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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나고 없어짐도 없다(無生)

기자명 승한 스님

오늘 ‘무생’이 진짜 삶임을 알았다

다 비워버리고 지워버리고
단풍 든 깊은 산 움막집서
새 차와 경전 한 권 두고
담담히 살아가는 모습 표현

홀로 앉은 깊은 산속 온갖 일들 가벼워 
온 종일 사립 닫고 나고 없어짐도 없음을 배운다.
생애를 낱낱이 검사해보니 남은 물건은 없고
새 차 한 주발에 한 권의 경전뿐이다.
獨坐深山萬事輕(독좌심산만사경)
掩關終日學無生(엄관종일학무생)
生涯點檢無餘物(생애점검무여물)
一椀新茶一卷經(일완신차일권경)
-부휴선수(浮休善修, 1543∼1615)

무생(無生). 무생(無生). 무생(無生). 차마, 필자가, 아직은, ‘무생’을 논할 나이는 아니다. 그럼에도 이 가을, 부휴 선사의 이 선시가 가슴 시리게 저며 드는 까닭은? 마음 아리게 스며드는 까닭은? 부처님의, 마지막 생 한 대목이 떠오른다.

부처님 열반 직전이다. 마지막 숨을 힘겹게 들이켜고 있는 스승을 보고 아난존자가 서럽게 울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아난을 가까이 불렀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아난아, 나의 입멸을 한탄하거나 슬퍼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사랑하고 마음에 맞는 사람일지라도 마침내 이별할 때가 있고, 마음도 변하는 상태가 찾아오는 것이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너는 오랫동안 사려 깊은 행동으로 나를 편안케 해주었다.”

참으로 자상하고 따순 말씀이다. 마지막 숨이 넘어가는 상황에서도 어떻게 저런 인간적인 평화와 자비와 행복과 입멸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부처님의 이런 실화를 볼 때마다 필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인간적인 성자는 역시 부처님이라고 생각한다. 그래, 필자도 ‘부지런히 쓸고 닦아야지.’)

사람이 살고 죽는 일을 ‘일대사(一大事)’라 한다. 

삶은 가장 크고 중요한 한 사업이란 뜻이란 말이다. 또 그 인연을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이라고 한다. 우리가 태어나서 불법(佛法)의 인연을 만나 그 불법의 인연 속에서 편안하게 살다가 그 불법의 인연 속에서 또 기쁘고 평화롭게 숨을 거두는 것처럼 최고로 크고 행복한 인생 사업이 어디 있겠는가.(필자도 아버지의 죽음 등 수많은 죽음을 옆에서 지켜보았지만, 죽음은 다 힘들었다. 그래서 필자는 아침저녁으로 늘 죽음명상을 하고 산다. 죽음 앞에 두려워지지 않으려고, 죽음과 친구가 되려고.)

헌데, 그래도 ‘쬐끔’은 나이가 드니 은근히, 걱정도 된다. 부처님처럼, 부휴 선사처럼, 필자도 다 비워버리고, 지워버리고, 단풍 든 깊은 산속 움막집에서 막 우려낸 “새 차 한 주발”과 “한 권의 경전”을 앞에 두고 기쁘고 행복하게, 담담하고 평화롭게, 참으로 아름답고 인간적이게 잘 죽을 수 있을까. ‘웰 엔딩(Well Ending)’ 할 수 있을까.

선사 세수 49세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당시 덕유산 초암에 은거하고 있는데, 왜적들이 물러갔다고 생각하고 도량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수십 명의 왜군이 선사를 둘러싸고 칼을 휘둘렀다. 그래도 선사는, 차수(叉手)를 한 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태산 같은 선사의 일체부동의 모습에 왜구들은 매우 놀랐다. 그러매, 왜구들은 오히려 절을 하고 물러났다. 하지만 그런 부동의 선사도 참으로 여리고 선한 서정(抒情)과 인간적인 내면을 감추고 살진 않았다.

‘바람에 나부끼며 어촌을 지난다./ 구름 장삼 모래 울리는 백리 명사길/ 그대 생각에 애가 닳는구나.’

부휴 선수가 당시 전쟁터에 있던 ‘법 형제’인 사명당을 염려하고 그리워하며 보낸 시다. 시만 놓고 보면 그야말로 연인의 정이 절절 배어 있는 연시(戀詩)다. 

부휴와 사명당은 당시 조선 이난(二難: 우열을 가리기 힘든 두 사람이라는 뜻)으로도 유명했다. 아, 필자도 이제 아는 첸 그만하고 시끄러운 것들 다 데리고 산속 깊은 단풍으로 들어가 군더더기들도 다 지워버리고 ‘새 차 한 주발 경전 한 권’ 앞에 놓고 ‘무생’을 즐기고 배우고 싶다. 부휴 선사 덕분에 오늘, ‘무생’이 진짜 삶임을 비로소 알았다.

승한 스님 빠리사선원장 omubuddha@hanmail.net

[1655호 / 2022년 11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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