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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구한 세월에서 건져 올린  찰나의 깨달음

  • 출판
  • 입력 2022.10.17 15:28
  • 호수 1653
  • 댓글 0

관조
관조 스님 문도회 엮음 / 불광출판사
352쪽 / 15만원

20만점 사진 중 278점 엄선해 담은 관조 스님 유고 사진집
현란한 이미지 넘쳐나는 시대 차분한 응시의 비범함 분출
맏상좌 승원 스님 노력으로 보관돼 있던 필름에 생명 부여 

관조 스님의 사진은 찰나의 빛 속에서 사물의 심연이 드러나는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그 순간을 만나기 위해 몇 번이고 같은 장소를 찾는 스님의 걸음은 몽중일여의 화두와도 닮아 있다. 
관조 스님의 사진은 찰나의 빛 속에서 사물의 심연이 드러나는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그 순간을 만나기 위해 몇 번이고 같은 장소를 찾는 스님의 걸음은 몽중일여의 화두와도 닮아 있다. 
세상을 굽어보는 듯한 관룡사 부처님(1989년 作).
세상을 굽어보는 듯한 관룡사 부처님(1989년 作).
스님의 카메라 앞에서 미소를 드러낸 거조사 나한님(1994년 作).
스님의 카메라 앞에서 미소를 드러낸 거조사 나한님(1994년 作).

관조성국 스님(1943~2006)이 서른한 살에 해인사 강주를 맡을 때까지도 그가 큰 학승이 될 거라 기대했던 이들이 많았다. 은사 지유 스님처럼 다시 화두를 붙잡고 선승의 자리로 돌아갈 것으로 여겼던 이들도 있었다.

허나 관조 스님은 누구도 예기치 않았던 길로 나아갔다. 카메라를 손에 쥐고 걸망에는 선어록 대신 필름을 가득 담아 전국 산사를 구름처럼 떠돌았다. 한해 두해가 지나도 스님은 카메라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혀를 차거나 차가운 시선도 늘어갔다. 스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길을 나섰다. 훗날 ‘나뭇잎 하나, 돌멩이 하나에도 부처 아닌 것이 없다. 이 광대한 우주 공간의 그 어느 것이나 다 부처의 법신(法身)이다’라고 했듯 스님은 대자연 자체가 최상의 법문임을 일찌감치 깨달았는지 모를 일이다.

전국에 산재한 사찰의 건물, 대웅전, 꽃살문, 불상, 불화, 불탑, 벽화, 수미단, 사천왕, 마애불, 폐사지, 궁궐, 서원, 자연, 예불의식과 수계식, 다비식은 물론 숱한 해외 성지에까지 스님의 발길이 이어졌다.

몇 번이고 같은 장소를 찾는 일도 되풀이됐다. 햇빛이 다르고 공기가 다르며 습도가 달랐기에 이른 새벽, 오전, 오후, 저녁,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시간과 계절을 달리하면서 사각의 프레임에 성성적적한 세상을 담아냈다.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돌계단, 기와 등 묵묵히 세월의 자국을 간직해온 사물들, 사소하고 보잘것없다고 여겨졌던 사물들이 슬며시 모습을 드러냈다. 불가사의한 무정물의 설법은 귀로 들으려 하면 도무지 알 수 없으니 눈으로 들어야 참으로 안다는 이치를 새삼 깨달았다.

그렇게 30년간 전국 산사와 전통의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는 운수납자의 길을 걸어왔다. 스님은 필터나 조명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오직 필름으로만 작업했기에 단순하고 담백했다. 1980년 ‘승가1’을 시작으로 ‘열반’ ‘자연’ ‘생, 멸, 그리고 윤회’ ‘님의 풍경’ 등 20여권의 사진집이 차례로 출간됐다. 

전시회도 잇따라 열렸다. 국내는 물론 로스엔젤레스, 토론토, 시카고 등 해외전시도 큰 호응을 얻었다. 부산미전 금상, 동아미전 미술상, 현대사진 문화상 등을 수상했으며, ‘사찰 꽃살문’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한국의 아름다운 책 100선에 선정됐다.

스님의 사진은 자연물의 모습을 선구적으로 추상화, 패턴화해 일상적 예술의 세계로 승격시켰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기와, 담장 등 사찰의 구석구석을 담은 사진들은 정교한 사찰의 구성과 그 속에 담긴 깊은 뜻을 선명히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스님이 카메라를 잡았던 이유도 알려졌다. 사진은 자신은 물론 사진을 보는 사람까지 정화시키는 힘을 지녔다는 것. 그렇기에 피사체에 몰입하는 자체가 수행이었고 좋은 사진을 선보이는 자체가 전법이었다. 나아가 사진으로 모든 사람이 불성을 되찾았으면 하는 지극한 비원이기도 했다.

2006년 11월20일, 스님은 세수 64세 법랍 47세로 출가본사이자 평생 주석했던 범어사에서 입적했다.

최근 출간된 ‘관조’는 스님이 남긴 20만점의 방대한 불교 사진 중 278점을 엄선해 담은 유고 사진집이다.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사진들도 수록작의 절반을 차지한다. 범어사 박물관에 보관돼 있던 필름에 생명을 부여한 것은 맏상좌 승원 스님이다. 열반을 앞두고 “좋은 작품집 한 권 출간하고 싶다”는 은사스님의 당부를 한시도 잊지 않았다. “사진은 은사스님의 사리”라는 승원 스님은 그 사진들이 세상을 깨우치고 맑히는 지혜의 법문이 될 것으로도 확신했다. 

스님의 사진 파일을 정리하기 위해 수년 동안 눈이 상하도록 애쓴 화담 거사의 노력도 큰 힘이 됐다. 출판사 또한 사진의 특성을 잘 드러내기 위해 여느 사진집의 종이와 달리 빛의 농도 표현에 적합한 종이를 선택해 인쇄하는 등 정성을 다했다.

이 같은 노력들이 모여 ‘삼라만상이 본래 부처니 찰나의 깨달음을 한 줄기 빛으로 담았네(參羅萬像天眞同 念念菩提影寫中)’라고 임송게를 남겼던 스님의 진면목을 마주할 수 있게 됐다. 사진들은 현란한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에 차분한 응시의 비범함을 관하고 조망토록 한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653호 / 2022년 10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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