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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발심과 서원

완전한 깨달음으로 가는 보살행 근거이자 토대

원보리심은 심층 에고의식 제거한 평등성지 증득으로 완성
자신만의 행복 버려야 역설적으로 가장 행복해진다는 원리
보살 자격은 발심 여부…뒤따르는 서원은 의례와 같은 역할

안성두 교수는 “발심이 견고해졌을 때 더 이상 후퇴함이 없이 바라밀을 위시한 대승보살행의 참다운 실천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법보신문 DB]
안성두 교수는 “발심이 견고해졌을 때 더 이상 후퇴함이 없이 바라밀을 위시한 대승보살행의 참다운 실천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법보신문 DB]

유가행파의 문헌들은 보살행을 위한 가장 중요한 출발점으로서 종성과 발심을 특히 중요시해서 이를 앞부분에서 다루고 있다. 4세기경에 편찬된 ‘보살지’의 제1장은 종성품(種姓品)이고 제2장은 발심품(發心品)으로서 양자는 보살행의 토대라고 설명되고 있다. 지난 번 설명에서 보았듯이 종성이란 불교수행자들이 어느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데 적합한지를 성향의 측면에서 구별한 일종의 교육학적 범주이다. 이렇게 수행자들을 종성 등에 따라 구분한 후에 그들이 대승의 보살도를 선택한 경우 반드시 권장되는 것이 바로 발심이다. 

발심이란 발보리심의 줄임말로서, 대승의 보살로서 살아가기를 결단한 승려 내지 재가불자가 정서적이고 의지적인 면은 물론 인지적인 면에서도 완전한 깨달음과 일체 중생의 구제라는 두 가지 목표를 향해 전 인격적으로 나아가고, 이를 체화하려는 실존적인 관심을 갖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발심 없이는 어느 누구도 보살행을 굳건히 실천하고 유지해 나갈 수 없기 때문에 발심은 바로 보살행의 토대가 된다. ‘화엄경’에서 “초발심시 변성정각(初發心時 便成正覺)”이라고 말하는 것도 바로 발심이 완전한 깨달음으로 가는 보살행의 근거이자 토대 역할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라는 두 가지 보살행의 목표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점은 상구보리가 아니라 하화중생에 중점이 놓여있다는 사실이다. 완전한 깨달음과 일체지자의 상태가 보살행의 목표로서 설정되어 있지만, 이는 모든 중생들을 구제하겠다는 대비심의 실천 없이는 사실상 성취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살지’는 발심이란 대비심에서 나온다고 말하는 것이다. 대비심의 최고의 형태는 중생들을 위없는 깨달음으로 이끌겠다는 열망일 것이며, 이것이 원보리심(願菩提心)으로 불리는 것이다. 

샨티데바(寂天, 7세기)는 입보리행론에서 원보리심의 계발을 위해 ①자·타의 평등성과 ②자·타의 교환을 명상하라고 권한다. ①은 자신과 타인이 모두 행복을 구하고 고통을 피하고자 하는 점에서는 동일하다는 황금률의 원칙에 입각해서 자신만을 위한 행복, 에고의식에 기초한 행복의 추구는 결코 성취될 수 없다고 깊이 자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타의 완전한 평등성의 인식에 의해 모든 형태의 차별의식이 근절될 것이다. 

유식학파는 이것이 무엇보다 심층적인 에고의식을 제거를 통한 평등성지(平等性智)의 증득에 의해 완성된다고 설명한다. 왜냐하면 평등성지가 염오된 자아의식인 염오의(染汚意)의 소멸을 통해 나타난다고 한다면, 표층적인 자아의식은 물론 불명확한 형태의 심층적인 에고의식을 제거할 때, 비로소 완전한 자타의 평등성에 대한 인식이 확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평등성의 인식은 온전히 대승적 요소이기 때문에 유식은 이를 계발하기 위한 특별한 수행법을 법무아의 인식과 관련시켜 설명하고 있다. 

자·타의 평등성을 체화한 예로서 티벳의 후기전파기에 활약했던 아티샤의 스승인 마이트리파(1007~1085)의 일화가 전해온다. 그가 설법을 하고 있었을 때 밖에서 개가 짖고 있었다, 이에 화가 난 한 청중이 개에게 돌을 던졌고, 개는 그 돌을 맞아 비명을 지르고 쓰러졌다. 그 순간에 마이트리파도 좌석에서 비명을 지르고 법단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개가 돌을 맞은 순간에 그는 자신과 개를 완전히 동일시했기 때문에, 개의 다친 부분과 동일한 그의 몸에도 상처가 생겨났다고 한다. 

그러나 샨티데바는 자-타의 평등성의 인식과 명상만으로는 부족하며, 더 나아가 타인의 행복을 위한 적극적 실천을 요구한다. 그것이 두 번째 자-타의 교환이다. 이는 자신의 행복을 타인의 고통과 적극적으로 그리고 자발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자신의 행복을 버릴 때 역설적으로 가장 행복해진다는 이 원리를 샨티데바는 행복을 위한 최고의 비밀이라고까지 선언하고 있다. 이는 티벳불교에서 보통 통렌(stong len) 수행법이라고 설해지는데, 즉 자신의 행복은 버리고(stong) 타인들의 고통을 취한다(len)는 의미이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에게 샨티데바의 이런 두 가지 실천이 처음부터 원만하게 행해지기란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범부인 한, 자연적 태도 속에서 나를 타인과 구별하면서, 자신의 보존과 이익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강력한 에고의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계적인 명상법이 권장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일체 중생에 대한 연민심을 발전시키기 위해 먼저 적대자들에 대해 그들이 언젠가 나의 어머니였다고 관상하는 방식 등이 그것이다. 경전은 이런 명상이 싫어하고 증오하는 적에 대해 깊은 연민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수행자가 “타인의 악행은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의 선행은 타인의 행복으로 익어가기를!”이라는 기원을 특히 불상이나 존경하는 스승 앞에서 행한다면, 보리심은 자라나고 깊이 마음에 뿌리내린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명상을 진실하게 행했을 때에는 반드시 징험이 나타나게 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기도 중에 몸에 물집이 생긴다든가 또는 장애가 나타난다든가 하는 등이다. 

나아가서 이런 발원만으로는 충분치 않을 것이며, 이를 실천하려고 하는 결단이 필요할 것이다. 앞의 것이 원보리심(願菩提心)이라면 후자는 행보리심(行菩提心)이다. 보통 이를 위한 네 가지 수행이 제시되고 있지만, 여기서는 마음을 정화시키는 방식만을 간단히 말하고자 한다. 그것은 깊은 참회와 현재의 상태보다 나아지려는 결심, 삼보에 죄를 고백하는 것, 그리고 공성에 대한 명상이나 만트라의 염송과 같은 대치의 힘에 의거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발심의 내용이다. 

대승전통에서 발심한 이후에 비로소 수행자는 ‘보살’이라는 칭호로 불릴 자격이 있다. 유식학파가 보살의 단계는 순결택분에서 비로소 시작된다고 설하는 것도 이 단계에서 발심이 굳건해지고 원보리심의 작용도 충분히 성숙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보살이라고 불릴  자격은 실제로 발심과 서원의 성취 여부에 놓여있을 것이다. 이를 갖춘 이후에야 자리와 이타의 적극적 실천, 진실한 대상의 이해, 최고의 보리의 증득이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발심과 이에 뒤따르는 서원은 보살에게 일종의 ‘관정의례’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보인다. 

이와 같이 발심은 위대한 보살행의 성취를 위한 토대이며 기초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발심이 견고해졌을 때 더 이상 후퇴함이 없이 바라밀을 위시한 대승보살행의 참다운 실천이 가능해질 것이다.

안성두 서울대 철학과 교수 sdahn@snu.ac.kr

[1644호 / 2022년 8월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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