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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와 봉사바라밀

기자명 성원 스님

장맛비가 참으로 괴팍하게 내리는 것 같다.

장마철이 시작되면 물난리 걱정이 앞서기도 하지만 제비가 추녀 밑에서 날갯짓을 잠시 쉬었다가 언뜻 다시 펼쳐지는 파아란 하늘로 비행하는 풍경을 상상하기도 하고, 만해 스님의 시 ‘알 수 없어요’를 통해 그려지는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라는 서정을 기대해 보지만, 올해 장맛비는 다른 것 같다. 마치 숨 쉴 틈 없는 돌발 변수들이 돌출하는 현재 우리 정치판의 한 장면처럼 이번 장마는 근년과는 너무 다른 것 같다. 

올해는 유난히 많은 제비들이 봄부터 자광원 추녀 밑 여러 기둥과 추녀 사이에 집을 지었다. 초기에는 쫓아내려고도 해봤지만 그리 쉽지 않았다. 한편으로 생각하니 오갈 때를 찾지 못하고 쫓기다가 그나마 불교복지시설이 자비를 실천하는 곳이라 제비 한 가족쯤은 살려줄 걸 미리 알고 온 것도 같아 우리 식구로 받아들였다. 봄에 우리나라로 날아온 제비는 여름이 지나기 전에 두 번의 산란으로 새끼를 기르고 양쯔강 이남인 강남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온다고 우리들은 알고 있다. 얼마 전 발달한 전자기술로 16g 무게의 제비의 몸에 0.45g짜리 ‘지오로케트’라는 추적기를 달아 경로를 추적했더니 제비는 필리핀 대만을 거쳐 호주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 필리핀에 가서 겨울철을 보내고 다시 정확히 자신이 부화해 태어났던 그 집 추녀 아래로 날아왔다고 한다. 우리들이 흔히 강남에 갔다 온다고 하였는데 돌아올 때 양쯔강 이남 강남지역인 상해지역으로 돌아서 온 것이 확인되었다. 우리 조상들은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제비에게 자비를 베풀어 도와주면서 문득 불교대학에서 기초교리로 가르치는 보시바라밀이 생각났다. 보시바라밀은 보시를 통해 피안으로 나아간다는 말이다. 이렇게 설명하면 많은 사람들이 절에 시주를 많이 해야 좋은 세상에 갈 수 있다고 받아들이기 일쑤다. 그래서인지 스님들이 보시바라밀을 강조하는 법문을 들으면 약간의 거북함이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사실 보시바라밀로 번역된 단나(檀那 dānā)바라밀은 자신의 것을 조건 없이 베풀어주는 행위를 통해서 스스로 탐심(貪心)과 집착을 끊고, 헌신적으로 타인의 괴로움을 없애주는 불교 윤리적 실천교리이다. 

불교에서는 재화 없이 할 수 있는 일곱 가지 보시인 무재칠시(無材七施)를 가르치고 있으니 단나바라밀을 지금의 언어 감성으로 번역한다면 재물을 헌공하는 의미가 깊은 보시바라밀이라기보다 봉사바라밀로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보시라는 말이 재물에 너무 집중되어버린 지금의 언어 감성에서는 타인을 향한 따스한 눈길과 배려, 직접 실행하는 봉사와 타인의 마음을 알고 보듬어주는 무재칠시의 의미를 고스란히 담아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보다 직접적인 단나바라밀의 가르침은 언어적으로 봉사바라밀로 통용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사회복지시설인 장애인시설에서 열심히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살펴주고 직접 보살피면서 스스로의 마음을 갈무리하는 일이야말로 그대로가 단나바라밀이다. 더 나아가 우리들이 사회적 약자들뿐만 아니라 자연 환경적 약자를 향한 따스한 마음과 손길을 펼치는 것이 중생을 향한 단나바라밀이라고 설명하면서 함께 제비 보살피기를 애써 종용했다. 그랬더니 원래 성품이 따스한 사람들이어서인지 성가신 제비의 배설물 치우는 일과 지저분해지는 환경도 감수하면서 함께 잘 보호하고 있다.

장마를 잘 견디고 우리 추녀 아래에서 무럭무럭 자란 제비들이 강남으로 가서 황금 박씨를 물고 와서 열심히 단나바라밀을 실천하고 있는 우리 반도의 보살들에게 풍요와 평화가 가득한 도피안의 세계를 펼쳐주기를 장마 구름 사이에서 햇살 기다리듯 기대해 본다. 

성원 스님 약천사 신제주불교대학 보리왓 학장
sw0808@yahoo.com

[1639호 / 2022년 7월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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