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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채식과 육식-하

육식의 상대적 절제와 채식 선호적 실천이 중도

붓다는 승가분열을 막기 위해 채식을 의무로까지 규정 안해
자이나교와 차별성 및 채식 주장한 데바닷타 검은음모 경계
청정한 육식에 대한 규정을 통해 규범 아닌 윤리로 채식 유도 

붓다 당시 사회가 불교에 우호적이었다면 채식을 수용했을지 모른다. [법보신문 DB]
붓다 당시 사회가 불교에 우호적이었다면 채식을 수용했을지 모른다. [법보신문 DB]

붓다의 식사법을 둘러싼 논란은 그의 마지막 공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핵심은 붓다가 돼지고기를 공양 받았는가 아니면 실제로는 버섯과 같은 다른 음식을 공양 받았는가 하는 것이다. 왈시(Arthur Walshe)에 따르면 경전의 해당 부분은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 “밤이 끝나갈 무렵 춘다(Cunda)는 풍부한 ‘돼지’의 기쁨(pig’s delight)과 함께 딱딱한 음식 및 부드러운 음식으로 이루어진 청정한 음식을 준비했고, 음식 준비가 끝나자 춘다는 붓다에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DN 16.4.17) 

문제는 “수카라-맛다바(sūkara-maddava)”라는 단어의 번역인데, 왈시는 이를 “돼지의 기쁨”으로 표현했다. 글자 그대로의 의미는 ‘돼지의(와 같은) 부드러움’이다. 반면, 리즈 데이비스(Rhys Davids)는 “송로버섯(truffles)”이라는 대안적 번역어를 사용했다. 왈시는 리즈 데이비스와 그 이후의 번역들은 붓다가 채식주의자이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종교적 실망을 끼치지 않기 위해 고안된 것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왈시의 번역은 “돼지의 기쁨”이란 용어가 적당하게 애매한 의미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 같기도 하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붓다의 시대에는 약초(채소)의 이름에 –설사 고기 성분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더라도- “‘돼지’라는 접두사(‘pig’ prefixes)”를 붙이는 언어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붓다의 마지막 식사가 육식이 아니라 채식이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사실은 붓다가 관습적인 채식주의자였다는 것을 보여주는가?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경전의 다른 곳에서도 붓다가 고기를 먹었다는 언급은 분명하게 확인된다. ‘앙굿따라 니까야’에는 붓다가 재가신자인 욱까(Ugga)로부터 돼지고기를 공양받았다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서 사용된 용어는 ‘sūkara-maṃsaṃ’ 즉, ‘돼지의 살점’이란 뜻이므로 그 음식이 돼지고기였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AN 5.44 41) 이로 미루어 볼 때 우리는 붓다가 마지막 식사와는 별개로 종종 육식할 기회를 가졌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붓다는 당연히 채식주의자였을 것이라는 주장은 (1) 육식을 인정하는 허용-가능성의 명제와 (2) 붓다는 적어도 여러 번 고기를 먹었다는 경전의 서술 등을 종합하면 아마도 성립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율장’에서 붓다 자신은 특히 채식주의를 의무로 규정하는 것을 거부했다. 붓다의 사촌이자 경쟁자였던 데바닷타(Devadatta)는 채식주의를 승가의 계율로 삼을 것을 요구하면서 붓다에게 도전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붓다는 왜 고기 먹는 것을 허용했을까? 그는 분명히 채식주의자들에게 도덕적인 공감을 표시했다. 우선 그가 제시한 ‘허용-가능성의 명제’는 고기의 청정함에 대한 일반적인 의심을 함축하고 있다. 붓다는 -오직 그 고기가 앞에서 언급했던 세 가지 방식에서 청정할 때만- 육식을 허용했다. 이는 적어도 육식에는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있다는 뉘앙스를 물씬 풍긴다. 그리고 이러한 언급은 고기가 아닌 다른 음식의 경우에는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붓다는 비구들이 –고기의 사례에서 보듯이 청정한 방식으로 준비되기만 하면- 어떤 식물들을 먹을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없다. 이것은 수행론적 관점에서 보면 채식주의적인 식사가 근본적으로 안전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다만 그는 채식을 계율의 정식 조항으로 포함하는 것에는 반대했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붓다가 승가의 분열을 막기 위해 채식주의를 굳이 계목으로 규정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이는 붓다가 채식을 –타산적(prudential)이거나 정치적인 관점이 아니라 윤리적인 관점에서 보면- 충분히 권장할만한 식사법으로 승인했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당시의 사회적 환경이 불교에 우호적이었다면 붓다는 채식주의를 수용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적인 조건들이 그다지 유리하지 않았던 만큼 그는 끝내 채식주의를 공식화할 수 없었다. 

그 이유로 저자는 두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첫째, 자이나교와의 차별성 문제다. 자이나교도들은 소문난 채식주의자들이었다. 붓다가 채식주의를 거부했던 명분 가운데 하나는 불교를 -고유의 종교적 운동이자 형이상학적으로 자이나교와 매우 다른 종교이기보다는- 마치 자이나교의 파생물인 것처럼 보이도록 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자이나교의 상징처럼 보였던 채식주의를 답습하는 태도는 불교가 자이나교와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붓다의 가르침 역시 추종자들을 얻기 위해 다른 종교적 및 정치적 학파들과 경쟁하던 수많은 입장 가운데 한가지 ‘견해(dassana)’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붓다는 자신의 깨달음이 다른 종교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전파하는 일에 많은 주의를 기울였을지도 모르겠다. 채식주의를 받아들이는 것은 지지자들을 다른 종파에 빼앗길 가능성만 증대시킬 뿐이었다. 두 번째 이유는 데바닷타가 시도한 승가의 분열과 관계가 있다. 그가 도입하려고 했던 채식주의는 승가의 분열을 초래할 수도 있는 폭발적인 휘발성을 가지고 있었다. 경전에 의하면 데바닷타는 교단의 혼란을 부추길 관습의 강요를 통해 갈등을 일으킴으로써 승가의 통제권을 빼앗으려고 했었다. 애써 조직한 교단의 해체는 붓다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너무나 큰 상실이었을 것이다. 마침내 붓다는 육식의 허용을 유지하는 쪽으로 최종적인 입장을 정리했다. 

이처럼 불교에서 채식 및 육식과 관계있는 법률적(계율) 조항과 윤리적(도덕) 취지 사이의 긴장은 항상 존재하고 또한 자연스럽게 사라지기도 한다. 저자인 제임스 J. 스튜어트의 입장은 채식주의(자)라는 필요조건의 충족이야말로 훌륭한 불자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마음가짐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남은 충분조건의 완성은 자신의 상황에 맞게 각자가 충족시켜야 할 수행의 몫으로 남는다. 결국 불자인 우리들의 선택지는 –육식의 절대적 거부와 채식의 완전한 실천이 아니라 육식의 상대적 절제와 채식의 선호적 실천-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중도의 길은 멀고도 가까운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또 한 번 하게 된다.

허남결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hnk@dongguk.edu

[1653호 / 2022년 10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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