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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임윤찬과 우륵의 대악

기자명 윤소희

즐거우나 무절제하지 않고 슬프나 비통하지 않다

임윤찬, 뛰어난 테크닉에 우륵 대악정신으로 반클라이번 우승
서양악기 들어온지 240년 만에 세계 피아노계 휩쓰는 한국인
가야금·하프·피아노·달시머, 뫼비우스 띠처럼 지구 돌며 변신

반클라이번콩쿠르에서 임윤찬이 우승한 이후 쇼팽콩쿠르 조성진의 연주를 번갈아 듣느라 불면증이 도졌다. 동일 곡, 두 사람의 연주를 듣다 엄마도 아빠도 선택할 수 없는 아이가 되어 연주 후기를 달았더니 폴란드, 유럽, 미국에서 동조하는 댓글이 메일로 날아온다. 그러면 다시금 밤새 그 연주를 들으며 21세기 디지털 삶을 실감하고 있다.  

때는 정조 시절, 노론 명문가 박사유의 막내 박지원이 홍국영의 세도에 휘둘려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중 영조의 부마이자 연암의 8촌 형 박명원이 건륭황제 만수절 축하사절로 간다기에 먹과 붓을 챙겨 따라나섰다. 그렇게 다녀오는 길에 서양문물이 딸려 온 때가 1780년 무렵. 불과 240여년 만에 쇼팽콩쿠르의 조성진, 반클라이번의 임윤찬까지 세계 피아노계를 한국인이 휩쓸고 있다. 연암이 열하에 다녀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세기 초, 이규경(李圭景, 1788~?)이  ‘구라철사금자보’를 펴냈고 오늘날 ‘양금’이라 불리는 이 악기는 한국전통악기로 분류되고 있다.

“구라파에서 들어온 철사로 된 금”에서 비롯된 ‘양금’은 페르시아의 달시머가 시원이다. 당시 문헌을 보면 “달시머가 중국에 들어온 것은 이마두(利瑪竇)에 의해서”라고 적고 있는데, 이마두는 마태오리치(1552~1610)를 이른 말이다. 페르시아에서 온 이 악기의 이름 ‘달시머(Dulcimer)’는 우아한 음색이란 뜻인 ‘Dulce Melos’에서 온 말이다. 기록에는 “한 조에 4개의 줄로 된 18조의 구리줄(銅絃) 72개를 판면에 걸고, 두 손에 망치를 들고 친다”하니 피아노 해머의 옛 모습이다. 또한 “달시머는 회교(이슬람)음악에 쓰이다 10~12세기 사이 로마의 십자군에 의하여 구라파에 들어가 중세 이후 널리 확산되었다”고 적고 있어 조선 엘리트의 지식수준과 구체성도 만만찮다.

테크닉과 예술성의 완벽한 조화로 세상을 놀라게 한 임윤찬에게 비결을 묻자 “우륵을 생각하며 연주했다”하니 이것은 또 무슨 말인가? ‘삼국사기’에 따르면 우륵은 가야국 성열현(省熱縣) 사람이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그곳은 고구려 유민이 많아 고구려 우씨일 가능성이 높고 대대로 가야 사람이 아니었기에 신라에 쉽게 투항하였으며 벼슬이 높았다. 국문학자 양주동(1903~1977)은 ‘삼국사기’의 ‘지리지’에 의거해 우륵의 가야고 12곡이 당시의 지명이었고, 오늘날 함안·고령 등지의 지방임을 밝혀내었다. 또 음악학자들은 가야금으로 반주를 하는 춤곡 ‘사자기’, 완함과 어우러진 농환(弄丸)류의 ‘보기’와 더불어 지역 특유의 악풍을 가려내었다.

우륵이 신라로 귀화하여 그 곡들을 연주하자 법흥왕과 신라 악사들은 번차음하고, 아정하지 못한 곡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곡만을 원하였다. 처음 우륵은 이를 마뜩잖게 여겼으나 간추린 다섯 곡을 듣고 “낙이불유(樂而不流) 애이불비(哀而不悲)하니 대악(大樂)”이라 하였고, 임금도 크게 기뻐하였다. 임윤찬이 우륵을 생각했음은 ‘낙이불유 애이불비’의 절제하여 아정하고 품위 있는 연주를 추구했다는 것이니, 테크닉이 뛰어난 임윤찬에게 우륵의 대악정신은 신의 한 수였다. 

사람들은 가야금을 순수 우리 악기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삼국사기’의 ‘나고기(羅古記)’에는 “가야국의 가실왕(재위 421~451)이 당(唐)의 악기를 보고 만듦”을 전하고 있다. 또한 나해왕(奈解王, 196~230) 때 물계자(勿稽子)가 구금제곡(拘琴制曲)하였다는 기록과 자비왕(慈悲王, 458~479) 때 “백결선생이 ‘고’를 쳐서 방아소리를 냈다”는 기록도 있어 물계자와 백결선생의 악기가 가야금의 전신인지, 아니면 변한이나 진한의 슬(瑟) 또는 축(筑) 계열이었는지 여러 의문을 안고 있다. 

가야금을 일본에 전한 사람이 신라인이라, 일본에서는 ‘시라기고토(新羅琴)’라 한다. 쇼쇼인에 소장된 시라기고토와 신라의 가야금은 양이두(羊耳頭)를 하고 있다.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 양이두 가야금을 ‘버끔’이라 하였다. 당시에는 그것이 그냥 별명인 줄 알았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법금(法琴)’이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풍물놀이 타악기를 ‘버꾸(法具)’라고 하던 것과 같은 현상이다. 신라 삼현 중 유일하게 가야금만을 법금이라 한 것은 특별히 가야금을 불교음악에 많이 사용했기 때문인지 새로운 의문이 솟기도 한다.  

양이두 가야금은 조선조까지 그대로 쓰여 오다가 조선 말기에 양이두를 떼어 내고 얇은 줄을 맨 산조 가야금이 생겨났다. 이후 17현, 18현, 21현으로 늘어나다가 요즈음 국악관현악단은 대부분 25현을 쓰고 있다. 이렇듯 가야금 현이 늘어나자 서양의 하프와 같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아무튼 가야금, 하프, 피아노, 달시머는 뫼비우스의 띠와도 같이 지구를 돌며 변신하고 있다. 

예로부터 악기의 귀재들은 사물의 소리를 흉내 내며 놀곤 하였다. ‘삼국사기’의 ‘악지’에는 우륵에 이어 니문(尼文)이 지은 오(까마귀)·서(쥐)·순(메뚜기)의 악곡도 있다. 임윤찬에게 니문의 까마귀·쥐·메뚜기를 흉내 내 보라면 즉시 연주해 보일 것이라. 그 소리를 상상해 보기도 한다. 임윤찬이 세계 연주여행을 다니면서 앙코르곡으로 니문의 오(烏)·서(鼠)·순(鶉)을 연주하면 어떻게 될까? 세계 청중들이 임윤찬의 까마귀·쥐·메뚜기를 얼마나 좋아할까! 또한 유튜브 댓글러들은 어떤 댓글 잔치를 벌일지 상상만 해도 즐거워진다. 

윤소희 음악인류학 박사·한국불교음악학회 학술위원장
ysh3586@hanmail.net

[1647호 / 2022년 9월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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