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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법화경변②-420굴의 서품과 방편품

기자명 오동환

첫 장면 이불병좌상 배치 영취회·허공회 의미 부각

수·당 시대 들어 ‘법화경’ 전체 내용·교의 담은 변상 등장
의미적 연계성 강조하려 여러 품 조합 시도…표현 한계도
추상적 교의 전달 고민한 종교미술의 상상·재구성 엿보여

추상적 교의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시각화하는가? 이 문제는 모든 종교미술이 숙명적으로 안고 있는 고민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종교미술은 부단히 대상을 상상하고 창조하며 또 재구성하고 재현하는 과정을 겪는다. 돈황석굴 법화경변의 전개 과정에서 이러한 문제의 단면이 잘 드러난다. 

‘견보탑품’을 배경으로 한 이불병좌상은 분명 강력한 도상적 차별성과 상징성을 갖지만, ‘법화경’의 요의를 모두 담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에 따라 수당 시대에 접어들면서 돈황석굴에서 ‘법화경’의 전체적인 내용과 교의를 표현하는 변상이 등장하였다.

막고굴 420굴은 초기에 표현된 법화경변의 대표적인 예다. 420굴의 주실의 천정부는 복두형(覆斗形: 쌀되를 뒤집어 놓은 꼴)으로 조성되어 중앙의 방형 조정(藻頂)을 중심으로 네 방향으로 비탈진 천정을 이루었다. 이 네 경사면을 법화경변이 가득 채우고 있다. 그중 북측 경사면의 화면에 주목해보자. 먼저 우측을 보면 두 분의 여래가 하나의 보개(寶蓋) 아래, 그리고 하나의 대좌 위에 나란히 앉아 설법하는 장면으로 보아 견보탑품을 표현한 이불병좌상이다. 좌측 하단으로 시선을 옮겨보면 인물은 보이지 않고 잎이 무성한 나무들과 그 아래 험준한 기세를 자랑하는 산이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산 정상의 형세가 마치 부리를 갖춘 새의 모양이다. 그 형세의 특징으로 볼 때 이 산이 곧 ‘법화경’을 설법한 장소인 영취산을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영취산은 ‘법화경’ 뿐 아니라, ‘무량수경’, ‘금광명경’, ‘대보적경’ 같은 주요 대승경전이 설해진 곳이다. 용수는 ‘대지도론’에서 이 산에 대하여 두 가지 설을 전한다. 일설은 산정상이 독수리와 흡사하여 왕사성의 사람들이 취두산(鷲頭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또 일설은 왕사성 남쪽 시다림(尸陀林)에 시신이 생기면, 독수리들이 항상 날아와 시신을 쪼아 먹고는 다시 산정상으로 돌아가므로 취두산이라 부른다고 하였다. 천태 지의대사의 ‘묘법연화경문구’나 길장대사의 ‘법화의소’에서 이와 상통하는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지의나 길장 모두 수나라 때의 인물이므로 당시 영취산에 대한 인식이 420굴의 법화경변에 그대로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형상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영취산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420굴은 곧 영취산의 모습을 강조하여 법화경의 설법장소를 소개하는 ‘서품’을 표현하고 있다. 서품에 등장하는 세존과 미륵보살 문수보살 등은 우측에 간단히 그려 넣었다.

다시 시선을 좌측으로 이동하면 낯익은 장면이 보인다.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수많은 성중에 둘러싸인 채 오른팔을 받치고 옆으로 누워계신 모습이다. 그 우측 하단을 보면 관을 태우며 화장을 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이것은 여래의 열반을 묘사한 장면이다. ‘법화경’을 묘사하는 변상에 열반도가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존은 ‘서품’에서 미간의 백호로부터 광명을 내시어 온 세계를 비추셨다. 세존의 ‘법화경’ 설법은 이어지는 ‘방편품’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특히 ‘방편품’은 경의 대의를 밝히는 총강령에 해당한다. ‘방편품’에서 세존은 성문, 연각, 보살 삼승의 가르침은 방편이며 오직 일불승(一佛乘)이 있을 뿐이라고 천명하신다. 경에 따르면 “바른 법은 사려분별을 초월하여 있으며, 여래만이 이해하신다. 왜냐하면 여래께서는 오직 한 가지 해야 할 큰일을 위하여 세간에 나타나시기 때문이다. 그 큰일이란 여래의 지견을 중생들이 얻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곧 모든 중생이 성불할 수 있음을 밝히는 것이며, 중생이 모두 성불을 이룰 때까지 여래는 온갖 방편으로써 중생을 인도함을 알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석굴을 장엄하는 화사는 이와 같은 추상적 요의를 어떻게 시각화하여 참배자에게 경전의 의미를 전달할 것인가? ‘방편품’에서 설하기를, “그러므로 사리불이여, 나는 방편을 세워 온갖 괴로움을 다하는 도를 설하였고, 열반을 보였다. 내가 비록 열반을 말하였지만, 이것 또한 진실로 멸진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화사는 ‘대반열반경’의 ‘수명품’ 가운데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임하시는 일련의 장면들을 끌어와 ‘법화경’에서 설하는 “중생을 제도하고자 방편으로 열반을 보이심”을 표현한 것이다. 

420굴의 법화경변은 나머지 동, 남, 서의 경사면에 이어서 ‘방편품’ ‘비유품’ ‘관세음보살보문품’의 내용을 표현하였다. 이와 같은 구성은 북위에 성행했던 횡권식 연환화(橫卷式連環畵) 형식을 연용한 것이다. 이런 형식은 주로 본생인연고사나 불전고사와 같이 연속성을 갖춘 이야기를 표현할 때 적합하지만, ‘법화경’과 같이 서사적 연속성보다는 의미적 연계성에 따라 다수의 품을 조합해야 하는 경우에는 표현에 한계를 갖는다. 예를 들어 북측 경사면에서 첫 장면에 ‘견보답품’의 이불병좌상을 배치한 것은 분명 품의 순차적 배열을 무시하고 의도적으로 ‘서품’과 연계하여 경에서 영취회와 허공회가 갖는 의미를 부각하려는 것이지만, 효과적으로 부각되지 않는다. 당대(唐代) 이후에는 이 점을 개선하여 서품과 견보탑품의 연계와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구도에 변화를 준다. 

영취산의 외형적 특징을 강조하여 서품을 표현한 부분은 비록 석가모니 부처님이 설법한 역사적 실체로서의 측면은 부각될지 모르나, 정작 ‘법화경’ 설법의 주체로서 중심에 자리해야 할 세존과 성중(聖衆)의 존재가 경시되고 말았다. 이를 개선하고자 이후의 변상에서 영취산의 형상적 특징은 더 이상 부각되지 않고 영산회중의 배경으로서 산악으로 표현되어 자리잡는다. 이와 같은 변화는 지난회에 언급했던 막고굴 23굴 남벽에 장엄된 ‘허공회’를 마주보며 북벽에 장엄된 ‘영산회’의 예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오동환 중국 섬서사범대 박사과정 ory88@qq.com

[1639호 / 2022년 7월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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