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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내소사 천왕문

기자명 법상 스님

해안 선사 활연한 경지 설명할 수 없어

해안봉수 스님 오도송 주련으로
눈 열리면 귀도 자연스레 열려
못 깨닫는건 마음근원 모르기에
자문자답하면 기쁜소식 얻게 돼

내소사 천왕문. / 글씨 일중 김충현(一中 金忠顯 1921~2006).
내소사 천왕문. / 글씨 일중 김충현(一中 金忠顯 1921~2006).

鐸鳴鍾落又竹篦 鳳飛銀山鐵壁外
탁명종락우죽비 봉비은산철벽외

若人問我喜消息 會僧堂裡滿缽供
약인문아희소식 회승당리만발공
(목탁 소리 울리고 종소리 끝나자 또한 죽비를 치니/ 봉황새는 은산철벽(銀山鐵壁) 밖으로 날아가 버렸네./ 만일 사람들이 내게 기쁜 소식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스님들 모인 승당에서 만발공양을 올리리라.)

이 주련은 내소사에서 수행하시던 해안봉수(海眼鳳秀 1901~1974) 스님의 오도송이다. 해안 스님은 한학을 배우다가 14세 때인 1914년 내소사에서 만허(滿虛)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축발했다. 1917년 장성 백양사에서 만암종헌(曼庵宗憲 1876~1957)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았다. 1918년 성도절을 앞두고 7일간 용맹정진할 때 조실 학명계종(鶴明啓宗 1867~1929) 스님으로부터 은산철벽을 타파하라는 화두를 받고 정진하다가 7일째 되던 날 저녁 공양을 알리는 목탁 소리에 이어 대종 소리가 울려 퍼진 뒤 선원에서 방선 죽비소리가 탁! 탁! 하고 나자 그 소리를 듣고 오도했다고 전한다.

목탁, 범종, 죽비 모두 깨우침을 독려하는 수행 도구다. 목탁은 목어를 말하며 눈뜬 사람이 되라는 뜻이므로 이를 개안이라고 한다. 눈이 열려야 비로소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있다. 눈이 열리면 성성적적한 경지에 이르러 혼침과 망상에 빠지지 않는 법이다. 종락(鍾落)은 종소리가 끝날 즈음이다. 흔히 범종은 지옥 중생을 제도하는 불전 사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지옥은 어디에 있을까? 불교에서는 지옥도 극락도 모두 나의 마음 안에 있을 뿐이다. 지옥은 말이 안 통하는 것이 지옥이다. 진리를 일러 주고자 하나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 지옥이 생겨나는 법이다. 눈이 열리면 귀도 열리게 된다. 죽비(竹篦)는 선가에서 수행을 지도하거나 격려할 때 사용한다. 목탁·범종·죽비소리 모두 수행자의 일상이기도 하다. 일상에 도가 있고 깨달음이 있는 것이지 달리 특별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은산철벽은 꽉 막혀 있는 것이다. 선문에서 뚫기 어려운 공안을 나타낸다. 봉비(鳳飛)는 봉황이 난다는 뜻이다. 봉황은 해안 스님이라 볼 수도 있고 각자의 성품인 마음이라 볼 수도 있다. 의문이 시원하게 터져 밝게 되었다는 것을 활연(豁然)이라고 한다. 활연한 경지를 설명할 수 없으나 그래도 언어를 빌리지 아니하면 심중을 드러낼 수 없기에 봉황이 은산철벽을 무너뜨리고 창공을 날아갔다고 하였음이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것은 마음이 근원을 모르기 때문이다. 여기에 갇혀서 자신도 모르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은산철벽이다. 이를 깨달아 박차고 나가면 그것이 곧 봉황이 나는 격이다.

기쁜 소식은 무엇일까? 본래면목을 찾았음이니 왕으로 비유하면 심왕, 부처로 비유하면 심불, 꽃으로 비유하면 영서화, 새로 비유하면 극락조다. 이 도리를 봉새를 빌려 사용하였을 뿐이다. 내소사의 해안 선사는 이레 만에 큰 소식을 얻었다는데 우리는 일주일이 아니라 지금까지 불법을 하면서 왜 기쁜 소식을 얻지 못함일까? 두리번거리다가 남에게 묻지를 말고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을 해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회승당(會僧堂)은 스님들이 거처하는 집이다. 만발공(滿缽供)은 만발공양으로 발우에 가득 채우는 공양이라는 뜻이며 이는 복을 짓기 위하여 제한 없이 많은 스님을 초청하여 공양물을 발우에 한가득 담아주는 것을 말한다. 법을 전하는 스님들께 법공양을 넘치도록 전해주겠다는 의미다. 아무리 좋은 법도 묵혀두면 빛을 잃어버린다. 그러기에 경전에서는 수지독송하라고 간곡하게 말씀한다. 공양은 먹어야 배가 부르듯이 수북한 법공양을 먹어야만 비로소 진인(眞人)이 되는 것이다.

법상 스님 김해 정암사 주지 bbs4657@naver.com

[1648호 / 2022년 9월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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