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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열반경변⓶-막고굴 332굴

기자명 오동환

세존 대하듯 사리탑에 공양하며 법신 현현 드러내

세존 열반 기록한 여러 경전서 극적인 장면 선별 배치
시각화된 열반 보며 경외감 함께 인간적 면모도 발견
중심탑주·와불 조합한 새로운 석굴형식으로 교의 담아

332굴 남벽 열반경변 중 네번째 입관(入棺) 장면. 제자와 성중(聖)이 운집한  가운데, 전륜성왕의 예법으로 화려하게 의식을 치루었지만, 관이 상징하는 생멸의 무상함은 지울수가 없다.
332굴 남벽 열반경변 중 네번째 입관(入棺) 장면. 제자와 성중(聖)이 운집한  가운데, 전륜성왕의 예법으로 화려하게 의식을 치루었지만, 관이 상징하는 생멸의 무상함은 지울수가 없다.
332굴 평면도. 주실 중앙의 중심탑주와 주존인 서벽의 와불상, 그리고 남벽의 열반경변은 상호 유기적으로 교의를 형성하고 보완하고 설명한다.(‘중국석굴' 막고굴편 3권).
332굴 평면도. 주실 중앙의 중심탑주와 주존인 서벽의 와불상, 그리고 남벽의 열반경변은 상호 유기적으로 교의를 형성하고 보완하고 설명한다.(‘중국석굴' 막고굴편 3권).

 

돈황석굴 열반경변도는 북주 시대 조성된 428굴의 열반경변이 출현한 이후, 수대(隋代)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으로 동일한 도상 형식을 유지하였다. 마치 이불병좌상이 ‘법화경’의 교의를 대표하듯, 오른쪽으로 돌아누우신 와불상(臥佛像)은 ‘열반경’을 대표하는 도상으로 자리 잡았다. 

일관된 형식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당대(唐代) 측천무후 집권시기(698년)에 조성된 막고굴 332굴이다. 332굴 주실은 중앙에 4면 기둥을 둔 중심주식 석굴 형식이다. 이러한 형식은 돈황석굴 초기에 유행하였다가 감실에 불상을 조성하는 불전굴(佛殿窟) 형식으로 점차 대체되었다. 한편 서벽에는 와불상(臥佛像)을 주존불로 조성하였는데 이것은 돈황석굴에서 처음 나타난 불상 소재이다. 당시 석굴의 설계자는 중심탑주라는 형식의 복고와 와불상이라는 소재의 새로움을 조합하여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였을까? 이에 대한 실마리는 남벽에 그려진 열반경변에 있다.

남벽의 열반경변은 기존의 열반경변과 달리 복합적인 장면으로 구성되었다. 중국학자 허스저(賀世哲)의 분석에 따르면, 장면은 총 열 가지로 구분되며, 오른쪽 하단에서 시작하여 시계방향으로 전개된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⓵ 세존이 단좌하고 설법인을 한 채 제자들과 사부대중들에게 마지막 설법을 펼치시는 모습이다. 

⓶ 세존이 고통을 느끼시고 사라쌍수 사이에서 오른쪽 옆구리를 평상에 대고 누우셨다. 

⓷ 마침내 세존이 반열반에 드시는 순간이다. 옆으로 누우신 채로 반열반에 드신 세존의 주위에는 사부대중과 천룡팔부 등이 모여 애도하고 있다. 세존의 발치 앞에는 마지막으로 제자가 된 수발타라(須跋陀羅)가 세존에 앞서 화계삼매(火界三昧) 속에서 반열반하는 장면이 묘사되었다. 세존의 머리맡 앞에는 도솔천에서 세존의 열반 소식을 듣고 내려온 마야부인이 무릎을 꿇고 엎드려 통곡하고 있다.(‘마하반야경’)

⓸ 제자들과 사부대중들이 한 관곽을 에워싸고 있다. 이것은 세존의 몸을 전륜성왕의 예법에 따라 입관(入棺)한 장면을 그린 것이다. 

⓹ 이미 열반하신 세존이 관을 열고 다시 나와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여인을 바라보고 있다. ‘마하마야경’에 의하면, 세존이 신력으로 관뚜껑을 여시고 다시 일어나 비탄에 빠진 어머니 마야부인을 위해 설법을 하셨다고 한다. 

⓺ 운구(運柩)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관이 허공에 떠 있다. ‘대반열반경후분’에 따르면, 8명의 역사(力士)가 세존을 모신 관을 들고 다비식을 할 장소로 이동하려 하였으나 관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천인과 대중에게 공양을 받자, 그제야 관이 스스로 허공에 떠올랐다고 한다. 

⓻ 사부대중과 천인들이 운집한 가운데 다비하는 장소로 운구하는 장면이다. 이때 관은 여전히 허공에 뜬 채로 이동하며, 관을 운반하는 사람은 역사가 아닌 가사를 걸친 제자들인데, 이것은 ‘보살처태경’의 기록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⓼ 다비를 거행하는 장면이다. 사부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관에 불길이 타오르고 있다. ‘유행경’에 따르면, 화염은 세존의 가슴에서 저절로 타올라 이레 동안 불길이 꺼지지 않았다고 한다.

⓽ 여덟 개 나라의 왕은 사리 분배를 요구하며 군사를 일으켜 대치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⓾ 극적 화해를 통하여 각 나라가 분배받은 사리를 모신 탑을 세운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비구들을 비롯한 사부대중은 이제 탑을 둘러싸고 탑에 공양을 올리고 있다.

종합해보면, 남벽 열반경변의 내용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마지막 설법의 장면에서부터 열반, 입관, 다비, 사리탑의 조성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표현한 것이다. 화사(畫師)는 장면을 구성할 때 하나의 경전에만 근거하지 않고, 세존의 열반을 기록한 여러 경전 속에서 극적인 장면을 선별하여 배치하였다. 분명 참배자는 시각적으로 재현된 열반의 과정들 가운데 세존이 보이시는 각종 신변(神變)에 경외감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참배자에게 각인되는 부분은 병환으로 돌아눕고, 죽음을 맞고, 관에 들어가고, 마지막까지 어머니에게 효심을 보이는 인간 석가모니의 모습이다. 이 모습은 428굴의 열반도에서 낙심과 비애를 토로하는 제자들의 인간적인 면모와 절묘하게 대응한다. 

유위법에 구속받는 대상으로서의 육신은 마침내 다비의 불길 속에서 사그라지고 남겨진 사리가 탑에 봉안된다. 이때 대중들이 탑을 둘러싸고 예배하고 공양하는 모습은 세존이 생전에 마지막 설법을 펼치실 때의 대중들의 모습과 겹쳐진다. 마치 생전의 세존을 대하듯 여전히 사리탑을 공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부처님이 반열반하여도 그대 하늘과 사람들은 크게 근심하거나 고뇌하지 말라. 왜냐하면 부처님이 비록 열반하지만, 사리가 있어 항상 공양 올릴 수 있고, 또 위없는 법보인 경·율·논 삼장이 있으니 이러한 인연으로 삼보와 4제가 세상에 항상 있어 중생들로 하여금 깊은 마음으로 귀의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사리에 공양 올리면 곧 이것이 부처님[佛寶]이기 때문이며, 부처님을 보는 것은 곧 법신(法身)을 보는 것이고, 법신을 보는 것은 곧 현성(賢聖)을 보는 것이며, 현성을 보는 까닭으로 곧 4제를 보며, 4제를 보는 까닭으로 곧 열반을 본다.”(‘대반열반경후분’)

그렇다면 여래의 반열반은 육신의 소멸을 통하여 법신이 드러나는 경계임을 알게 되며, 다비를 통하여 남겨지고 드러난 사리는 여래의 육신으로서 공양받는 것이 아니라, 법신의 현현(顯現)으로서 공양받을 대상임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 중심탑주와 와불의 조합이 만들어낸 새로운 석굴형식에 담긴 교의이다. 

오동환 중국 섬서사범대 박사과정 ory88@qq.com

[1649호 / 2022년 9월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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