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행보살은 현재 포교사의 길을 걷고 있지만 불과 5년 전만 하더라도 신실한 가톨릭신자였다. 세례도 받고 꾸준히 성당을 다녔다. 그러던 그가 성남 봉국사 주지 혜일 스님과 인연을 맺게 되면서 절에 다니기 시작했다. 지인들은 ‘얼마 다니다 제풀에 지쳐 안가겠지’했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다녔다.
봉국사 불교대학 7기로 입학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기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배움의 열정은 회장 소임으로까지 이어졌다. 코로나19 여파로 강의는 비대면으로 진행됐다. 영상을 보고 또 보고 강사의 말을 외울 정도로 돌려봤다. 불교는 맹목적인 믿음이 아닌 자신을 갈고 닦는 수행의 종교였다. 마음 속에 불교가 쏙 들어왔다. 배우면 배울수록 부처님 가르침을 더 공부하고 싶었고, 좋은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공부와 일을 병행하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혜일 스님이 포교사 시험을 권유했다. 마다할 것이 없었다. 부처님 법을 전하는 포교사는 그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혼자하는 것보다 여럿이 함께 전법의 길에 나서는 것도 좋겠다 생각했다. “한번 도반은 영원한 도반”이라며 설득했다. 7기 40명 중 절반이 포교사 시험에 응시하기로 뜻을 모았다.
난관에 봉착했다. 영상으로만 강의를 듣다보니 대면 시험 부담이 크다는 도반들의 하소연이 쏟아졌다. 팔을 걷어붙였다. 당연한 일이 아님에도 회장이라서, 도반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4년치 포교사 시험 문제를 모았다. 일일이 편집해 기출 문제집을 만들었다. 또 문제를 분석해 다년간 자주 출제된 문항만 뽑아 요약본을 제작했고, 예상 문제집도 만들어 공유했다. 다 같이 포교사로 활동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분량이 워낙 방대하다보니 포기자가 속속 나왔다. “끝까지 같이 가야한다”며 직접 전화까지 돌리며 도반들을 설득했고, 그들을 위한 족집게 문제를 만들어 배포했다.
코로나19로 불교대학 졸업 후 1차 시험까지 6개월의 공백이 생겼다. 마음가짐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는 시기였다. 그럼에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오히려 우리에게 주어진 천금같은 기회고, 더 악착같이 해야한다며 도반들을 독려했다. 시험, 연수, 면접까지 길고 긴 레이스를 시작도 하기 전에 지레 겁먹고 돌아서버리면 그동안의 노력이 헛수고가 될 수 있다며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자료를 나누고, 불교방송 영상을 공유하며 복습의 시간을 가졌다.
1차 시험 발표날, 봉국사에서만 22명의 합격자가 나왔다. 놀라운 결과였다. 그는 “우리절에서 포교사 20명만이라도 나왔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는데 부처님의 가피덕에 무사히 1차 관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마지막 면접 대비도 철저했다. 포교사 선배들에게 물어 예상 질문지를 추렸고, 도반들과 롤플레잉을 했다. ‘툭 치면 툭’하고 나올 정도로 연습했다. 그리고 최종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도반들과 함께 포교사의 길을 걷겠다’는 그의 열정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8월24일 법주사에서 열린 포교사단 팔재계수계대법회에서 그렇게 바라던 도반들과 포교사로서 첫 발을 내딛었다.
그의 포교사 만들기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교정교화활동을 해보니 인원이 턱없이 부족했다. 불자가 많이 없는 것이 문제였다. 먼저 지인들에게 불교 공부를 권했다. 신심이 있어야 포교사 활동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문수행 포교사는 만나는 사람마다 “저와 운명적인 만남이 이뤄졌습니다. 포교사가 되실 분이군요”라며 너스레를 떤다. 얼핏 농담처럼 들려도 마음은 진심이다. 그녀의 권유에 “해볼게요”라는 말이 돌아오면 없던 힘도 생긴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잖아요. 발심하면 행하게 돼있죠. 포교사의 손에 지역 포교의 미래가 달려있듯 앞으로도 계속 독려하며 포교사의 길로 이끌거에요.”
김민아 기자 kkkma@beopbo.com
[1663호 / 2023년 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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