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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식·조명렬 부부학자가 남긴 온기

  • 기자칼럼
  • 입력 2022.06.10 21:17
  • 수정 2022.06.11 08:35
  • 호수 1636
  • 댓글 3

불교문화 전반에 지대한 공적을 남긴 홍윤식 동국대 명예교수가 2020년 5월28일 밤 세연을 마쳤다. 그리고 홍 교수의 2주기였던 지난 달 추모집 ‘연사회상의 인연 그 참다운 동행’(집옥재)이 비매품으로 발간됐다. 고인이 생전에 쓴 글과 인연 있는 이들의 추모글을 엮어낸 책이다. 서문은 간행위원장을 맡은 제자 한상길 동국대 교수가 썼다. “아쉽고 서운한 마음에 추모집 간행을 발의했고 처음엔 제자들 모임인 연사회(蓮史會) 회원들 글만 실으려 했지만 선생님은 우리들 만의 선생님이 아니었다.”

추모집에 실린 글은 모두 86편. 분량은 500쪽에 달한다. 고인의 제자만이 아니라 인연을 맺었던 국내외 스님, 학자, 동료, 후배, 친구, 친족, 가족, 이웃사촌까지…. 이들은 불쑥 찾아온 고인의 마지막 순간을 각자만의 방식으로 애도하고 있었다. 한 학자가 살아간 인생을 이렇게 많은 이들이 추모한 적이 있었던가. 

추모집 발간을 계획하고 실무를 이어오던 아내 조명렬 중앙승가대 명예교수는 편찬이 마무리될 즈음 병색이 완연해졌다고 한다. 조 교수는 3월27일 이른 아침 자식들의 만류에도 병원에서 나와 함께 발간을 준비하던 제자들을 급히 불렀다. 그날 조 교수는 심효섭 가천박물관 부관장에게 책 값과 발송비·봉정식 비용이 담긴 봉투를 전해주곤 몇 가지 당부를 남겼고, 다음날인 3월28일 새벽 세연을 접었다. 홍 교수가 별세한 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은 때였다.

2003년 인도순례 중 고 홍윤식 동국대 명예교수와 고 조명렬 중앙승가대 교수가 함께 찍은 사진.
2003년 인도순례 중 고 홍윤식 동국대 명예교수와 고 조명렬 중앙승가대 교수가 함께 찍은 사진.

코 끝이 찡해진 건 부부학자가 제자들에게 건넨 ‘자필 편지’와 ‘말’을 읽은 순간이었다. 이들은 1999년 6월과 2005년 1월 교토에서 유학하던 강현정 제주대 강사에게 장문의 글을 보냈다. “현정아. 현정이가 보고 싶구나. 고생이 많지. 원래 외국생활이 그런 것이란다. 그래도 그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성장하게 된단다. 현정이는 극복해 낼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곧바로 전화나 팩스 주려므나.” 

제자 김은진 영신여고 교사에겐 늘 품이 넉넉한 어른이었다. 김 교사는 “결혼하고도 꽤 오랜시간 아이소식이 없었던 저희 부부에게 주변에선 늘 ‘흔한’ 인사말을 했지만 선생님만은 한 번도 그 ‘흔한’ 인사말을 꺼내지 않으셨다”면서 “선배들이 아이소식을 궁금해 하며 물을 땐 무심한 듯 지나가는 말로 ‘요즘엔 각자 계획이 있다’고 하셨다. 늘 덤덤하게 말하셨지만 결혼 10년만에 아들 정우가 태어나자 누구보다 기뻐하시며 가장 먼저 연락을 주셨다”고 회상했다. 

이웃사촌들에겐 “5층 할머니·할아버지”로 통했다. 같은 동에 살던 정재헌 어린이는 홍 교수가 돌아가자 혼자 남은 조 교수를 삐뚤빼뚤한 글씨로 위로했다. “오층 할머니 많이 힘드시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저도 속상했어요. 이 편지 받고 힘내세요.” 

부부는 이제 곁에 없지만 이들이 생전 건넨 따듯한 위로는 여전히 온기로 남아 세상을 가득 채운다. 추모집에 실린 86인의 단상이 그 어떤 에세이보다 짙고 긴 여운을 남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636호 / 2022년 6월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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