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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의불교 종결자’ 승조가 20대에 쓴 불멸의 논서

  • 불서
  • 입력 2022.08.12 15:42
  • 수정 2022.08.15 19:48
  • 호수 1644
  • 댓글 2

조론 역주
승조 지음 / 감산 약주 / 강승욱 역주 / 운주사/ 760쪽 / 3만8000원

중국 전통의 ‘무’ 개념을 ‘공’으로 녹여내 반야·열반 참뜻 제시
​​​​​​​삼론·화엄·선에 큰 영향…최고 주석서 감산 ‘조론약주’도 번역

‘오랑캐의 종교’로 폄하되던 불교가 현학(玄學)과 유학을 딛고 수당시대에 활짝 꽃 피울 수 있었던 데에는 ‘조론’의 역할이 컸다. 그림은 ‘조론’의 저자 승조 스님.
‘오랑캐의 종교’로 폄하되던 불교가 현학(玄學)과 유학을 딛고 수당시대에 활짝 꽃 피울 수 있었던 데에는 ‘조론’의 역할이 컸다. 그림은 ‘조론’의 저자 승조 스님.

승조 스님(僧肇, 384~414)은 동아시아 불교사에서 별처럼 빛나는 존재다. 31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연을 접었지만 그가 남긴 ‘조론(肇論)’은 불멸의 경지에 올랐다. 승조가 서역에서 온 거장 구마라집 스님의 가르침을 토대로 중국 전통의 무(無) 개념을 공(空)으로 녹여 반야와 열반의 참뜻을 제시한 논문 모음집이 ‘조론’이다.

‘조론’은 ‘중국불교의 교과서’로 일컬어진다. ‘조론’으로 인해 반야의 공사상을 근간으로 삼는 삼론종이 싹 텄다. 선의 전성시대 기라성 같은 선사들도 ‘조론’을 인용해 언어 이전의 세계를 노래했다. ‘오랑캐의 종교’로 폄하되던 불교가 현학(玄學)과 유학을 딛고 수당시대에 활짝 꽃 피울 수 있었던 데에는 ‘조론’의 역할이 컸다. 청량징관의 ‘화엄경소’, 영명연수의 ‘종경록’, 원오극근의 ‘벽암록’, 만송행수의 ‘종용록’ 등에서 ‘조론’은 숱하게 인용돼 왔다. ‘조론’은 우리나라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일찍이 신라의 혜공이 “내 전생은 승조였다”고 하는가 하면 원효는 승조의 사상에 근거해 ‘대승육정참회’를 집필했다. 승조는 도교적으로 잘못 이해하던 왜곡의 동아시아 불교시대를 끝낸 ‘격의불교 종결자’였다.

‘조론’은 짤막한 논문 모음집이지만 내용이 심오하고 위진남북조 시대의 고문과 변려문이 혼용돼 있어 이해가 쉽지 않다. 그런 까닭에 승조 입멸 후 명나라에 이르기까지 20종이 넘는 주석서가 지속적으로 나왔다. 이 중 단연 으뜸으로 간주되는 것이 명말 4대 고승으로 추앙받는 감산덕청 스님(1546~1623)의 ‘조론약주(肇論略註)’다. 감산은 승조가 ‘조론’을 펴낸 이후 1000년이 지나는 동안 축적된 방대한 경전들과 사상을 섭렵하고, 자신의 수행체험을 바탕으로 ‘조론’을 꼼꼼하게 해석하고 있다.

책의 구성은 ‘조론’을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조론’의 번역문과 원문 전체를 한 번에 보면서 ‘조론’ 자체를 음미할 수 있다. 이후 감산의 주해를 따라 한 구절 한 구절 함께 살펴보면서 다시 그 의미를 깊게 새길 수 있게 했다. 감산의 ‘조론약주’는 ‘조론’의 문장 사이사이에 주를 달아 단어의 설명, 문장과 문장의 연결, 촌평을 달고 있다. 이어 단락을 짓고 약주를 하여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해설을 붙였다.

‘조론’은 4편의 논(論)과 전체를 개괄하는 서문 격인 ‘종본의(宗本義)’, 2편의 편지로 이뤄져 있다. ‘물불천론(物不遷論)에서는 경불천(境不遷)·물불천(物不遷)·시불천(時不遷)·인과불천(因果不遷) 등을 통해 본래부터 공한 제법의 실상을 밝히고 있다. 감산은 말미에 자신이 이 논을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을 마치 고백서처럼 서술하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부진공론(不眞空論)’에서는 유와 무 양변을 통해 공의 진정한 의미를 구명한다. 당시 격의불교 시대의 잘못된 공의 이해를 비판하고 진공묘유(眞空妙有)를 설파하고 있다. 이어 ‘반야무지론(般若無知論)’에서는 지(知)와 무지(無知)를 상정해 상대적인 앎을 뛰어넘어 일체지(一切智)로서의 무지를 밝힌다. 특히 9회에 걸쳐 자신이 묻고 자신이 답하는 독특한 형식을 빌려 진실반야의 체(體)를 천명한다. 당시 이 논을 접한 여산혜원 스님의 재가제자 유유민과의 서신을 통해 분별을 뛰어넘은 반야무지를 구체적이고 심층적으로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열반무명론(涅槃無名論)’에서는 유명(有明)과 무명(無名, 승조 자신)이라는 두 가상 인물을 내세워 열반의 실체에 관한 논의를 19회에 걸쳐 펼친다. 유명한 9가지 질문인 ‘구절(九折)’과 무명이 제시한 명제와 9가지 답변인 ‘십연(十演)’을 부제로 달아 전개한다.

‘조론’과 조론약주’의 수려한 번역은 덕우 강승욱 법사가 맡았다. 군법사로 재직하다 2010년 전역한 그는 경전 및 선어록 강독을 이어오고 있으며, ‘원오심요 역주’ ‘마조어록 역주’ ‘방거사어록·시 역주’ ‘임제어록 역주’ 등을 펴낸 역경사(譯經師)다.

1600년 전 20대 약관의 승조는 구마라집이라는 디딤돌을 통해 서로 다른 언어문자와 기존 사유체계라는 걸림돌을 걷어내고 붓다와 만나는 길을 만들었다. 다시 1000년이 지나 감산은 승조라는 디딤돌을 통해 붓다와 만나는 길을 만들어냈다. 이제 강승욱 법사가 승조와 감산을 디딤돌 삼아 오늘날 우리가 붓다를 만날 수 있는 마음의 길을 새롭게 펼쳐 보이고 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644호 / 2022년 8월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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