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 한반도 불교 전파와 불교 의학

기자명 이현숙

치료할 능력·인력·공간 모두 갖췄던 곳이 사찰

아무도 못 고친 신라 성국공주의 병 포교사 의승 아도가 치료 
대가로 흥륜사 창건…모록 누이동생 최씨가 신라에서 첫 출가 
수많은 목숨 구하며 낯선 땅서 세력 확장…의학은 포교의 기반 

신라 흥륜사 터에 새롭게 지은 경주 흥륜사. 현재 사적으로 지정돼 있다. [문화재청]
신라 흥륜사 터에 새롭게 지은 경주 흥륜사. 현재 사적으로 지정돼 있다. [문화재청]

어렸을 때 외할머니를 따라 종종 절에 갔었다. 할머니가 불공을 드리는 동안 마당에서 혼자 놀다 보면, 가끔 스님도 아닌데 절에서 사는 사람을 마주치기도 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몸이 아파서 절에서 정양하는 분이었다. 

2002년 박사논문 ‘신라의학사연구’를 제출하면서, 한국고대의학이 불교의학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찰이 몸이 아픈 사람을 치유하는 장소가 된 것은 절이라는 공간이 생긴 이래 지속되었던 것이다. 기독교가 한국에 뿌리내리기까지 의료선교사들의 활약에 큰 도움을 받은 것처럼, 불교가 처음 한반도에 전파되는 과정에서 불교 의학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 신라의 경우, 불교가 정착하기까지 불교의학이 지닌 치유력이 큰 영향을 미쳤다. 

1145년 고려 인종의 명으로 편찬되었던 ‘삼국사기’ 권4 법흥왕 15년(528) 조에 따르면 “불법이 비로소 유행하였다. 처음 눌지왕 때에 승려 묵호자가 고구려에서 일선군으로 왔는데, 일선군 사람인 모례가 집 안에 굴을 파서 방을 만들고 편히 머물게 하였다…때마침 왕의 딸이 병이 중하므로 왕이 묵호자에게 향을 사르고 소원을 말하게 하였더니, 병이 곧 나았다. 왕이 매우 기뻐하여 선물을 매우 후하게 주었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고려 후기 몽골의 침입을 받아 전 국토가 고통을 받던 시기 일연 스님(1206~1289)은 ‘삼국유사’를 찬술하여 불법이 한반도에서 이룬 여러 기적과 업적들을 정리하였다. 일연은 ‘아도가 신라에 오다’라는 아도기라 조항에서 좀 더 상세하게 살을 붙여 설화를 기록해 두었다. 설화는 옛날이야기이므로 사실 역사 자료로 그대로 인용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오랜 세월 전승되어 온 이야기의 내면에 들어있는 요소들을 잘 분석하면, 역사적 사실을 규명하는 데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일연 스님은 신라에 불교를 전해준 아도화상에 대한 비문 ‘아도본비’를 인용하여 아도 스님의 치병 설화를 기록하였는데,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신라 미추왕 3년(264) 성국공주가 병이 났는데, 의료를 담당하였던 무당인 의무(醫巫)도 고치지 못하자 사람을 사방으로 보내 치료해줄 의원을 구하게 하였다. 이때 아도 스님이 고구려 승려로서 포교를 위해 신라 왕경에 왔다가 신라 사람들이 죽이려고 하자 일선현(현재 구미시 해평면 낙산리)의 모록이라는 사람 집에 숨어 있었다. 이 소식을 듣고 아도 스님은 급히 대궐로 들어가서 마침내 성국공주의 병을 고쳤다. 왕은 크게 기뻐하며 그 소원을 물으니, 스님이 대답하기를, “빈도(貧道)는 백에 하나도 구할 것이 없고, 다만 천경림에 절을 지어 불교를 크게 일으켜 나라의 복을 비는 것이 소원일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은 이를 허락하고 공사에 착수하도록 명령하였다. 당시 풍속이 질박 검소하여 띠풀을 엮어 지붕을 이었는데, 아도는 절 이름을 흥륜사라 하고 여기에 머물면서 강연하니 가끔 천화(天花)가 땅에 떨어졌다고 한다. 모록의 누이동생 사씨가 스님에게 귀의하여 비구니가 되어 나중에 영흥사라는 절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신라에서 처음으로 출가하여 승려가 된 사람은 여성이었던 것이다.

일연 스님은 아도화상에 대한 다른 기록들도 주로 달아두었다. 즉 ‘해동고승전’ 권1, 아도 조를 인용하여 “원래 천축(현 인도) 사람이고 오나라를 통해 왔다기도 하고 고구려에서 위나라로 갔다가 뒷날 신라로 왔다고 하는데 무엇이 옳은지 알 수 없다”라고 하여 아도 화상에 대한 다양한 전승을 소개함으로써 역사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아도 화상이 고구려 사람인지 혹은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온 인도 사람인지 현재의 자료만 가지고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신라의 불교가 검은 피부를 가진 인도인을 포함하여 중국과 고구려를 거쳐 온 포교 집단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아도 화상이 어느 왕의 딸을 치유했는지 확실하지 않다. 기록에 따라서는 미추왕 또는 눌지왕의 공주라고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공주를 치료해 준 대가로 불교의 뛰어난 점을 인정받았으며, 그 대가로 왕실에서 절을 지어주었다는 것이다. 선덕여왕이 636년 병이 나자 가장 먼저 흥륜사의 승려 법척이 와서 치료하였던 것으로 보아(‘삼국유사’ 권5, 신주 6, 밀본최사 조), 흥륜사의 의승들이 의무를 몰아내고 왕실의 의료를 지속적으로 담당해 온 것으로 보인다. 

시간과 공간은 달라도 사람 사는 이치는 매한가지인가 보다. 아도가 신라 최초의 사찰인 흥륜사를 창건하는 과정은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이며 의사였던 알렌이 1884년 갑신정변 때 칼에 찔려 사경을 헤매던 명성왕후의 조카 민영익을 수술로 치료하자 고종이 광혜원이라는 병원을 만들어 준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왕실에서 비용을 대고 치유공간을 만들어 불교 포교사 및 기독교 선교사가 직접 운영하도록 한 것이다. 미국 북장로교에서 선교할 수 있는 의사를 한국에 파견하였듯이, 한반도에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왔던 포교사들 역시 치료 능력을 겸비한 의승들이 많았다,  

신라 사회에서 흥륜사는 심신을 치유하는 공간으로 내내 자리매김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김현이 호랑이를 감복시키다’라는 설화에서 짐작할 수 있다. 신라 원성왕 때 8월 대보름 탑돌이에서 서로 사랑을 느낀 김현은 여자 집에 가서 하룻밤을 지냈는데, 알고 보니 호랑이가 처녀로 변신한 것이었다. 호랑이 낭자는 자신의 세 오라버니가 사람을 많이 살상한 죄를 씻고 또 김현을 출세시키기 위하여 스스로 도성 안에 뛰어들어 사람들을 다치게 하겠다고 하면서 그 치료약으로 흥륜사의 나발 소리를 듣고 장(醬)을 바르면 나을 것이라고 하였다. 다음 날 도성 안에 나타난 호랑이는 약속대로 김현을 만나자 스스로 김현의 칼로 자결하였다. 김현은 호랑이가 죽은 연유를 숨기고 그 말에 따라서 치료하자 그 상처는 모두 나았다고 한다. (‘삼국유사’, 권5, 감통 7, 김현감호)” 

이 이야기에서 주목할 점은 “호랑이 발톱에 할퀴어서 상한 곳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흥륜사의 장을 바르고 나발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다. 나발이란 현재도 대취타에서 쓰는 대형 소라껍데기의 나각과 비슷한 것으로 흥륜사의 불공 의례 때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흥륜사의 장이란 단순한 된장 간장이라기보다는 흥륜사에서 생산하는 의약품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즉 불공 의례와 흥륜사가 생산하는 약물로 호랑이에 물린 상처를 치료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흥륜사가 지닌 치유력은 불교 의학에서 나온 것이다. 

어렸을 때 내가 절 마당에서 혼자 놀다가 만났던 그 아픈 아저씨는 바로 불교 사찰이 가진 치유력의 유구한 역사 선상에 있다. 불교의학은 불교가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사회 속에서 치유 역할을 할 수 있었던 토대가 되었으며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하겠다.

이현숙 한국생태환경사연구소장 rio234@naver.com

[1663호 / 2023년 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