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대비로도 뚫어볼 수 없는 것이 바람을 따라 비가 되어 앞산을 지나간다. 졸지마라! 조는 것이 법문이라면 재상 딸이 백정 집에 시집가는 꼴이다. 천년 죽(竹) 만년 송(松)이여! 가지마다 잎새마다 지지엽엽이 모두 다 한가지로 같구나. 참선을 아는 사해현학자(四海玄學者)에게 말한다. 동수무비촉조옹(動手無非觸祖翁) 손발 움직임이 무한청풍 맑은 바람 조사가풍 아닌 것이 없네!’
만공 스님 법문입니다. 보고 듣고 알 수 없다. 이 뭘까? 화두가 제자리니 지수화풍이 제자리다. 신심이 골라져 무장해제라, 바람이 부드럽다. 만고에 바다를 걸으니 발이 물이라, 그래서 만족인가? 누려도 가볍기만 하니 그래서 흡족인가? 출렁출렁 파도치니 과연 충족이로다. 죽비소리가 타파칠통이다. 하나로 가다듬어진 바람은 위력이다. 머리도 발바닥도 통쾌하다. 두두가 통쾌하다. 길은 숨길이다. 모든 길은 시원시원 숨길이다. 크게 열려 달마다.
낮춰서 비워서 겸허하게 대중에게 도움이 되자. 대중이 부처님이다. 활짝 열지 못해서 도움이 될 여유가 없으면 미끄러진다. 길은 언제나 환하게 뚫려있다. 몸도 마음도 호흡도 길이다. 시원시원하게 열려있는 길이다. 길은 무리가 없다. 억지가 없다. 힘들어도 무사태평가라. 길에서 울려오는 바람 그 바람이 산천을 숨 쉬게 한다.
천만차별 그 전에 이 고요! 어느 사이 그 실체가 불가설(不可說) 불가설(不可說)로 눈앞에 다 와 있다. 무시무처(無時無處)로 굴리기만 하면 된다. 열심히 길을 타면 된다.
해제는 만행이다. 마하반야바라밀! 놀라 터져 나오는 감탄의 외마디 마하! 내가 감동한 곱 곱으로 생명들을 감동시키자. 통풍시키자. 샘물처럼 솟아나오는 이 공부 양식은 보살행이다. 핏기 있을 때 몰아붙이자. ‘딴 일이 있을 수 없다. 외식제연(外息諸緣) 딴 생각이 있을 수 없다. 내심무천(內心無喘)’ 달마 스님 법문이다.
이뭘까? 고불이요, 태어나기 전이다. 서리어 한 모양으로 둥그렇네. 석가도 안다고 할 수 없는 것을 가섭이 어떻게 능히 전한다고 하느냐.
나무아미타불!
[1644호 / 2022년 8월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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