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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반가사유상이 가부좌풀고 엄지발가락 들어올린 진짜 이유는”

  • 기고
  • 입력 2022.05.31 14:05
  • 수정 2022.06.02 19:11
  • 호수 1635
  • 댓글 1

국보 83호 불상 생로병사·중생구제 ‘사유’하는 모습 아냐
고행하는 자세 풀고 반가부좌 취한 이유는 ‘중도’와 연결
젖혀진 엄지발가락은 세계 유일…깨달음 ‘희열·환희’ 표현

황건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가 최근 문화재 지정 번호 폐지 전까지 국보 제83호(1962-2)로 불린 반가사유상의 휜 엄지발가락이 불상의 모델이 된 승려가 맨발로 걸어 다닌 결과 실제로 발이 변형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해 반가사유상 엄지발가락에 대한 해석이 다양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규항 전 KBS 아나운서실장(83)이 5월30일 법보신문에 보내온 기고를 통해 83호 반가사유상의 ‘반가부좌 자세’와 ‘오른쪽 엄지발가락’은 중도적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밝혔다. 1961년 KBS에 입사해 35년간 아나운서로 일하면서 씨름·야구 중계 전문 캐스터로 활약한 이 전 아나운서실장은 퇴직 후 30년간 불교경전과 수행에 몰두해 ‘0의 행복-붓다는 인생을 발견한 콜럼버스’(2010) ‘부처님의 밥맛-이규항의 0의 행복론’(2018) 등을 발간하기도 했다. 편집자주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인도에서 동쪽으로 전래된 불상이 비로소 완성미를 보여준 것이 석굴암의 본존불이라는 것은 세계의 저명한 불교사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다. 석굴암 본존불과 함께 아름다움의 정수를 보여주는 불상은 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이다. 반가사유상은 인도에서 2세기경 유래한 불상의 형식으로 6세기 중국에서 완성되었다. 이후 우리나라의 삼국시대에 들어와 7세기경 신라에서 다시 다듬어져 세련미를 꽃피웠다. 이 양식은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아스카(飛鳥)시대 불상의 바탕이 되었다. 학계에서는 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과 일본의 국보 1호인 목조반가사유상이 신라의 같은 공방(工房)의 같은 장인(匠人)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칼 아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가 1960년대에 쓴 일본 국보 1호에 대한 인상기(印象記)를 살펴보자.

“몇십 년 간 철학자로서의 삶에서 이와 같이 인간 실존의 평화로운 모습을 구현한 예술품을 본 적이 없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영원한 마음의 평화를 최고조로 표현하고 있다.”

칼 야스퍼스는 모나리자의 미소가 외부세계에서 받은 자극에 의한 행복감의 미소라면 반가사유상은 득도하는 순간 내면에서 우러나온, 환희의 미소로 보았다. 한국과 일본의 국민들은 반가사유상의 신비한 미소에 감상 포인트를 두고 있다.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하기 전 인간의 생로병사를 고민하며 명상하는 모습 또는 사후에 돌아올 미래불인 미륵불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해석하는 경향도 있지만 사실과 거리가 있다.

또한 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 과 일본의 목조미륵보살 반가사유상(金銅·木造彌勒菩薩 半跏思惟像)의 이름에서 ‘미륵’과 ‘보살’은 이 작품을 정확히 감상하는 데 걸림돌이 될 지도 모르겠다. 다만 83호가 78호보다 두께가 얇다는 것은 주조(鑄造)기법의 우열(優劣)이므로 의미가 있으나 이 역시 본질의 문제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국보 78호와 국보 83호 두 불상을 비교해 살펴보자. 국보 78호가 불국사의 다보탑처럼 화려하고 장식적인 반면 83호는 단순하고 수수한 이미지의 석가탑의 이미지에 가깝다. 두 불상 모두 반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다. 사람들은 편안한 자세를 만들기 위해 ‘반책상다리·반가부좌(半跏趺坐)’의 변형 자세를 취하면서 앉기도 한다. 한편 인간의 신체구조상 가장 힘들게 앉는 자세 중 하나가 가부좌(跏趺坐)이기에 고행을 위한 수도인(修道人)의 자세가 되었다.

국보 83호(왼쪽)와 국보 78호 반가사유상. [국립중앙박물관]
국보 83호(왼쪽)와 국보 78호 반가사유상. [국립중앙박물관]

붓다 또한 6년 고행 동안 이 자세를 유지했을 것이다. 당시 인도에서는 몸을 혹사시키면 정신세계는 그에 비례하여 높은 경지에 이른다고 보았다. 그러나 붓다는 결국 고행무익(苦行無益)을 선언했다. 고행 중단이 당시로서는 출가에 못지않은 영단(英斷)이었다. 오죽이나 실망했으면 함께하던 다섯 사람의 수도자가 붓다의 곁을 떠났겠는가. 붓다는 인류 최초로 사람의 몸값을 매길 수 없는 무가보(無價寶·priceless)로 상정(想定)했다. 즉 고행무익의 선언은 신심동격화(身心同格化)로 득도 이전에 세운 금자탑일 것이다.

붓다는 중도(中途)에서 고행을 중단하였기에 중도(中道)를 발견할 수 있었다. 모순되게도 극단적인 쓴맛의 시간을 맛보았기에 보통의 시간도 행복이 될 수 있다는 중도(中道)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할 수 있었다. 1차 고행수도에서 벗어난 붓다는 수자타라는 여인의 타락죽 공양을 받으신 후 건강을 회복하고 ‘재수(再修)’ 수도에 들어가셨다. 2차 수행은 고행에서 해방된 상황이라 자세 역시 고행 때와는 판이하게 다른, 반책상 다리·반가부좌(半跏趺坐)의 명상 수도가 아니었을까.

돈황(敦皇)의 275호인 막고굴(莫高窟, 사막의 높은 곳에 있는 굴)에는 미륵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이 불상의 다리자세는 특이하게도 두 발목이 엑스(X)자로 교차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교각상(交脚像)이다. 이는 생활자세에 가깝다. 반가사유상의 자세는 가장 힘든 가부좌와 생활자세의 중도적인 자세라 할 수 있다. 야구 경기에서 정통파 투수가 한 경기에서 완투할 경우 팔의 위치가 전반과 달리 5회 이후에는 다소 아래쪽으로 내려온다. 이는 편안한 자세를 취해 끝까지 공을 던지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이처럼 붓다 역시 편안한 중도적 자세의 명상으로 자연스럽게 중도를 체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붓다의 깨달음은 몸을 통해서 득도하였기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의 것이므로 제자 가섭(迦葉)에게 염화미소(拈華微笑)로 이심전심(以心傳心)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우리나라에는 20여점의 반가사유상이 있다. 이 가운데 다수는 상체의 자세가 앞으로 많이 숙여져 있다. 마치 졸고 있는 듯한 작품도 있다. 이는 반책상다리로 취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자세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일본의 국보 반가사유상의 상체가 수직에 가깝게 세워져 있는 것은 불상을 이상적으로 미화(美化)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필자가 사숙(私淑)해 온 전 서울대 고고학과 교수 삼불암(三佛庵) 김원룡 선생의 저서 가운데 1978년 열화당에서 출간한 ‘한국미의 탐구’ 초간을 정독한 적이 있다. 책의 내용 중에는 83호 반가사유상에 대한 매우 충격적인 감상평이 있었다.

“불가사의한 웃음이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입과 눈이 그대로 두면 무한히 커질 것 같고 영원한 적막을 깨트리는 것 같으면서 그것을 더 강조하고 있는 벌어진 오른발 엄지발가락의 동작과 묘사는 한마디로 신비이다.”

고고학자로서의 전문성과 수필가로서의 통찰력이 한데 어우러진 미의식 표현의 결정(結晶)일 것이다. 이 문장에 감화 받은 것을 계기로 틈이 나면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해 83호 금동 반가사유상을 찾아갔다. 혹시 엄지발가락에 대한 해설사의 설명이 있을까 해서였다.

어느 해에는 인도 중국 미국과 한국에 있는 반가사유상 특별전이 열렸다. 나는 박물관행 도중 제발 젖혀진 엄지발가락의 불상이 없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83호 금동 반가사유상만이 지닌 고유한 모습이길 바랐다. 전시장을 여러 차례 돌면서 불상의 발가락만 열심히 관찰하였으나 다행히 단 한 점도 없었다. 다만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온 약 30㎝크기의 소품의 엄지발가락이 살짝 올라가 있었을 뿐이다.

미술사학서에 적힌 반가사유상의 감상평을 모아보면 다음과 같다. 근원(近園) 김용준(전 서울대교수, 화가이자 수필가)은 “곡선이 넘친 아름다운 육체에 조용히 혼자 웃는 삼매경의 얼굴”, 또 최순우(전 국립박물관장 1세대 고고학자) 선생은 “한국 문화재의 3대 걸작으로 무엇이라 형언할 수 없는 거룩함”이라고 하였다. 김원룡 교수에 이어 두 번째로 엄지발가락에 대한 언급은 유홍준 교수의 친우인 사학자 안병욱 교수는 “78호는 곰발바닥처럼 평발인데 83호는 엄지발가락을 살짝 비튼 가벼운 움직임이 있다. 얼굴에 손을 대고 명상하다가 법열에 들면서 입가에 미소가 감돌고 발가락은 살짝 움직이고 손가락은 뺨에서 막 떨어지려는 순간을 나타냈다”고 표현했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오랜 시간이 지나도 83호 금동 반가사유상 엄지발가락이 지닌 의미에 대한 궁금증은 가시지 않았다. 석굴암의 발견이 일제강점기 때 우편집배원이 우거진 수풀 속에 감추어져 있었던 보물을 우연히 발견하면서 세상에 알려진 사실을 떠올리며, 관련 자료를 찾고, 사유를 멈추지 않았다.

오랜 세월이 지난 어느 해 문득 영감이 떠올랐다. 붓다는 6년 고행 후 가장 편안한 중도의 자세에서 중도(中道)를 깨달았을 것이다. 그리고 엄지발가락의 동작은 환희(歡喜)의 순간 일어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깨달음의 의장(意匠·design)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그 진실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명제가 떠오르지 않았다. 당시 국민의사 이시형 박사의 특강을 듣게 되었는데 마지막 말씀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때의 자신감으로 ‘부처님의 밥맛’이라는 저서에 이렇게 적었다.

“반가사유상 엄지발가락이 발등 쪽으로 젖혀짐은, 나의 깨달음의 궁극은 바로 중도다! 라는 법열(法悅)의 순간 나올법한 움직임으로 보인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아! 반응(ah response)’이라고 부른다. 나의 지기(知己) 중 의사이자 미술사학자인 이성락 회장이 있다. 30여년 동안 ‘엄지발가락’에 대한 나의 견해에 반신반의하면서도 큰 관심을 보였고 최근 ‘데일리 임팩트 지’에 관련 글을 발표했다.

“의학적으로 뇌와 발바닥의 바빈스키 반사(Babinski reflex)라는 생물학적 연결성 때문에 친구의 지적은 예사롭지 않다. 지난 10여 년 동안 국내와 일본 동남아 지역 여러 나라의 불상을 볼 때마다 발가락을 빠짐없이 관찰했다. 또한 많은 서양화를 보면서도 굽어진 발가락이 묘사되어 있는지 주의 깊게 살폈다. 결론은 83호 반가사유상과 엇비슷한 것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동서양 문화권에서 유일한 작품이라고 확신하고 싶다.”

이규항 전 KBS아나운서 실장·KBS 2대 한국어 연구회장.
이규항 전 KBS아나운서 실장·KBS 2대 한국어 연구회장.

신라의 장인(匠人)은 득도의 의장(意匠)을 작품소재의 특성을 살려, 국보 83호 금동불상의 경우 젖혀진 엄지발가락에, 일본 국보 1호 목조불상에는 엄지와 검지손가락으로 공(空)사상을 수인(手印)으로 표현했다. 과연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을 조성한 신라의 장인은 어떻게 기발한 의장의 고안(考案)을 할 수 있었을까. 혹시 자손들의 모습에서 착상(着想)하지는 않았을까. 신라의 아기들도 오늘날처럼 엄마의 젖을 먹고 자랐을 것이다. 구순기의 아기들은 엄마의 품에 안겨 모유(母乳)를 먹을 때가 가장 행복감이 고조되는 순간이며, 본능적으로 엄지발가락을 뒤로 졎혔다 폈다하며 꼼지락거린다. 아기의 생명을 잇게 하는 가장 중요하고도 일상인 행복한 순간은 젖을 먹을 때다. 중도(中道)의 시간은 보통의 시간이며, 우리가 그것을 감각하지 못할 뿐 행복은 지금 여기 있다. 부처는, 깨달음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며, 이 순간 우리 일상의 작은 행복을 감각하는 것이 구도의 시작과 끝이라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전 KBS아나운서 실장·KBS 2대 한국어 연구회장

[1635호 / 2022년 6월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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