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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지 않고도 칠판 가득 강의”

기자명 법보신문
  • 교계
  • 입력 2004.03.22 13:00
  • 댓글 0

전법 제자 3인이 회고하는 대종사

-큰스님은 식성이 특이했다.

사찰 음식은 담박해서 짜게 먹지 않는 데다 일부 스님들은 소금을 아예 입에 대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큰스님은 특이하게도 엄청 짜게 드셨다. 특히 비빔밥을 좋아했는데 고추장을 듬뿍 넣어 드시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식용류나 조미료는 전혀 드시지 않았고, 인삼·녹용 등 입에 좋다는 보약도 입에 대지 않았다. 범하 스님

-큰스님은 욕심이 없었던 분이다.

직지사, 용주사 주지를 잠깐 하시긴 했지만 문중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소임을 맡으셨다가도 일이 해결되면 바로 그만 두셨고 그래서 오래 머무르신 적이 없다. 특히 노장님은 평생 상좌의 자리를 다른 스님에게 부탁한 적이 없었는데 상좌가 말사 주지라도 맡게 되면 도리어 걱정하셨다. 세속의 명리에는 전혀 욕심이 없었고, 입적하실 때도 그렇게 맑고 깨끗할 수가 없었다. 원산 스님

-큰스님의 일상은 거의 기계와 같았다.

새벽 3시에 일어나 대중과 함께 예불을 보셨고 공양을 하시고, 강의를 하셨다. 하루의 생활이 평생의 생활이었다. 그렇게 변함이 없었다. 스님은 특히 등산을 많이 하시고 책에 연연하지 않았는데 어릴 때부터 한학을 하고 일본 유학까지 하신데다 평생을 수행으로 일관하셨기 때문에 굳이 책을 볼 필요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일단 강의가 시작되면 책을 펴지도 않고 칠판 가득히 메워 가셨다. 후학들을 참 열정적으로 가르치셨다. 연관 스님

-큰스님은 한번도 남에게 말을 놓은 적이 없다.

항상 존칭어를 쓰셨는데 제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변함이 없었다. 꼭 시골 할아버지 같았다. 무서운 스승이라기보다는 인자하고 따사로운 스승이었기 때문에 제자들도 하지 못할 말이 없었다. 정이 많으셔서 말년에 오자마자 일어서는 제자들을 무척 서운해 했다. 원산 스님

-큰스님은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의식이 강했다.

서울에 오시면 인사동에 들러 오래된 물건을 감상하셨고, 중국에 가서도 박물관과 미술관만은 꼭 들르셨다. 특히 중국 역사에 대해서는 중국 사람보다 더 잘 아셨는데, 비문이라도 나오면 그 자리에서 바로 해석하는 등 금석문에 능통했다. 특히 젊은 시절 잠시 동안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TV에 나오는 역사물을 보면 잘못을 바로 짚어내셨다. 범하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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