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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 다해 염불하며 고인을 추모하는 게 수행이자 포교”

  • 교계
  • 입력 2022.04.25 15:04
  • 호수 1630
  • 댓글 1

‘염불명인’ 부산 백양산 선광사 주지 성문 스님

구암 스님에게 영남 범패소리 익힌 후 전국 추모 법석서 염불
국내외 인정한 독보적인 ‘고혼청’, 한국문화예술 명인에 등록
매년 주민 초청 경로잔치…청소년대상 제전서 ‘사회봉사대상’

성문 스님은 “도량 내 크고 작은 자비나눔을 수행이라고 생각하며 함께해 온 신도님들이 늘 고맙고 존경스럽다”고 말한다.
성문 스님은 “도량 내 크고 작은 자비나눔을 수행이라고 생각하며 함께해 온 신도님들이 늘 고맙고 존경스럽다”고 말한다.

유튜브 전성시대. 산중의 스님도 손바닥 안에서 지구촌 모든 이들과 마주할 수 있는 디지털 인드라망의 사회에서 유튜브는 최상의 포교 방편 중 하나다. 하지만 유튜브 포교가 말처럼 쉬운 것만은 아니다. 포교의 주제를 찾기도, 접속자를 모으는 일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직접 채널을 개설한 것이 아님에도 유튜브를 통해 ‘염불’로 손꼽히는 스님이 있다. 법공양을 위해 낸 음반으로, 전국 곳곳 법회현장에서의 기도 음성을 통해 알려진 스님의 ‘고혼청(孤魂請)’이 한국은 물론 세계인의 마음을 울린다는 평가를 받으며 조회 숫자가 꾸준히 상승하더니 이제는 다양한 아류작까지 등장할 정도다. 바로 ‘염불 명인’으로 통하는 부산 백양산 선광사 주지 성문 스님이다.

스님은 17세에 충북 충주 수안보 미륵세계사로 출가해 조령산 토굴에서 가행정진을 마치고 1988년 부산에 정착했다. 이듬해인 1989년 현재 신라대 인근에 소박한 기도도량을 개원한 스님은 도심포교를 위해 불교 의식을 여법하게 펼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침 같은 사상구에 부산 영산재 교육도량인 관음사가 있었다. 이곳에서 구암 큰스님의 가르침을 배우며 영남 범패소리를 익혔고 인연이 닿는 전국 사찰의 추모 법석에서 수행하는 마음으로 염불을 이어갔다. 스님의 염불소리를 듣고 누군가는 지극한 염불삼매라 했고, 어떤 이는 절절한 참회정진이라고 찬탄했다. 그렇게 수행하는 마음으로 곳곳의 법석에서 염불을 이어온 스님이 자신만의 독보적인 ‘고혼청’을 정립한 것은 대구 송림사 법석에서였다.
 

성문 스님이 ‘고혼청’을 하는 모습.
성문 스님이 ‘고혼청’을 하는 모습.

“대규모 성지순례단을 맞이하는 법회였습니다. 그런데 진행상의 문제로 법회가 30분 지체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않고 기다리자니 막연했고, 본격적인 법회가 시작되기에 앞서 모든 사부대중이 참여하는 기도를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랐습니다. 그때 마이크를 잡고 고혼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족이든 동료든 이웃이든 주위에 세연을 다한 분을 두지 않은 이가 어디 있겠는가. 기다리는 시간에 이왕이면 돌아가신 분들을 위한 시간을 갖자.’ 당시 스님은 평소 외우고 있던 추모기도문의 목록을 구성해 기도를 시작했다. 불자들이 알아듣기 쉬운 우리말로 된 의식문 위주로 읊어나갔다. 어느새 순례단 전체가 온전히 스님의 염불성에 집중했고, 그 자리에서 많은 참가자가 눈물을 쏟아냈다. 이후 스님은 전국 곳곳의 사찰은 물론 일본, 베트남 등 해외의 크고 작은 법석에서도 고혼청을 올렸다.

성문 스님이 ‘고혼청 스님’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겪은 에피소드도 다양하다. 스님은 “한번은 불교행사장에서 만난 한 무용가가 고혼청을 배경음악으로 춤을 춘다고 하면서도 정작 그 소리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모른다고 했다”며 “녹음해둔 음악을 들어보니 내 목소리기에 소리의 당사자가 왔는데 이왕이면 직접 하겠다고 말씀드려 무용가도 저도 환희심으로 공연한 기억이 있다”고 전했다. 일본 이마리 도공 천도재도 잊을 수 없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조선 도공들을 추모하는 이 법석에서 스님의 염불소리가 울리자 마치 고향을 그리워했을 조선 도공들을 자연계도 함께 애도하듯 수백 마리의 까마귀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법회에 동참한 사부대중과 함께 지켜본 기억이 생생하다.

스님은 지난 2000년 부산 사상구 백양산 자락으로 도량을 이전 개원한 후 ‘선광사’라는 사명을 내걸고 수행과 포교를 이어왔다. 특히 부산시무형문화재 제9호 영산재 이수자로 활동해 온 스님은 주위의 권유로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에 염불 명인을 신청했고 까다로운 규정과 엄격한 과정을 거쳐 심사를 통과했다. 2017년 정식으로 한국문화예술명인 불교문화-음악(고혼청) 부문의 명인에 등록된 것이다. 지난해 1월에는 1회차 명인 갱신도 거쳤다.

무엇보다 성문 스님은 염불과 더불어 인재불사와 자비나눔을 수행의 근간으로 삼아왔다. 매년 개산 기념일에 지역 주민들을 초청해 경로잔치를 봉행하고 도량 아래 대덕여고 재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전달식을 열어 온 것이다. 스님은 “자비와 보시는 수행과 포교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강조한다.

경로잔치는 성문 스님이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이후 해마다 꾸준히 이어지면서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스님은 선광사를 개원하기 전 천막법당 시절부터 “도량을 원만하게 개원하면 반드시 부모님을 모시는 마음으로 지역 어르신들을 모시겠다”고 발원했다. 2000년 개산과 동시에 경로잔치를 시작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바로 천막법당 시절의 발원인 셈이다. 성문 스님은 “내실 있는 공연과 풍성한 공양, 자원봉사를 담당하는 불자들의 정성으로 경로잔치를 찾는 어르신들이 해마다 늘어났다”고 밝혔다.
 

지역 청소년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는 인재불사를 매년 이어오고 있다.
지역 청소년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는 인재불사를 매년 이어오고 있다.

성문 스님은 선광사와 가까운 곳에 자리한 대덕여고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는 인재 불사만큼은 반드시 매년 이어가겠다는 원력으로 한 해 한 해 기도와 정진을 거듭하고 있다. 스님은 “장학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스님이고 자랑스러운 사찰이 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수행하며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눔을 실천하는 도량이 될 것을 발원한다”고 말했다. 또 “무슨 일이든 한 가지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어 우리 사회의 밝은 등불이 되어주길 바란다”며 이 시대 청소년들을 향한 간절한 당부도 전했다. 꾸준한 청소년 인재불사로 성문 스님은 지난해 12월11일 ‘제19회 대한민국 청소년대상 제전’에서 대한민국 청소년 보호, 육성, 선도에 기여하고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사회봉사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성문 스님은 경로잔치와 장학불사 외에도 다양한 나눔을 전개하고 있다. 네팔 출신 니마 라마 셀파 린포체와 인연을 맺은 뒤 린포체가 신라대에서 학업을 마칠 때까지 뒷바라지하며 후원했다. 사상구불교연합회 회원 사찰로도 나눔의 모범이 되어온 덕분에 사상구불교연합회 회장으로 취임해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생명나눔실천 부산지역본부 이사로 활동하며 난치병 환우를 위한 저금통 모금 운동에도 적극적이다. 이밖에 3년 전부터는 부산지역 교계언론 종사자 자녀 장학금 전달식도 봉행하고 있다.

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1630호 / 2022년 4월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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