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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돌 여자

기자명 승한 스님

진흙소가 달을 물고 달아나는 도리

행자 때 스승님이 선시 읊은 뒤
‘바다 밑 진흙소’ 풀려고 노력
바닷가 절집 만행 떠났던 계기
언어도단·격외도리 이치 담겨

나무 사람은 피리 불며 구름 속으로 달려가고/ 돌 여자는 거문고 타며 바다 위로 오고 있다.
그 속에 있는 한 노인이 얼굴 모습도 없이/ 껄껄 웃고 박수치며 파안대소(破顔大笑)한다.
木人吹笛雲中走(목인취적운중주)
石女彈琴海上來(석녀탄금해상래)
箇裡有翁無面目(개리유옹무면목)
呵呵拊掌笑顔開(가가부장소안개)
-월봉무주(月峯無住, 1623~?)

‘海底泥牛含月珠/ 巖前石虎抱兒眠/ 鐵蛇鑽入金剛眼/ 崑崙騎象鷺鷥牽(해저니우함월주/ 암전석호포아면/ 철사찬입금강안/ 곤륜기상로사견-바다 밑에 진흙 소가 달을 물고 달아나고/ 바위 앞의 돌 호랑이가 새끼를 안고 졸고 있네./ 쇠로 된 뱀이 금강의 눈을 뚫고 들어가는데/ 코끼리를 탄 곤륜을 해오라기가 끌고 간다)’

막 출가했을 때, 스승님께서 이 선시를 읊어주시며 “뭐라고 뭐라고” 하셨다. 도대체 무슨 말씀인지,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바다 밑의 진흙소’라니, 바닷물에 금방 녹아 풀어져 버릴 텐데 어떻게 바다 밑에 진흙소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설사 있다 해도 그 진흙소가 어떻게 달을 물고 달아날 수 있단 말인가. ‘돌 호랑이’는 또 뭐고, 돌 호랑이가 어떻게 ‘새끼’를 낳아 ‘안고’ ‘졸’ 수 있단 말인가. ‘쇠로 된 뱀’은 또 무엇이고, ‘코끼리가 탄 곤륜을’ 길어야 60센티미터 밖에 안 되는 ‘해오라기’가 ‘끌고’ 갈 수 있단 말인가. 궁리하고 궁리해도, 뜻은 알 수 없고, 머리통은 터질 것만 같았다. 

6개월의 행자 생활을 끝내고 한 달간의 수계산림을 마친 뒤에도 ‘바다 밑에 진흙소’는 필자를 떠날 줄 몰랐다. 생각을 안 하려고 하면 할수록 ‘바다 밑에 진흙소’는 필자를 더욱 끌고 다녔다. 그래, (기어코) 만나(찾아)보자. 1년을 기한으로 필자는 ‘바다 밑에 진흙소’를 찾아 강원도 양양 낙산사 홍련암을 시작으로 동해안을 따라, 금산 보리암 등 남해안을 거쳐, 강화도 전등사까지 서해안(의 바닷가 절집만을 찾아)을 따라 걷는 만행을 했다. 발바닥이 부르트고 물집 때문에 걸을 수가 없어 며칠씩 꼼짝도 못하는 날도 많았지만, 필자는 결심했던 대로 ‘바닷가 절집 만행’을 마쳤다. 그래도 끝내 ‘바다 밑에 진흙소’를 찾아내지(발견하지) 못했다. 

속절없이,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다. 그리고 십수 년 뒤, 월봉 선사의 이 선시를 만났다. 그런데 이상했다. ‘나무(로 깎아 만든) 사람’이 ‘피리(를) 불며 구름 속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절로 그려졌다. ‘거문고(를) 타며 바다 위로 오고 있’는 ‘돌 여자’ 모습에도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새끼를 안고 졸고 있’는 ‘돌 호랑이’의 모습도 전혀 낯설지 않고, ‘쇠로 된 뱀’과 ‘코끼리를 탄 곤륜을’ ‘끌고 가’는 ‘해오라기’ 날갯짓도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절에서 살고, 틈틈이 책과 경전을 읽고, 이따금 큰스님들의 법문을 듣고, 가끔은 발을 꼬고 앉아 있고, 어른 스님들이 일을 시키면 시키는 일만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바닷물에 이미 풀어져 없어진 줄 알았던 ‘바다 밑에 진흙소’가 풀어지지 않은 채 ‘내 마음’의 ‘바다 밑에’서 풀을 뜯고 있었던 거다. 스승님께서 귀머거리나 다름없는 갓 제자에게 ‘뭐라고 뭐라고’ 일러준 것은 바로 그런 뜻이었다. 언어도단(言語道斷), 격외도리(格外道理), 바로 그 너머의 세계를 화두로 일러주신 것이다.

필자는 아직, 제대로, 그것을 찾진 못했다. 하지만, 이제 ‘진흙소’와 ‘돌 호랑이’와 ‘쇠로 된 뱀’의 말을 알아들 순 있다. ‘피리 불며 구름 속으로 달려가’는 ‘나무 사람’에게 말을 걸 수도 있으며, ‘거문고 타고 바다 위로 오고 있’는 ‘돌 여자’와 함께 즐겁게 놀 수도 있다. 더욱이는, ‘이목구비(얼굴)도 없는’ ‘늙은이(노인)’와 ‘박수치며’ 배꼽 빠지게 ‘파안대소’할 수도 있다. 고재종 시인과 그렇게 논적도 있다.

‘마을 주막에 나가서/ 단돈 오천 원 내놓으니/ 소주 세 병에/ 두부찌개 한 냄비// 쭈그렁 노인들 다섯이/ 그것 나눠 자시고/ 모두들 볼그족족한 얼굴로// 허허허/ 허허허/ 큰 대접 받았네그려!’-고재종의 시 ‘파안’ 전문

이 시 속에 모든 측량이 다 들어 있다. 월봉 선사는 조선 중기 선승이다.

승한 스님 빠리사선원장 omubuddha@hanmail.net

[1653호 / 2022년 10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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