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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경남 밀양 표충사 삼청각

기자명 법상 스님

안목 넓어야 종지 알아차릴 수 있어

온전한 시문 아닌 구절 인용해
불교적인 내용 아닌 것 아쉬워
수행자는 화두가 늘 이어져야
망상 벗어야 법천 만날 수 있어

경남 밀양 표충사 삼청각. / 구하천보(九河天輔) 스님.
경남 밀양 표충사 삼청각. / 구하천보(九河天輔) 스님.

貞筠柚箭 潤璧懷山
정균유전 윤벽회산
華藻雲浮 沈思泉湧
화조운부 심사천용
澤雨無偏 心田受潤
 택우무변 심전수윤
(바르기를 대나무 살대처럼 하면/ 산이 옥(玉)을 품은 것과 같다./ 곰곰이 생각하면 지혜가 샘솟듯 하여/ 갖가지 망상은 뜬구름처럼 여길 뿐이다./ 연못에 내리는 비가 치우침이 없듯이/ 마음 밭 적심도 이처럼 받아들여라.)

주련은 8언 3연으로 이뤄졌다. 글씨는 미루어 짐작하건대 통도사에서 수행하셨던 구하천보 스님의 묵적으로 보인다. 삼청각은 승방(僧房)이다. 여기에 걸린 주련은 온전한 시문이 아니라 구절을 인용하였으며 옮김에 있어서 순서가 틀린 것도 있다. 불교적 내용이 아니라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정균유전 윤벽회산(貞筠柚箭 潤璧懷山)은 남북조 시대 제나라 왕융(王融 467~493)이 지은 ‘증족숙위군검시’라는 시문에서 인용했다. 정균은 대나무 이름이다. 유전에서 유는 축(軸)과 같은 의미로 쓰여서 수레바퀴 가운데 구멍에 끼우는 막대를 말하기도, 베틀에 달린 제구의 하나인 바디를 말하기도 한다. 굴대나 바디는 모두 굽지 아니하고 곧다. 곧은 대나무로 화살을 만든다는 뜻이다. 

윤벽에서 윤은 ‘윤기 나다’ 또는 ‘광채 나다’, 벽은 둥근 옥을 말한다. 윤벽회산은 ‘산이 옥을 품고 있다’라는 뜻이다. ‘천자문’에서 ‘금은 여수(麗水)에서 나고 옥은 곤륜산에서 난다’라는 표현인 ‘금생려수 옥출곤강(金生麗水 玉出崑岡)’과 같은 흐름의 문맥이다. 참고로 여수는 운남성의 여강(麗江), 곤강은 초나라 사람 변화(卞和)가 이곳에서 옥을 얻어 성왕(成王)에게 바쳤다는 유래를 뜻한다. 비록 유생의 시구지만 수행자가 마음 쓰기를 대나무처럼 곧게 하고, 산이 옥을 품듯 마음 안에 옥이 있다는 경책으로 쓰였을 것이다.

화조운부 심사천용(華藻雲浮 沈思泉湧)은 주련에서 문장의 앞뒤가 바뀌어 있어 바로 잡아 해석했다. 이 구절은 당나라 때 구양순이 지은 ‘예문유취’ 권제16에 실려 있는 위변란찬술태자표(魏卞蘭贊述太子表)에서 인용했다. 심사는 담사(潭思)와 같이 깊은 생각을 말한다. 깊은 생각이란 무엇일까? 몸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찰나에도 머물러 있지 못한다. 따라서 수행자는 늘 화두가 샘솟는 물처럼 이어져야 한다. 화조(華藻)에서 화는 색채를, 조는 무늬를 뜻해 화려하다는 뜻이다. 이어서 나오는 뜬구름과 대비해 보면 화조는 일장춘몽과 같은 격이며 또한 황혼의 구름과도 같고 공화(空花)와 같다. 행하지 않고 과(果)를 얻으려고 한다면 모두 뜬구름 잡는 격이다. 수행자가 망상을 벗어나야 법천(法泉)을 만날 수 있다. 

택우무변 심전수윤(澤雨無偏 心田受潤)은 양나라 제2대 황제 간문제가 태자 시절 부왕에게 올린 상소문 ‘상대법송표’에서 인용했다. ‘예문유취’ 권제77에도 실려 있다. 원 문장은 다음과 같다. ‘강선지리택우무변심전 수윤시이구위공익(降宣至理澤雨無偏心田 受潤是以九圍共溺)’, “지극한 이치를 내리시니, 단비에 젖되 편중되지 않아 마음의 밭은 윤택함을 받습니다. 이에 구위(九圍)가 함께 잠깁니다.” 간문제는 양무제의 셋째 아들이며 그의 형은 ‘금강경’을 32분(分)으로 분단한 소명태자다. 연못에 내리는 비가 치우침 없이 고루 내리듯 부처님의 무연자비가 그러하며 지혜의 배가 끊어짐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심전수윤은 ‘법화경’에 나오는 ‘한날한시에 내리는 비가 초목을 적심에 차별이 없는 것’과 같다. 법우(法雨)를 받아들임에 조금 받는 자는 지푸라기를 띄우고 크게 받는 자는 철선을 띄우고도 남음이다. 수행자는 안목이 넓어야 부처님 말씀의 종지(宗旨)를 알아차릴 수 있다.

법상 스님 김해 정암사 주지 bbs4657@naver.com

[1646호 / 2022년 8월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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