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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주 스님 독자적 미륵신앙이 ‘깨달음의 사회화’로 이어져”

  • 교학
  • 입력 2022.04.22 19:15
  • 수정 2022.04.22 20:55
  • 호수 1630
  • 댓글 0

4월22일, 동국대 불교대학·금산사·지구촌공생회 주최로 동국대서
사부대중 500여명 동참해…월주 스님 사상과 생애 전반 집중 탐색

4월22일 서울 동국대 중강당에서 ‘근현대 한국불교의 역동성-태공당 월주 대종사의 사상과 실천’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가 열렸다. 조계총 총무원장 원행, 금산사 주지 일원, 지구촌공생회·동국대 이사장 성우, 동국대 정각원장 진명, 전자불전문화콘텐츠연구소장 주경 스님, 종학연구소장 정도 스님과 조계종 총무원 부실장 스님들이 참석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조계종 홍보팀]
4월22일 서울 동국대 중강당에서 ‘근현대 한국불교의 역동성-태공당 월주 대종사의 사상과 실천’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가 열렸다. 조계총 총무원장 원행, 금산사 주지 일원, 지구촌공생회·동국대 이사장 성우, 동국대 정각원장 진명, 전자불전문화콘텐츠연구소장 주경 스님, 종학연구소장 정도 스님과 조계종 총무원 부실장 스님들이 참석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조계종 홍보팀]

조계종 17·28대 총무원장을 역임하는 등 현대 한국불교사에 큰 족적을 남겼으며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으로 보살행을 실천했던 태공당 월주 대종사(1935~2021)의 삶과 사상을 조명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HK+사업단과 제17교구본사 금산사, 지구촌공생회는 4월22일 서울 동국대 중강당에서 ‘근현대 한국불교의 역동성-태공당 월주 대종사의 사상과 실천’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지난해 7월 입적한 월주 스님이 평생 주창했던 ‘깨달음의 사회화’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향후 한국불교가 나아갈 방향성을 모색하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이 치사를 하고 있다. [조계종 홍보팀]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이 치사를 하고 있다. [조계종 홍보팀]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치사를 통해 “월주 스님은 ‘대보살 삶을 사셨던 어른’”이며 “월주 대종사는 ‘불법이 세간에 있고 세간을 떠나서는 깨닫지 못한다(佛法在世間 不離世間覺)’고 역설하셨고 스스로 이 신념을 평생 실천하셨다”고 밝혔다. 이어 “목 마른 이에게 물을 주고, 배고픈 이에게 밥을 줬으며, 아픈 이에겐 약을 준 대보살이셨다. 사부대중에게도 늘 ‘다시 근본 마음자리로 돌아가 중생을 이롭게 하라’고 가르쳤다. 거룩한 발자취를 되새길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 감회가 남다르다”고 소회를 전했다.

금산사 주지 일원 스님은 “월주 대종사는 강직한 성품과 인자함으로 근세 이후 쇠락해 가는 사찰 가람에 금강석 같은 주춧돌을 놓았다”면서 “오늘 이 자리가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 깃발을 다시 세우는 대장정의 출발점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지구촌공생회·동국대 이사장 성우 스님은 “‘천지는 나와 한 뿌리, 만물은 나와 한 몸’이라며 사람들 고통을 덜어주는 것을 행복을 삼았던 월주 대종사의 동체대비심은 이어 우리도 자비의 세계화를 실천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조계종 홍보팀]
[조계종 홍보팀]

개회식에 이어 시작된 학술대회에서는 첫 발표자로 중앙승가대 불교학부 교수 자현 스님이 나섰다. 자현 스님은 “월주 스님의 리더십이 초기 금산사 신앙을 대표하는 순제, 진표 스님의 사상을 계승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제 금산사는 백제 지역을 대표하는 진표계 자은종(법상종) 종찰이다. 월주 스님은 1961년 비구·취처승의 갈등이 정점에 달할 때 금산사 주지를 맡아 취처승이 장악하던 금산사를 비구승 사찰로 만들었다. 이때부터 13년간 주지를 맡으며 교구본사로서 사격을 키워나갔다. 제28대 총무원장에 선출됐을 당시에는 현재의 조계종 기틀을 확립하기도 했다.

자현 스님은 “월주 스님이 이끈 28대 집행부는 갈등 세력을 최대한 안고 가려는 ‘화합의 리더십’을 보였다”면서 “이는 통일신라 진표, 순제 스님이 강조한 율장의 가치와도 상통한다”고 말했다. 스님은 “월주 스님이 구도의 본질을 보살행에서 찾은 것도 지장의 대원(서원)과 일치한다. ‘깨달음의 사회화’는 지장의 구제력이면서 현실에서 정토를 구현하겠다는 미륵하생”이라고 전했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문광 스님은 월주 스님의 미륵하생신앙을 집중 탐색했다. 스님은 “미륵신앙의 결정체인 미륵하생신앙은 고통받는 중생을 위해 도솔천에서 미륵이 하생해 3회 설법으로 96억, 94억, 92억 중생을 차례로 제도해준다는 것”이라며 “하지만 월주 스님의 해석은 매우 독자적이고 창의적”이라고 설명했다.

문광 스님에 따르면 월주 스님의 미륵하생신앙은 미륵을 기다리고 신앙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미륵 화신이 되겠다는 능동적 태도가 핵심이다. 때문에 용화정토를 만드는 것도 미륵이 아닌 미륵과 중생의 공동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우리가 10선업과 보살행을 실천해 미륵하생을 앞당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용화정토에 대한 해석도 달랐다. ‘미륵삼부경’에서 용화정토는 온갖 화려함과 풍부함으로 설명되고 있지만, 월주 스님은 ‘탐심이 없고 다툼이 없는 세계가 용화정토’라고 정의했다. 문광 스님은 “도심에서 대중 속으로 뛰어들어 노동·인권·복지·환경·통일 운동에 앞장 선 월주 스님의 실천 근원에는 ‘자비행을 통한 용화정토의 구현’이라는 미륵사상이 깔려 있다”고 밝혔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금산사 ‘석련대’, ‘당간지주’, ‘방등계단’, ‘미륵전’. [문화재청]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금산사 ‘석련대’, ‘당간지주’, ‘방등계단’, ‘미륵전’. [문화재청]

금산사에 현존하는 성보문화재를 근거로 초창기 금산사의 가람배치를 추정하는 논문도 발표됐다. 김자현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는 금산사 문화재를 통해 사찰 중창 과정을 추적했다. 현재 금산사 창건과 관련한 유물이나 자료는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기록을 통해 8세기 중반 진표 스님이 금산사를 중창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진표 스님은 금당(金堂)에 미륵장육상을 보성하고, 남쪽 벽면에 미륵보살이 하생해 계를 내리고 있는 모습을 불화로 봉안했다.

김 교수는 “금산사 ‘방등계단’(보물)과 ‘미륵전’(국보)은 진표 스님의 미륵신앙을 여실히 보여준다”면서 “특히 ‘방등계단’의 경우, 양식으로는 고려시대 조성으로 추정되나 ‘삼국유사’에 진표 스님이 금산사(미륵사) 계단에서 법시를 베푼다는 내용이 있어 그 원형은 진표 스님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밝혔다. 여기서 방등은 ‘대승경전’을, 계단은 ‘수계의식을 행하는 장소’를 의미한다.

김 교수는 진표 스님 당시 세워진 금당이 ‘방등계단’ 앞쪽에 조영됐고, 현재 ‘석련대’(보물)가 위치한 곳이 금당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석련대는 석조연화좌대로 장육불 같은 큰 불상의 대좌 용도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김 교수는 “석련대는 고려시대 양식을 갖고 있어 10~11세기 석탑(979~981)이 건립된 뒤 혜덕왕사 소현스님(1038~1096)이 중창했을 당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하지만 8세기 당간지주를 대표하는 금산사 ‘당간지주’(보물)는 진표 스님이 금산사를 중창한 766년에 조성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지연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는 월주 스님의 사회 활동을 ‘대승기신론’의 일심(一心)과 비교 분석했다. 월주 스님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1989년), 불교인권위원회 공동대표(1990∼1995),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1996), 실업극복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1998)로 활동하고, 2003년부터 지구촌공생회라는 구호단체를 만들어 마실 물조차 없어 고통받고 있는 캄보디아에 우물 1600여개를 파고 초등학교를 설립하는 등 미얀마·캄보디아·라오스·몽골·네팔·케냐 등 6개 저개발국에서 교육 및 주민 생활환경 개선 사업에 심혈을 쏟았다.

김 교수는 “월주 스님의 근본 사상 중 ‘천지여야동근 만물여야일체, 동체, 귀일심원’은 ‘대승기신론’ ‘입의분’에서 말하는 중생심과 ‘해석분’에서 설하는 진여·일심과 연결된다”며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보현행·자비행이 궁극적으론 자신의 깨달음을 위한 수행이 된다’는 스님의 사상이 ‘대승기신론’의 일심과 맞닿아 있다”고 강조했다.

조기룡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는 월주 스님이 펼친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이 신사회 운동이었다고 주장했다.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이 계급논리에 기초한 ‘구 사회적 운동’(Old social movement)과는 달리 탈계급 논리에 기초한 ‘신 사회적 운동’(New social movement)이라는 분석이다. 신 사회적 운동은 평화운동, 생태 및 환경운동, 여성운동, 지역자치운동 등을 포함하면서 시민사회에 기초한 생활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려는 운동이다.

조 교수는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이 앞서 일어났던 ‘불교 정화운동’ ‘민중불교 운동’ 등 구사회적 운동의 패러다임을 전환했다”면서 “월주 스님의 ‘깨달음의 사회화’는 당시 불교계가 한국사회에서 대승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반성에서 비롯됐다. 이제 우리도 스님의 사상을 계승해 현 시점에 맞는 제2의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을 강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월주 스님의 임종게를 통해 스님의 생사관을 살펴보는 시간도 마련됐다. 월주 스님은 ‘하늘과 땅이 본래 크게 비어 있으니, 일체가 또한 부처로다. 오직 내가 살아온 모든 생애가 바로 임종게 아닌가’라는 게송을 남기고 지난해 7월22일 입적했다. 문현공 동국대 불교대학 조교수는 법문집과 회고록을 중심으로 월주 스님의 생사관을 초기·중기·말기로 나눠 탐색했다.

문 교수는 월주 스님의 출가동기가 일어나기 전까지의 생사관을 초기(1935~1956)로 설정했다. 이때 월주 스님은 김구의 서거와 연이어 일어난 6·25한국전쟁으로 삶과 죽음의 문제를 내면으로 받아들이는 청소년기를 보냈다. 중기(1957~2003) 생사관은 불이(不二)와 동체대비심으로 압축된다. 이 시기 월주 스님은 베트남전 파병 국군을 위문하고 10·27법난을 겪으며 인간 존재의 필멸성을 다시금 각성했다.

이후 지구촌공생회를 창립하면서는 남의 죽음을 나의 죽음과 동등한 것으로 받아들여 세상에 회향하는 ‘보개회향(普皆迴向)적 생사관’으로 전환됐고, 후기(2004~2021) 생사관은 ‘내가 살아온 삶이 임종게’라는 것으로 이어졌다고 문 교수는 분석했다.

성황리에 마무리된 이날 학술대회에는 조계총 총무원장 원행, 금산사 주지 일원, 지구촌공생회·동국대 이사장 성우, 동국대 정각원장 진명, 전자불전문화콘텐츠연구소장 주경 스님, 종학연구소장 정도 스님과 조계종 총무부장 삼혜, 기획실장 법원, 재무부장 탄하, 문화부장 성공, 사회부장 원경, 사서실장 송하, 완주 안심사 주지 일연, 서울 영화사 주지 평중 스님을 비롯해 각 종립학교 교장, 산하학교 교법사 등 사부대중 500여명이 동참했다. 안심사 주지 일연 스님은 동국대 성림동문회에 장학금 1000만원을 전달했다.

[조계종 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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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630호 / 2022년 4월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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