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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법화경변④-막고굴 61굴 법화경변도

기자명 오동환

정형화된 형식으로 ‘경전 시각화’ 완성도 높여

후기 법화경변, 새로운 도상 줄고 예술적 완성도 낮아져
변상 구성하는 경전 내용 간 유기적 구성 더욱 치밀해져
참배자, 영취산 회중 참석한 또 한 명의 대중 될 수 있어  

돈황에서 법화경변의 형성과 발전은 앞서 살펴보았던 일련의 정토경변과 시기적으로는 궤를 같이한다. 그러나 내용상의 특징을 비교하면, 설법의 주체(석가모니부처님)가 직접 표현되며, 또한 법화경전에 담긴 교의에 중점을 두고 화면이 구성된다는 점에서 여타의 정토경변과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화사(畫師)는 ‘법화경’의 풍부한 내용 중 어느 것을 선택해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 것인가, 그리고 그것들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구성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해야 했다. 앞서 논의한 대로 초기에 유행한 석가·다보 이불병좌상이나 수대에 등장한 420굴 천장부의 변상 역시 모두 법화경변의 형성과정 중에 창출된 도상들이다. 

후기 법화경변은 형식적으로 정형화되는 추세를 보인다. 전반기와 같이 새로운 도상의 창출이나 예술적으로 완성도 높은 작품은 점점 보기 어려워졌다. 대신에 변상을 구성하는 경전의 내용들 사이에 유기적 구성이 더욱 치밀해졌다. 오대(五代, 907~960)에 제작된 막고굴 61굴 남벽의 법화경변은 이처럼 정형화된 변상의 대표적인 예이다. 

먼저 화면의 중앙을 보면 반원형으로 형성된 틀 내부에 석가모니부처님과 좌우에서 협시하는 문수·보현보살이 단좌하고, 그 주위에 보살, 호법신장, 그리고 사부대중이 회중에 참석해 설법을 듣고 있다. 석가모니불 삼존 뒤로는 우뚝 솟은 산세가 이어져 이것이 산상설법(山上說法), 즉 영취산 설법임을 알려주고 있다. 영취회 바로 아래에는 부처님이 오른쪽으로 돌아누우신 가운데 침상 왼쪽에서 불을 지펴 화장을 준비하고, 주위의 제자들이 비통해하는 모습이다. 이것은 지난 연재(12회)에서 언급했듯이 열반의 도상을 차용해 방편품을 묘사한 것이다. 즉, 여래가 화장되고 입멸하신 열반의 순간 또한 방편의 일환임을 경에서는 밝히고 있다. 

방편의 구체적인 면모는 어떠한 것들인가? 경에서 제시하는 답안은 법화칠유로 대표된다. 61굴 법화경변에서는 이와 관련한 도상들이 화면 하반부에 고루 배치돼 있다. 먼저 방편품을 나타내는 열반도 바로 아래에는 연재 13회에서 언급했던 비유품의 장면이 묘사되었다. 그 좌측 공간에는 신해품(가난한 아들의 비유), 약초유품, 화성유품(化城喩品)이 묘사되었고, 그 우측 공간에는 안락행품(전륜성왕 머리 속의 보배구슬 비유), 여래수량품(양의양약의 비유)이 묘사됐다. 이러한 비유들은 여래가 중생의 근기에 따라 방편을 달리해 제도하심을 알리는 것이다. 방편의 다양성은 세 가지 탈 것, 즉 성문을 위한 가르침, 연각을 위한 가르침, 보살을 위한 가르침으로 대표된다. 

그렇다면 무수한 방편을 통해 궁극적으로 중생을 이끌어 도달하려는 진리의 경계는 무엇인가? 중앙의 영취산회의 바로 위에는 낯익은 도상이 눈에 띤다. (중국의 목조전각의 형식을 따른) 탑 내부에 두 분의 부처님이 나란히 앉아 설법을 나누고, 시방에서 여러 불보살들이 찾아와 두 여래의 설법을 듣는 장면이다. 11회에서 우리는 이것이 이른바 ‘허공회’를 표현한 것으로, 견보탑품에서 다보여래가 석가모니여래의 ‘법화경’ 설법이 진리임을 증명하는 장면임을 밝힌 바 있다. ‘법화경’은 견보탑품을 기점으로 설법의 무대와 내용이 전환된다. 경의 후반부는 줄곧 땅에서 500유순이나 솟아오른 칠보탑 안에서 석가·다보 여래가 함께하는 허공회 설법이며, 방편이 아닌 대승의 교의를 직접적으로 설한다. 이때 깨달은 자로서 불타의 존재는 ‘법화경’을 매개로 영속적이고 두루한 법신으로 회향한다. 이것은 화면에서 정확히 영취회 하단에 배치된 방편품의 내용, 즉 화장되고 소멸될 불타의 몸이라는 관념과 대치한다. 

다시 벽화의 화면을 들여다 보자. 영취회를 이루는 반원형 경계의 외연을 따라 무수한 보살들이 구름을 타고 상승하는 장면이 보인다. 반원형 경계의 좌측 하단을 보면 이 행렬이 세 개의 봉우리로 표현된 산지로부터 몸을 반쯤 드러낸 보살에서 시작되고 있다. 다시 우측 하단을 보면 녹색으로 표현된 수면으로부터 보살들이 구름을 타고 솟아오르고 있다. 이것은 각각 무량한 시간을 거쳐 석가모니 부처님과 문수보살의 ‘법화경’ 설법을 수지해 온 무수한 보살들이 땅(종지용출품)과 바다(제바달다품)에서 용출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보살마하살이 미래의 성불을 수기받은 자이자 법신, 즉 ‘법화경’을 수지, 호념, 홍포, 설법할 주체로서 무대의 주인공으로 부상하는 순간이다. 

벽화의 상단부에서 허공회의 주변 공간들은 곧 ‘법화경’을 수지 독송하는 공덕을 찬양하고, ‘법화경’을 호념하고 설법하는 보살들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이들은 온갖 멸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끊임없이 중생의 불성을 일깨우고(상불경보살품), ‘법화경’의 수지 및 설법을 맹세하며(권지품), ‘법화경’의 홍포를 독려하며(수희공덕품), ‘법화경’을 수지, 독송하는 이들을 수호한다(다라니품, 관세음보살품, 약왕보살본사품, 묘장엄왕본사품 등).

이와 같은 법화경변 구성에서 중앙의 축을 따라 배치된 견보탑품, 종지용출품 및 제바달다품, 서품, 방편품, 비유품은 중당(中唐, 781~848) 이후 점차 고정된 형식으로 자리잡았다. 물론 이러한 정형화는 도상과 교의 사이에서 화사가 치열한 참구와 고민을 거친 결과 창출되고 자리잡은 것이다. 그러므로 형식의 정형화는 당연히 예술적 창의성의 저하를 수반하지만, 역으로 ‘시각화된 경전’으로의 완성도를 반증한다. 이를 통해 ‘법화경’에서 설파하는 방편바라밀과 지견바라밀의 관계가 더욱 명확해지고, 경전 내용은 더욱 입체적이고 유기적으로 재구성되며, 참배자는 영취산의 회중에 참석한 또 하나의 대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오동환 중국 섬서사범대 박사과정 ory88@qq.com

[1643호 / 2022년 8월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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