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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사람들의 화려한 추태

기자명 성태용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고, 소인의 덕은 풀과 같다. 풀은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눕는다”(‘논어’)라는 말이 있다. 쉽게 말하면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지향에 따르기 마련이라는 말이다. 어떤 조직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윗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랫사람들은 금방 안다. 그리고 윗사람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쏠리게 마련이다. 윗사람이 아무 작용을 하지 않는 것 같아도 조직 전체의 성격과 지향이 가장 위에 있는 한 사람의 인격성에 좌우된다. 

그래서 윗사람 된다는 것은 어렵고, 그 자리가 무거운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 정치 현실에는 이렇게 자리의 무거움과 윗사람의 책임이라는 상식이 실종되어 있다. 그 실종사태는 하루 이틀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유체이탈 화법이라는 이상한 신조어를 만들어내게 한 대통령부터, 아랫사람이 한 것이라 나는 잘 모르겠다는 식으로 발뺌했던 어떤 ‘원장’에 이르는, 참으로 찬란한 역사적 자취들이 있다. 

그 역사적인, 부끄러운 자취들이 이번 이태원 참사를 겪으면서 다시 화려하게 재현되고 있는 모습을 본다. 온 국민의 슬픔을 배경으로 재현되는 그 화려한 추태의 대비가 더더욱 슬픈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부터가 그렇다. 그 담화 전체에 진정성 있는 사과와 사죄의 표현이 없다. 슬프다, 가슴 아프다는,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는 표현이 전부이다. 얼마 시간 차이를 두지 않고 있었던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도대체 무엇을 했느냐?”고 특정 국가 조직을 강하게 질책하였는데, 그런 조직의 수장이 바로 대통령이다. 그런 잘못을 인식했다면 대국민 담화에는 당연히 그런 조직의 장으로서 깊은 사죄를 하는 것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참사라는 표현보다 사고라는 표현을 고집하는 것 자체가 책임의식의 결여라고 볼 수밖에 없다. 

탕왕을 도와 은왕조를 일으킨 이윤은 백성 하나가 고통을 당하면 마치 자기가 밀어서 구렁텅이에 빠뜨린 듯이 여겼다 한다. 그런 의식을 지닌 이가 윗자리에 있다면, 그래서 그 아랫사람들이 모두 그런 의식을 본받는다면, 그렇게 위에서 불어내린 바람이 저 하부 조직까지 불어 내린다면,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참사가 일어날 수 있을까? 

그렇게까지 바라진 않더라도 모든 정치인과 관료들은 국민의 고통을 자신들의 책임으로 돌리는 의식을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 예를 들어 보자. 어떤 이들은 외국에서 수입된 축제에 젊은이들이 무분별하게 휩쓸린 것이 사태의 근본 원인이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떤 일반적인 개인의 수준에서 그렇게 말한다면 문제가 없다. 그건 한 개인의 문화에 대한 의견 표명일 뿐이고, 당연한 비판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떤 지위에 있는 정치인이나 관료라면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말하기 이전에 젊은이들이 건강하게 즐길 수 있는 축제 문화를 유도하고 조성해주지 못한 문화정책을 반성해야 한다. 그런 문화적인 측면의 반성부터 시작하여, 대통령이 강하게 질책했던 여러 문제점을 생각한다면 이태원의 참사는 단지 우발적인 사고가 아닌 게 분명하다. 여러 원인들이 겹겹으로 작용하여 일어난 재앙이요, 참사이다. 그리고 그 참사의 가장 마지막 원인은 안전을 책임져야 할 사람들의 책임의식 실종이다. 또 그러한 책임의식 실종은 조직의 가장 높은 곳부터 시작한 것이 틀림없다. 

풀이 어떤 방향으로 쏠려 눕는 것에 풀 탓을 할 것인가? 끊임없이 풀 탓을 하며, 그렇게 쏠리도록 만든 바람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생각하지 않는 풍토, 그리고 자신이 바람의 시작점이라는 것을 생각지 않는, 윗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책임의식의 실종. 이것이 바뀌지 않으면 우리 역사에 계속 부끄러운 기록들을 추가하게 될 것이다.

성태용 건국대 명예교수 tysung@hanmail.net

[1657호 / 2022년 11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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