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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을 추억하며 - 상

기자명 장연덕
  • 기고
  • 입력 2022.10.04 14:22
  • 수정 2022.10.11 13:04
  • 호수 1651
  • 댓글 0

“그것은 햄이여, 고기가 아니여”

당진 서원사 회주로 최근 입적
스님과 인연 맺었던 건 큰 복
기다리고 지켜보던 모습 생생
마지막까지도 계율 놓지 않아

때는 을미년, 7년 전 초여름이다. 막 개종을 하고 반년쯤 되었을까,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필자가 고기와 술을 끊는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어느날 고기를 계속 먹지않는 자식이 너무 걱정되신 모친께서 김밥에 야무지게 햄을 크게 잘라 넣어 만들어 케이크처럼 쌓아놓으셨다. 생각 없이 집어먹다보니, 김밥에 들어있는 고기가 보였다. 소스라치게 놀라 절로 뛰어들어갔는데, 가자마자 큰스님을 붙들고 급하게 여쭤봤다.

“스님 제가 김밥에 들어간 햄을 먹었어요! 고기먹었어요!”

그러자 큰스님께서는 “그것은 햄이여, 고기가 아니여”라고 하셨다.

큰스님은 며칠 전, 세수 여든 여덟, 법랍 오십여년을 채우고 입적하셨다. 수덕사 견성암에서 수도정진하시다, 영랑사에서 주지소임, 서원사에서 주지와 회주소임을 보셨다.

큰스님께서 아직 정신이 남아있고 스스로 거동을 하시던 때에 필자가 처음 사찰에 발을 들이고 인연을 맺은 것을 다행이라고, 또 행운이라고 여기며 이 글을 쓰게 됐다. 마음 안에 슬픔이라는 습기가 아직 덜 마른 빨래 같은 상태지만, 지금 이 기억이 필자 역시 흐려질 것이고, 누군가는 기록해야 하기에 주로 시사나 정치를 다뤘던 필자의 거칠고, 자비 없는 펜을 들게 됐다.

필자는, 법당 안에서 뛰어다니면 안 된다는 것을 모르고 지낸 시간이 길었다. 비구니인 주지스님께서 다 큰 성인인 필자를 다섯 살 어린아이 키우듯이 아주 바닥부터 다시 쌓아주시며 그저 기다리고 지켜보고, 조용히 가르치시는 시간이 계속되던 시절이다. 

그런데 어느날은 거동이 불편해지신 큰스님께서 주지스님과 법회를 보시다 말고 당신의 가장 빠른 속도로 쫓아오셨다. 

“법당에서 뛰지 말라고!” 

드디어 그 말씀을 하셨는데, 그렇게 혼나고도 필자의 흥겨움은 가라앉질  않았다. 결국, 절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복식호흡으로 가장 큰 발성을 사용해 주지스님을 고래고래 소리 질러 부르면서 인사드리는 그 버르장머리까지 큰스님께서 그냥 받아들이셨던 기억이 난다.

“쟤 왔다~” 하고 주지스님에게 한 마디 하시며 포기를 빨리 하셨는데. 큰스님께서는 매사 필자가 절 밖으로 발길을 돌리지 않도록 눈높이를 매순간 맞춰주셨더랬다. 누구에게나 그러시는건 아니라면서도 “근기에 따라서…”라며 가르치는 방식을 설명하셨었다.
어느 더운 여름엔 맨 발로 주섬주섬 양말을 신다 말고 요사채 마루에 길게 누워 허리까지 닿는 젖은 머리카락을 널어 말리고 있는 필자를, 큰스님의 그림자가 덮던 날이 있었다.

그때도 그저 서서 내려다보기만 하셨는데. 일어나서 큰스님 눈을 쳐다보니 웃음이 묻어있었다. 어떤 마음으로 그걸 다 참으셨는지, 입적하신 뒤에도 그 순간순간들이 다 이해가 되진 않는다.

공양을 하셔도 옆에 앉혀놓고 하시길 즐겨하시고, 겨울에는 몰래 불러다가 침대 밑에서 밀려놓은 과일을 남들 눈을 피해 싸서 주시던 큰스님의 병환이 깊어지던 신호는, 양말이었다.

한여름에, 필자에게 춥다며 말끔한 겨울양말 새것을 꺼내다가 눈앞에서 신게 하셨는데, 큰스님은 그때부터 기억을 하나하나 잃어가기 시작하셨다. 그날 이후로 비구니로서, 승려로서의 품위와 계율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시던 그 시간들이, 필자에게는 균일한 슬픔과 안타까움을 주면서 아주 느리게 흘러갔다.

장연덕 칼럼니스트

[1651호 / 2022년 10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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