이 살라. ②구화무쟁(口和無諍)이라 하여 입으로 상대를 칭찬하고 인정하고 존중하라. ③의화동사(意和同事)라 하여 마음으로 같은 발보리심 하여 서로 받들어 모시라. ④계화동수(戒和同修)라 하여 도덕성과 계율을 함께 힘써 닦으라. ⑤견화동해(見和同解)라 하여 올바른 견해와 사유를 통해 맺힌 것을 풀며 살라. ⑥이화동균(利和同均)이라 하여 화합의 이익을 서로에게 균등하게 회향하라는 것입니다. 

대한불교조계종은 이판·사판이 서로 갈등하는 가운데 역사를 만들어갑니다. 그런데 그 갈등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아 보입니다. 출가자가 몇 명 되지 않아서 10년이 지나면 절이 텅텅 빌 것만 같습니다. 그러니 지금 종단 내부의 갈등은 복에 겨운 갈등인 셈입니다. 국가도 여·야가 서로 갈등할 때 좋은 정책이 모색됩니다. 독재국가보다 여·야 갈등이 있을 때가 오히려 좋은 시절인 이유입니다. 

대한민국의 출산율이 심각하게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땅값도 비싸고, 물건값도 비싸다고 여기저기서 불만이 높습니다. 치열하게 시끄러운 지금, ‘화합’하기 가장 좋은 때입니다.

황산 스님 울산 황룡사 주지 hwangsanjigong@daum.net

[1627호 / 2022년 4월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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