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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법화경변⑤-무수히 출현하는 보살

기자명 오동환

불성 자각하는 순간 모든 중생이 곧 보살

영취산 법화회서 천만억 보살마하살이 동시에 출현
모래 수 같이 많은 보살 제도는 법신 상주이기에 가능 
상불경보살·문수보살 용궁교화로 ‘법화경’ 공덕 증명

‘종지용출품’ 중 보살들이 사바세계의 땅을 열고 솟아오르는 장면.
‘제바달다품’ 중 문수보살의 제자들이 바다에서 출현하는 장면.
‘상불경보살품’의 장면들.

우리는 영취산의 법화회에 어떠한 신분으로 참여하는 것일까? 돈황 막고굴 61굴의 법화경변도를 보면 중심축을 따라서 배치된 허공회(견보탑품), 영취회(서품), 열반도(방편품), 화택유(비유품)의 주역은 분명 석가모니 부처님이다. 그러나 화면의 곳곳을 채우고 있는 것은 법회에 참석한 사부대중이며, 그중에서도 경전에서 시공간을 가리지 않고 무수히 등장하는 보살들이다. 특히 보살들이 중앙 영취회의 외연을 타고 올라 상단 허공회를 주관하시는 석가-다보 여래를 마주하며 문답을 나누는 장면으로 이어지는 구도는 법화회의 또 다른 주역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14회 참조)

‘종지용출품(從地踊出品)’에 의하면, 타방의 국토에서 법화회에 참석한 무량한 보살들이 자신들이 사바세계의 중생들을 위해서 홍경(弘經)에 힘쓰겠다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제의를 사양하시며 말씀하셨다. 

“이 사바세계에는 6만 항하의 모래 수와 같은 보살마하살이 있고, 그 하나하나의 보살들이 다시 6만 항하의 모래 같은 권속을 가지고 있다. 이 모든 보살들이 내가 입적한 후에 이 경을 수지하고 보호하고 독송하고 널리 설하리라.” 

그 순간 사바세계의 온 국토가 진동하더니 땅이 열리면서 한량없는 천만억 보살마하살이 동시에 솟아 나왔다. 그리고는 그 상수(上首)가 되는 네 보살이 석가모니 부처님께 문안을 드렸다. 이 무량한 보살들이 출현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석가여래가 이 무량한 보살들을 모두 당신께서 교화하셨노라고 말씀하시니, 아일다(미륵)는 세존이 성도하신지 불과 40년 사이에 이토록 무량한 보살들을 교화하였다는 말은 마치 스물다섯 살의 젊은이가 백 살의 노인을 가리켜 ‘이는 나의 아들이다’라고 하는 것과 같이 믿기 어렵다고 의문을 제기한다. 이때 석가여래는 자신이 성불한 지 이미 한량없고 가없는 시간이 흘렀노라고 말씀하신다. 다만 때에 따라 출가와 성도와 열반을 보이신 것은 모두 중생 교화를 위한 방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견보탑품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나듯 법(법화경)의 상주(常住)를 통해 성립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치 다보여래의 칠보탑이 법의 영속성을 증명하듯, ‘법화경’의 수지, 독송, 전법자로서의 보살의 영속적 출현을 증명한다. 즉, 지금까지 무량한 세월을 거쳐 그러하였듯이 앞으로도 이 땅에서 무수한 보살이 출현하여 보살행을 실천할 것임을 보증하는 것이다.

이것은 61굴 벽화에서 용출하는 보살들의 다른 한 축을 맡고 있는 제바달다품의 내용에서도 확인된다. 다보여래를 따라온 지적보살이 문수보살에게 물었다.

“문수보살이여, 용궁에 가시어 교화하신 중생은 얼마나 되나이까?”
“그 수는 한량없어 헤아릴 수도 없으며, 말로 할 수도 없고 생각으로 측량할 수도 없으나, 잠깐 기다리시면 스스로 증명하고 알 수 있으리다.”

문수사리의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량없는 보살이 보배 연꽃 위에 앉아, 바다로부터 솟아나서 영취산 허공 중에 머물렀다. 문수사리보살은 “바다 가운데서 오직 ‘묘법연화경’만을 설해왔음”을 강조한다.  

보살이 ‘법화경’을 수지하고 독송하고 홍경하는 공덕은 무엇인가? 이와 관련하여 벽화에 묘사된 한 장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취회 상단 좌측의 화면 가운데에는, 불자라면 당황할 만한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한 비구스님이 합장한 채 서 있고, 누군가가 그를 때릴 듯이 오른팔을 치켜들고 있다. 그런가 하면 스님이 자리를 깔고 속인들에게 절을 하는 모습도 보이고, 뺨을 맞는 모습도 보인다. 이처럼 불경(不敬)스러운 장면은 무엇을 묘사한 것일까? ‘상불경보살품’에서는 과거세의 정법이 멸진한 시대의 한 비구스님에 관한 이야기가 설해진다. 이 스님은 만나는 사람마다 출가자와 재가자를 가리지 않고 극진히 예배하며 말하였다. 

“나는 그대들을 깊이 공경하고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대들은 모두 보살도를 행하여 반드시 성불하기 때문이니라.” 

이 비구가 경전도 독송하지 않고 오직 사부대중을 보면 이와 같이 말하며 예배를 올리므로, 상불경(常不輕)보살이라 불렸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대부분 평범한 일상 중에 희노애락을 느끼는 범부의 삶을 살아가는데, 느닷없이 성불을 수기하면서 자신에게 예배를 올리니, 그들이 생각하기에 이 비구가 분명 어리석거나 미쳤거나 혹은 자신을 우롱하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를 꾸짖고 욕하고 심지어 때리거나 그에게 돌을 던졌다. 61굴의 장면은 바로 상불경 보살의 이야기를 묘사한 것이다. 

그러나 경에서 설하는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상불경 보살이 위음왕불(威音王佛)로부터 ‘법화경’을 수지한 후, 사부대중들에게 ‘법화경’을 전하였다. 그러자 이때에는 사부대중이 모두 그가 설하는 바를 믿고 따랐으며 무상정등각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상불경보살 이야기는 모든 중생이 성불하리라는 강한 신뢰를 전한다. 그러나 이러한 신뢰가 중생 스스로 불성에 대한 자각으로 이어지는 것은 ‘법화경’을 통해서 실현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그때의 상불경보살이 곧 지금의 자신이며, 현생에서 그렇게 빨리 무상정등각을 얻을 수 있었던 것 또한 ‘법화경’의 공덕이라고 설하신다. 

이제 61굴의 법화경변에서 “깨달은 자”가 아닌 “깨달을 자”를 주역으로서 부각시키는 구도(構圖)가 눈에 들어오게 된다. 보살은 성불을 미루는 존재가 아니라 법의 상주함을 알고 있는 존재이며, 중생 교화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법신으로서의 불타를 만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존은 말씀하신다. 

“‘법화경’을 수지하는 이는 나의 몸을 보는 것이며, 또한 다보여래와 여러 분신의 부처님을 보는 것이며, 또한 오늘 내가 교화하는 모든 보살을 보는 것이다.”(여래신력품)

오동환 중국 섬서사범대 박사과정 ory88@qq.com

[1645호 / 2022년 8월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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