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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연, ‘종교공존‧공공성지’ 고찰 의미 깊었다

기자명 법보
  • 사설
  • 입력 2022.08.29 11:17
  • 호수 1646
  • 댓글 0

폭넓은 고찰 속 예리한 질문 통해
순교‧성지 올곧이 드러내 인식 전환
다양한 종교 역사문화 중층 공간
특정종교 독점 성역화 지양 해야

불교사회연구소가 ‘다종교 현상과 종교 공존’ ‘세계 공공성지 운영의 현황과 검토’ 주제의 학술대회를 잇달아 개최했다. 가톨릭 서산 해미읍성 성지화, 가톨릭 서울 서소문 성지화, 신안 1004섬 개신교 성지화, 광주 천진암 가톨릭 성지 순례길 등의 사업 추진으로 불거진 갈등 원인을 짚고 그에 따른 해법을 모색한 자리였다. 특히 다양한 종교의 역사문화가 중층적으로 배어 있는 공간을 특정 종교의 ‘성지’로 확정‧추진하는 무리한 사업은 지양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점이 의미 깊었다. 이것은 ‘사회적 약속’이어야 한다. 그래야 갈등이 줄어들 수 있다. 불교계도 세심하게 살펴야 하지만 가톨릭과 개신교가 철저하게 성찰해야 한다고 본다. 

두 세미나를 관통한 키워드는 순교와 성지, 그리고 공존이다. 세 키워드의 개념에 대한 발제자의 폭넓은 고찰과 토론자들의 날카로운 질문 속에서 세 핵심어가 올곧이 드러났다. 특히 순교와 성지가 함의하고 있는 의미들을 종교, 역사, 문화 등의 다양한 관점에서 세밀하게 짚어냈는데 이것은 막연하게 알고 있던 개념에 대한 인식 전환의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 특히 이창익 고려대 교수의 ‘종교와 국가의 근접 조우-일제강점기 순교 개념의 굴절’ 논문에 눈길이 간다. 

한국천주교사회에서 볼 때 조선 후기에 발생한 가톨릭의 교난(敎難)은 박해로 묘사되지만 조선 형법에 따라 처분된 사옥으로도 기술될 수 있다. 병인양요‧병인박해가 대표적이다. 병인양요 당시 로즈 사령관의 군함을 안내한 사람은 리델 신부와 조선인 신자들이었다. 그즈음 대형선박들이 바다에 떠 있었던 건 이 땅에서 약탈한 것을 실어 가기 위함이었다. 무역이 아니라 침탈이 목적이었음은 분명했고, 대형선박과 천주교의 연루가 사실로 드러나며 큰 형벌이 내려졌다. 병인박해(丙寅迫害)가 병인사옥(丙寅邪獄)으로도 불리는 이유이다. 

이창익 교수가 제기한 의문에 공감이 간다. “천주교가 서양의 침공을 도왔다는 혐의와 사실은 순교의 촉매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과거 국가에 해를 끼친 사건과 연루된 순교를 현재 우리의 국가가 기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역사로서 기린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 의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독교의 경우 ‘박해’를 당해 죽음에 이른 ‘순교자’와 연관된 공간을 성지로 명명하고, 나아가 그 성지를 최대한 확대하는 ‘성역화’를 조성하기 때문이다. 

성당‧교회‧사찰 등의 대부분 종교계가 이미 성역 확대를 희망‧추진하고 있지 않는가 반문할 수 있다. 일리 있다. 그러나 이번 학술대회에서 제기한 건 일개 성당이나 교회의 단순 권역 확대가 아니다. 가톨릭‧천도교, 불교‧가톨릭, 불교‧개신교 등 다양한 종교와 역사문화가 겹쳐진 공간임에도 기독교 이외의 흔적을 지워내다시피 하며 추진하는 ‘성역화’를 문제를 거론했다. 지자체와의 긴밀한 연계를 통해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웃 종교는 물론 지역주민과의 심각한 갈등까지 초래했다. 가톨릭 서산 해미읍성 성지화, 가톨릭 서울 서소문 성지화, 가톨릭 천진암 성지화가 대표적이다. 

성지는 순례길과도 직결된다. 지역의 교세와 관광에 따른 수입을 목적으로 한 시장 논리가 맞아떨어지면 사업을 급속도로 진행되는 추세다. 한승훈 원광대 교수가 ‘현대 한국 종교의 성지 공간과 갈등-성역화, 순례길, 공공성지’ 논문을 통해 지적한 대목은 눈여겨보아야 한다. “성지갈등 사례들은 장소의 문화적 의미를 선점하려 하는 제도종교집단들의 충돌을 드러낸다. 이 경우 각 장소의 의미는 유력한 종교 교단들의 영향력과 자금력, 그리고 실행 의지의 격차에 따라 왜곡될 우려가 있다.” 경기도 광주가 추진한 바 있는 천진암과 남한산성을 잇는 ‘천진암 가톨릭 성지 순례길’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그러고 보면 우리 사회에서의 ‘공공성지’ 조성은 아직은 요원해 보인다. 배타성을 내세운 공격적 선교방식과 ‘성역‧성지 개발’에 혈안이 되어 있다시피 한 기독교의 행태 근절이 선행되어야 한다. ‘화합과 상생’을 전제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1646호 / 2022년 8월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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