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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스승들은 믿음을 강조하나요?

기자명 현웅 스님

돈독한 믿음 있어야 큰 깨달음도 가능

Q : 무엇이 바른 신심(信心)인가요?

A : 자기를 깨닫는 공부는 믿음이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불교를 그저 듣고 이해하려고만 하려 합니다. 그런데 이해하는 것도 믿음이 있으면 이해를 깊이 할 수 있지 믿음이 없이 들으면 귀에 머물지 않고 그냥 지나가 버립니다.

믿음은 이해하는 것을 마음에 연결시켜주어 잡념은 줄어들게 하면서 지혜로 바꾸게 하는 기틀을 마련해 줍니다. 저는 가끔 믿음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런 말을 전해줍니다.

“마치 환약을 만들 때 많은 한약제를 가루로 갈아 꿀로 배합해 환을 만들면 모든 가루가 꿀로 인해 하나로 모아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사람은 여러 가지 생각들이 일어나고 많이 아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자제가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믿음으로 인도되어 하나로 모아지면 지혜의 길로 인도가 가능합니다.

여러 가지 생각이 일어나는 것이나 아는 마음들은 환을 만들기 위해서 갈아놓은 한약가루와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꿀은 가루를 하나로 배합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환을 먹으면 몸의 병이 낫습니다. 그 말은 지혜로 연결되어 어리석음의 병이 고쳐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불교이론이나 법의 이치에 집착하게 되면 옳고 그름에 대한 견해가 강해져서 아는 마음은 아만으로 변하기 쉽고 또한 지혜 없는 믿음은 어리석음으로 변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방향이 바르게 되어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스승을 믿게 되면 스승과 제자사이에 가려진 벽이 없어지면서 신뢰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런 신뢰 속에서는 눈만 깜박해도 서로 알게 됩니다. 그래서 가르침이 쉽게 전해지지요.

그러나 우리가 형상을 믿으면 바른 믿음으로 못 들어갑니다. 이렇게 하면 좋고 저렇게 하면 싫다 하는 간택심에 마음을 뺏기게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삼십이상을 보고 나를 믿는다든가 여래의 음성을 듣고 믿는다든가 하면 이 사람은 바른 도로 가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금강경』에 구절 구절마다 바른 믿음을 말해놓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라한이 아라한과를 얻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옳은 아라한과를 얻은 사람이 아니다’라고 하는 가르침들이 바른 믿음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우리가 불교를 이해해서 만든 믿음을 가지고 신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속에는 나라는 생각을 덜어낼 수가 없어서 바른 깨달음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자기 견해를 놔버려야 됩니다. 그리고 믿는 것이 바른 믿음의 길입니다.

그런 믿음은 우리 내면에 있는 불성에 쉽게 연결되기 때문에 이런 믿음이 준비된 사람은 언제든지 깨달음은 가능한 것입니다. 옛부터 공부를 이루신 분들은 믿음의 공덕을 키워왔던 것입니다. 그것이 갖춰졌을 때 큰 깨달음이 왔었으니까요. 예를 들면 혜가가 눈밭에 앉아 달마의 가르침을 기다리는 것도 바로 그런 믿음입니다.


현웅 스님/미국 버클리 육조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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