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32. 고대불교-삼국통일과불교(41) (7) 동아시아 불교역사상의 원효불교(24)

최남선, 원효를 일승불교 최후 완성자 추앙하며 통불교론 주창

정황진, 일본 유학 중 원효 목록 작성해 원효의 연구 서막 열어
일본불교학자의 강연·연구에 자극…식민지불교사학에는 대항
통불교론에 대한 현재의 논란, 일제강점기 상황 감안 판단해야

권상로가 편집한 불교사(조선불교중앙교무원) 발행의 ‘불교’ 74호(1930년 8월 발행)의 잡지.
권상로가 편집한 불교사(조선불교중앙교무원) 발행의 ‘불교’ 74호(1930년 8월 발행)의 잡지.
‘불교’ 74호에 실린 최남선의 ‘조선불교-그 동방문화사상에서의 지위-’ 논문.
‘불교’ 74호에 실린 최남선의 ‘조선불교-그 동방문화사상에서의 지위-’ 논문.

1910년대에 들어와서 근대불교학이 성립되기 시작하였는데, 이에 크게 기여한 것이 불교잡지들이었다. 1912년 원종종무원의 기관지로 발행된 ‘조선불교월보’(1912.2~1913.8. 19호)를 시작으로 하여 ‘해동불교’(1913.11~1914.6. 8호) ‘불교진흥회월보’(1915.3~12. 9호) ‘조선불교계’(1916.4~6. 3호) ‘조선불교총보’(1917.3~1921.1. 22호) ‘유심’(1918.9~12. 3호) 등이 연이어 발행되어 불교계몽 역할과 함께 근대불교학의 새장을 열게 하였다.

이 잡지들의 편집발행을 담당했던 인물은 권상로(1879~1965) 박한영(1870~1948) 이능화(1869~1943) 한용운(1879~1944) 등인데, 이들은 불교개혁운동을 주도하는 한편 초창기 불교학 발전에 선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들 가운데 특히 ‘조선불교통사’를 저술한 이능화는 불교사 분야를 주목하여 자료를 발굴 소개하였는데, 자신이 편집 발행을 담당하였던 ‘조선불교총보’에 원효의 저술의 목록과 저술들의 서문을 게재함으로써 사실상 저술가·사상가로서의 원효 연구의 서막을 열게 하였다. 

이때 원효 저술의 조사를 직접 담당하였던 인물은 일본에 유학 중인 정황진(鄭晄震)과 김영주(金瑛周) 등이었는데, 특히 김영주는 원효에 관한 자료 소개의 단계를 넘어서 원효의 행적과 ‘화엄경소’의 교의를 검토하였는데, 시론 성격의 논문이지만 시상성이 매우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어 주목된다. 중국 화엄학승의 저서에 인용된 원효의 4교판설, 그리고 현존하는 ‘화엄경소’ 권3의 교의내용을 중국 화엄학승들의 해석과 광범하게 비교검토함으로서 그의 화엄학 중심의 원효 이해는 원효의 종파를 화엄종으로 보는 최남선의 원효불교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미쳤으며, 나아가 오늘날 원효의 화엄사상 연구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거의 드러내준 선구적인 성과였다. 

또한 원효의 행적을 검토하면서 정영사 혜원이 ‘화엄경’을 주석하다가 제4 10회향품에서 중단하였다는 법장의 ‘화엄경전기’의 설화를 인용해줌으로서 원효가 역시 10회향품에서 절필했다는 ‘삼국유사’ 원효불기조의 설화 내용에 의문을 제기한 것은 오늘날 우리 학계의 원효의 화엄사상 이해에까지 재검토의 여지를 제공하는 주장으로서 주목된다.

그런데 근대불교학의 성립에는 이들 선구적인 불교학자들의 역할에 앞서 일본 불교학의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1910년대부터 불교계는 일본 유학생이 증가하고 일본인 학자들과의 교류가 다양하게 시작된 가운데 특히 일본 근대불교사학의 개척자 가운데 한 사람인 무라카미 센쇼(村上專精, 1851~1929)의 내한 강연 활동과 그의 저술에 대한 번역 소개는 특기할만한 사건이었다. 무라카미는 앞서 ‘대승비불설(大乘非佛說)’을 제창하여 일본 불교계 전반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것으로 유명한데, 그의 대표적인 저술인 ‘통일불교론’이 권상로에 의해 번역되어 ‘조선불교월보’ 3~19호(1912~1913)에 17회에 걸쳐 연재된 것은 그가 한국의 불교학자들에게 크게 주목받았던 사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무라카미는 ‘통일불교론’에서 불교교학을 혁신해서 각 종파의 통일을 주장하였으며, 구체적인 연구방법으로 주석적((註釋的)·달의적(達意的)·비평적(批評的)·역사적(歷史的)·비교적(比較的)연구를 주창하였다. 

그는 1917년 3월 5일 오타니 코엔(大谷光演)·난죠 분유(南條文雄) 등과 함께 내한하여 4월 27일 ‘일본불교사의 특색’이라는 주제의 강연을 했는데, 이능화·권상로·한용운을 비롯한 불교계의 중견 지도자들이 그를 면담했으며, 그의 강연 내용을 ‘조선불교총보’ 5호(1917.6)에 번역하여 게재하였다. 무라카미 센쇼의 통일불교론에서의 불교사관은 이른바 ‘삼국불교전통사관(三國佛敎傳通史觀)’이었는데, 특히 최남선의 원효불교를 중심으로 하는 ‘통불교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한편 처음으로 원효연구의 길을 개척한 정황진은 일본유학 중에 원효와 경흥의 저술목록을 작성하고, 원효의 저술들을 수집하여 ‘조선불교총보’에 게재하면서 서언에서, “5,6년전(1912~3)에 문학박사 다카하시 토오루(高橋亨,1877~1966)씨는 원효의 저술 45부89권을 매일신보 지상에 발표하였다”고 서술하여 다카하시 토오루의 목록 작성에 자극받아 조사하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었다. 다카하시 토오루는 평생 일제의 식민지 통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대표적인 관학자로서 이른바 ‘조선학(朝鮮學)’의 연구에 전념하였으며, ‘이조불교(李朝佛敎’(1929)가 대표적인 성과이다. 이 책은 ‘조선사상사대계’의 출간을 기획하고 1912년부터 발표한 논문의 내용을 수록한 것인데, 근대불교학의 문헌학적 역사적 방법론을 적용한 본격적인 연구성과로 평가된다. 그의 사상사대계는 ‘이조불교’ 1권의 출간으로 그쳤으나, 원효불교의 연구에서도 한국 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친 사실을 새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1920년대 이후에는 역사학 분야에서도 불교학계에서의 문헌학적인 이해방법과는 다른 역사적 시각에서 원효를 새롭게 이해하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앞서 1910년대부터 국어와 역사 분야에서도 많은 학문적인 계몽단체들이 조직되고 민족주의 학자들이 활약하였는데, 특히 역사 분야에서는 장지연·박은식·신채호 등에 의해 을지문덕·강감찬·최영·이순신 등 외적의 침략에 대항하여 싸운 인물들의 전기가 출간되었다. 그런데 불교계의 인물로서는 1924년 장도빈(張道斌, 1888~1963)에 의해 ‘위인 원효전’이 출간되어 원효에게서 민족적 위인상을 찾으려고 하였다. 이 책은 학술적인 연구성과가 아니고 계몽적인 성격의 소책자에 불과하였지만, 민족적 위인으로서의 원효상은 이후 한국인들의 원효 인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런데 역사학자로서 원효불교에 대한 재인식과 평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은 역시 최남선(1890~1957)이었다. 최남선은 1930년에 발표한 논문 ‘조선불교-동방문화사상에 있는 위치’(불교 74호)의 제4장 원효, 통불교의 건설자에서 “서론으로서의 인도불교, 각론으로서의 중국불교를 넘어 한국불교, 특히 원효에 이르러 결론에 이르렀다”며, 원효를 진정한 의미에서의 불교의 완성자라고 평가하였다. 특히 “성사(聖師)의 불교는 불교의 구제(救濟)의 실현인 일면에 다시 통불교(通佛敎)·전불교(全佛敎)·종합불교(綜合佛敎)·통일불교(統一佛敎)의 실현”이라고 평가하였으며, “최고의 통일, 최후의 완성으로서의 신불교(新佛敎)”라는 표현으로도 원효불교를 찬양하였다. 

최남선의 원효 불교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고려 의천이 “오직 우리 해동보살만이 성종과 상종을 융회하여 밝히고 고금을 한데 포괄하여 백가의 이쟁(異諍)의 단서를 화합하고 일대의 지극히 공정한 논의를 얻었다”고 찬양한 뒤 실로 800여 년만이었으며, 의천의 원효 평가에서 일보 나아간 것이었다. 그런데 최남선의 통불교론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최남선의 불교에 대한 이해과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최남선은 일제강점기 문학·사학·언론·출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대표적 지식인으로서 전문적인 불교학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불교학계에서는 별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한국불교사에 대한 폭넓은 안목과 문제의식, 그리고 그가 제창한 통불교론이 후대 미친 영향을 고려할 때 근대불교사학의 발달과정에서 남긴 공헌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최남선의 불교사에 대한 업적 가운데 우선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의 편찬과 간행과정에서 담당하였던 역할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능화가 이 책의 출간에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최남선이 교열하였고, 또한 자신이 설립한 출판사인 신문관에서 권상로의 ‘조선불교약사’에 이어 ‘조선불교통사’를 간행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이능화가 편집 발행한 ‘조선불교총보’ 22호를 출간한 곳도 이 신문관이었다. 최남선은 ‘조선불교통사’의 출간에 맞추어 ‘조선불교의 대관’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조선불교총보’ 11~12호(1918)에 게재하여 한국문화와 국제관계 속에서의 한국불교의 위치와 역할을 조목별로 지적하고 불교도의 역사적 자각을 촉구하였으며, 불교사 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이 논문에서 최남선 자신은 역사학자로서 불교에는 문외한임을 피력하고 있었지만, 불교의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폭넓은 안목, 그리고 시대적 과제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유감없이 나타내 주었다. 그의 한국불교에 대한 역사인식과 논리는 1930년대의 통불교론으로 이어져 발전되었다. 1920년대 최남선은 불교사 연구에 전념하지는 않았지만, 불교사 분야에서도 어떤 전문학자보다도 더욱 주목할 만한 업적을 남겨 주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해동고승전’ ‘대동선교고’ ‘삼국유사’ 등의 불교사서들을 발굴하여 교감하고, 해제를 붙여 근대불교사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특히 그의 ‘삼국유사해제’는 ‘삼국유사’에 대한 최초의 종합적인 해설서로서 10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그것을 뛰어넘는 해석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1920년대 이후 최남선은 ‘불교’ 잡지에 여러 편의 불교 관련 글들을 발표하여 당시 불교계의 타락상과 본사 주지들의 전횡을 꾸짖기도 하고, 대각국사의 불전 간행의 업적을 현창하는 사업을 제의하는 등 불교에 대한 애증이 교차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1930년 7월 21~26일 하와이에서 개최된 범태평양불교청년회의에서의 발표논문으로 ‘조선불교-그 동방문화사상에서의 지위-’를 집필하였다. 최남선은 이 논문이 외국인을 대상으로 작성한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었는데, 한국불교를 중국불교의 아류 정도로 평가하던 일본인 관학자들을 질타하고 한국불교에 무지한 서양인들을 일깨워주기 위한 것이었다. 최남선은 먼저 동서 문화교류의 폭넓은 시각을 가지고 인도에서 성립된 불교가 실크로드를 거쳐 중국에 전파되는 과정을 서술하였다. 그리고 이어 동아시아불교사에서 삼론종의 승랑, 유식종의 원측, 화엄종의 의상 등의 역할을 지적한 다음 불교역사상의 원효의 업적을 대서특필하였다. 원효는 교학을 이론적으로 종합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론과 실천을 융화하였고, 또한 대중적 불교로 전화시킴으로써 일승적 불교의 최후 완성자가 되었다고 평가하였다. 그리하여 원효의 불교는 불교적 구제(救濟)의 실현인 일면에 다시 통불교·전불교·종합불교·통일불교의 실현인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고 하였다. 

최남선은 일본의 가마쿠라시대 교넨(凝然, 1240~1321)이 창안하고 메이지시대(1894) 무라카미 센쇼(村上專精)에 의해 계승 발전되어 일본불교 우수성의 논리적 근거로 활용되던 ‘삼국불교전통사관(三國佛敎傳通史觀)‘의 논리체계를 빌려와서 일본불교 자리에 한국불교를 대치시킴으로써 인도와 서역의 서론적 불교, 중국의 각론적 불교에 대하여 한국의 불교는 결론적 불교라고 주장하였다. 최남선의 통불교론은 삼국불교전통사관에 입각한 일본의 식민지 불교사학의 역사인식에 대항하여 동방(아시아)불교사에서의 한국불교의 역사적 위치를 새롭게 정립시키려는 논거로서 의의를 가진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불교학계에서는 최남선의 본래 의도와 일제강점기였다는 시대적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원효의 불교, 나아가 한국불교의 역사적 성격을 정의하는 개념으로서의 통불교론의 타당성 여부만을 문제 삼아 논란을 계속하고 있는데, 최남선의 통불교론의 의의와 가치는 다른 데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최병헌 서울대 명예교수 shilrim9@snu.ac.kr

[1653호 / 2022년 10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