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행자는 일이 곧 수행

기자명 법상 스님
더 좋게 하려는 마음이 앞서다보면

자칫 일로 인한 번잡함에 빠지는 법


언젠가 함께 공부하고 있는 수행모임에서 포교지를 하나 만들면 좋겠다는 말씀들이 있어 함께 시작했던 적이 있다. 그저 소박한 책자를 만들어 인연 닿는 이들이 함께 나눌 수 있고, 작게나마 수행 인연을 심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몇몇 편집 도반들과 함께 일을 시작했다.

한동안 편집을 하다 보니 욕심나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될 수 있다면 글을 많이 실었으면 좋겠고, 책의 용지도 좀 더 두껍고 좋은 것으로 하면 좋겠고, 설법과 경전내용도 더 보충된다면 좋겠고, 그러다 보니 사진도 첫 화면만이라도 흑백이 아닌 칼라로 넣으면 좋겠고, 인쇄도 마스터 인쇄보다는 옵셋 인쇄로 하면 더 좋겠고, 더 나아가 원고만 주면 편집 대행해주는 곳이 있다는데 그것도 좋겠다 싶고, 처음엔 500부를 생각했다가 그렇게 잘 편집할 바에야 1000~2000부 정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처음 어느 정도까지는 그것도 좋겠다, 좋겠다 했는데 그렇게 계속되는 마음을 가만히 바라보니 어느순간 ‘아차’싶은 마음이 ‘이건 욕심의 선을 넘어섰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며 혼자 멋적게 웃은 적이 있다.

보통 일에 욕심이 붙게 되면 조금 더 조금 더, 더 좋게 더 좋게를 생각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애초에 생각했던 일에 비해 너무 커져버린다거나, 본인의 능력에 비해 너무 일이 커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라면 과감하게 일의 초심으로 돌아가 일에 대한 본질이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일이란 부드럽고 자연스러워야 하지만 자칫 일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하고 껄끄러워진다면 그것은 필요에 의한 일이 되지 못하고 무언가 일에 대한 욕심이나 집착 혹은 무언가 바라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돌이켜 놓아버릴 수 있어야 한다.

마음 속에 어떤 것이 있어 일의 흐름이 이렇게 자연스럽지 못한가를 깨쳐 볼 수 있어야 한다. 모름지기 수행자가 하는 일이란 물의 흐름처럼 턱 내맡겨져 인연 따라 저절로 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될 수 있다면 작고 소박한 일을 할 일이다. 크고 거창하게 벌이는 일은 우리 마음을 뒤흔들어 놓기 아주 쉬운 법. 그만큼 마음 공부하는데 장애가 된다는 말이다. 일이 커지고 일의 성취가 커지고 그로 인해 자신의 입지가 커지며 이름을 드날리게 되면 그만큼 아상도 함께 커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일의 크고 작음이나 많고 적음을 탓할 것이 아니라 마음에 일이 커지고 작아지고를 챙겨야 한다. 아무리 일이 많아도 마음이 평화롭고 여유로우며 함이 없이 할 수 있다면 일이 없는 것이지만,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마음에서 사소한 욕심과 집착이 생겨나고 그 일로 인해 마음 쓰는 일이 잦아진다면 일이 많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마음공부하는 생활수행자는 첫째 될 수 있다면 작고 소박한 일을 하며 번잡한 일을 줄여야 할 것이고, 둘째 어떤 일이든 마음에 일이 없게 함이 없이 할 수 있어야 하겠다. 그렇게 된다면 일이 곧 마음을 비우는 수행이 될 것이다.


법상 스님/budda1109@korea.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