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강경’ 유감

기자명 성원 스님

북극 한파가 심술을 부린다. 입동과 소설이 지난 날씨가 너무 따스하다고 생각할 즈음, 갑자기 한파가 찾아왔다. 일기예보가 너무나 세세히 지구본을 돌리면서 알려주는 덕분에 짐작으로도 훤히 기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예전에는 정말 갑자기 찾아오는 북풍한설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을 것이다. 너무나 정확한 예측을 전해 듣고 나름 준비를 하고 나니 추위로 고생스럽지는 않지만 한켠에서는 뭔가 허전한 기분도 든다. 삶의 여운이 사라져 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인류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본능적 공포심이 있다. 유사 이래로 미래에 대한 탐구는 끊이지 않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해 왔다. 현재에 와서 과학적 접근법으로 견주어보면 대부분 비과학적이라고 결론 짓지만, 인간 영혼의 질량을 측량하지 못하는 과학만으로는 감성적 세상은 언제나 비과학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느낌이 전해주는 시공간은 이성적 물리적 계측과는 확연히 다름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현대적 학문을 배운 사람들처럼 과학적 접근과 합리적 사고를 절대적 가치로 여기고 살아왔고, 지금도 대부분 사유의 바탕은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엄연히 다르고 이제 나이가 드니 막연히 다른 현실에 기웃거리기도 한다. 

국가의 최고 지도자 선출이 있을 때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소위 ‘점집’이 붐빈다고 한다. 미국 선거철이 되면 점성술사의 문턱이 닳는다고 하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흰 수염을 날리는 도사(道士)들의, 도무지 과학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말에 휘청이고 있는 현실을 보고 있다. 일부분에서 미래의 일을 점지하는 능력이 표출되기도 하니 무작정 비난만 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 미래를 짊어지고 나아갈 어리고 젊은 사람들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전하지 않을까 더 큰 걱정이다. 체계적이지 않은 접근은 자꾸 우연과 요행에 기대려는 심리를 유발시켜 넓게 보면 더 큰 문제로 되돌아올 것이기에 염려스럽다. 

초발심자들에게 불교에 들어와서 무엇을 가장 배우고 싶냐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금강경’이라고 한다. 사실 삼법인과 오온, 육근, 육식의 의미도 파악하지 않은 사람들은 ‘금강경’의 내용에 접근할 수 없다고 해도 막무가내다. 얼마 가르치다 보면 본질적인 전체 내용의 주제는 파악하지 못하고 수업 중 들었던 자신에게 와 닫는 몇 구절을 마음에 품고서는 ‘금강경’ 이야기를 한다. 물론 그 구절이 경전에 분명 있고 법사가 말한 구절이니 틀리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공부하다 보면 절대 ‘금강경’의 본질에 접근할 수도 없고 색이 공한 이치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말이다. 

불교의 가르침은 매우 과학적이라고 하는데 일부 몰이해한 사람 중에는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 철학에 가깝다고도 한다. 불교가 과학적이라고 말하려면 그 접근에 있어서도 과학적이고 합리적 사고로 접근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이러한 접근을 터부시하고 돈오(頓悟)적 사고에 너무 빠져들어 학문적 접근을 등한시한다. 깨달음의 문턱에서야 당연히 우리 알음알이의 인과법칙으로 이해할 수 없겠지만 불교에 첫 발걸음을 디딘 사람들이 ‘금강경’을 학습하려고 덤벼드는 것은 정말 우연이나 요행을 바라는 심리 같다고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기우일까?

신앙을 너무 비합리적 감성으로 접근하는 풍토는 불교를 너무 막연하게 만들어버리게 되는 것 같다. 한편 오래 신행 활동을 한 불자들도 너무나 쉽사리 “제가 불교에 대해서 뭘 아나요” 한다. 겸손 같지만 실제로 체계적인 교리학습이 이루어지지 않은 탓이다. 계절의 흐름같이 기본교리부터 불교에 접근하여 마침내 ‘금강경’에 이르는 학습으로 탄탄한 불자들이 엮이면 좋겠다. 한파가 극성인 이 겨울에는 북극곰같이 웅크리고 앉아 깊은 화두 삼매에 들고 싶다.

성원 스님 약천사 신제주불교대학 보리왓 학장
sw0808@yahoo.com

[1660호 / 2022년 12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