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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저게 뭐지’ 반응과 인식통로

‘저게 뭐지’ 반응, 17찰나설 옹호하는 과학적 증거

뇌는 특별한 것 탐지하고 인식…‘에러’ 혹은 ‘돌출’된 인식
뇌파 관측을 통해 뇌의 외부대상 인식하는 과정 분석 가능
대상 인식하는 과정 분석하는 것은 테라와다 교학의 백미

붓다는 ‘마음은 대상을 아는 것’이라고 하였다. 역으로, 대상이 없으면 마음도 없다. 안다는 것은 인식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한 우리는 인식을 하거나 하지 않는 과정을 반복한다. 인식하지 않을 때의 마음을 바왕가(bhavaṅga)라 한다. 단지 존재를 지속시켜주는 수동적 마음인 존재지속심(存在持續心)이다. 바왕가의 마음으로 있다가 인식대상이 나타나면 바왕가에서 깨어나 인식과정을 거치고 다시 바왕가로 돌아간다.

대상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나의 마음이 결정된다. 그만큼 인식은 마음의 괴로움, 즐거움, 평온함을 결정하는데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인식은 감각기관을 통한다. 다섯 가지 외부감각[형색, 소리, 냄새, 맛, 감촉]을 받아들이는 다섯 가지 감각기관[눈, 귀, 코, 혀, 몸(피부)]이 있다. 이 감각기관들을 다섯 가지 근[五根] 혹은 문[五門]이라 한다. 다섯 가지 감각 이외에도 붓다는 ‘떠오르는 생각’도 감각된다고 보았다. ‘떠오르는 생각’은 과거의 기억과 같은 추상적인 것이다. 붓다는 외부감각과 관계가 없는 이런 추상적인 생각을 감각하는 감각기관을 의근(意根)이라고 설정하였다. 따라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외부대상은 오문(五門), 내적 마음에서 생성되는 내부대상은 의문(意門)을 통해 인식된다. 각각 오문인식(五門認識) 및 의문인식(意門認識)이라 한다. 부처님 열반 후 상좌부 스님들은 인식과정을 매우 세세하게 관찰하고 분석하였다. 인식과정 분석은 테라와다 교학의 백미(白眉)다.

여기서는 오문인식 과정만 살펴보자. 외부감각 대상은 ‘매우 큰 것’ ‘큰 것’ ‘작은 것’ ‘매우 작은 것’으로 나뉜다. 반드시 물리적으로 큰 것이 큰 대상이 아니라, 나의 마음에 큰 충격을 주는 것이 큰 대상이다. 보물찾기를 하는 중이라면 숨겨진 작은 보물은 크기는 작지만 ‘매우 큰 것’이 된다. 대상은 17심찰나(心刹那)에 걸쳐 인식된다. 17개의 마음이 연속하여 지나가면서 대상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오문인식의 대상은 물질이다. 즉, 형색은 물체의 빛, 소리는 공기의 파동, 냄새는 냄새 물질, 맛은 맛 물질, 감촉은 피부에 닿는 물리적 충격이다.

17개의 마음이 지나가는 과정을 인식통로(인식과정, vīthi-citta)라 한다. 아비담마 교학은 마음과 마찬가지로 물질도 일어나고 사라지면서 존재한다고 설한다. 그런데 물질은 한 번 일어나면 17심찰나 동안 머문다. 물질이 머무는 17심찰나 동안 17개의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과정을 통하여 물질에 대한 한 번의 인식이 일어난다. 인식통로를 지나가는 동안 일어나는 마음들은 판에 박은 듯 일정하다. 그 통과과정은 바왕가의 흐름 → 예비·변환(1~3번째 심찰나) → 입력·수용(4~6번째 심찰나) → 조사·결정(7~8번째 심찰나) → 처리(9~15번째 심찰나) → 여운(16~17번째 심찰나)의 단계를 거친다. 이러한 하나의 인식과정이 끝나면 다시 바왕가의 마음으로 돌아간다. 우리가 대상을 뚫어지게 주시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17심찰나(0.23초) 동안 한 번 인식하고, 쉬었다가 다시 17심찰나 동안 인식하는 과정을 반복한다고 아비담마는 설명한다.

하나의 인식과정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에는 새로운 인식대상이 나타나도 우리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아비담마는 설한다. 우리는 그러한 가르침이 뇌과학적 진실임을 지난 연재에서 ‘주의맹(attention blink)’ 현상으로 살펴보았다. 뇌의 자원(資源)이 하나의 인식과제에 동원되면 그 대상에 대한 인식이 완료되기 전에 다른 대상을 인식하는 데 동원될 수 없기 때문이다.

17찰나설을 옹호하는 다른 과학적 증거는 ‘저게 뭐지’ 뇌파(EEG)다. 대상을 만났을 때 뇌가 반응하는 과정을 뇌파를 통하여 직접 관찰할 수 있다. 갑자기 소리가 나거나 물체가 나타나면 우리의 주의는 순간적으로 그 대상으로 향한다. 조용한 곳이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쉼 없이 파도로 출렁이는 바다 가운데 갑자기 돌고래가 튀어 오르면 우리의 주의는 즉시 그쪽으로 향한다. 사방에 같은 파도가 계속되면 우리는 특정한 파도에 주의를 주지 않는다. 하지만 파도와는 다른 어떤 현상(예, 돌고래)이 나타나면 즉각 그 대상으로 주의가 간다. 이처럼 주의가 가는 대상은 주변과는 다른 특별한 것들이다. 이들은 보통과는 다른 것, 즉 일종의 ‘에러(error)’ 혹은 ‘돌출(salience)’이다. ‘에러’ 혹은 ‘돌출’은 특별하고, 특별한 것은 큰 인식대상이 된다. 우리의 뇌는 특별한 것을 탐지하고 인식한다. 특별한 것은 대부분의 경우 삶에 가치가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외부자극을 탐지하고 주의가 그쪽으로 향하는 과정을 뇌과학에서는 ‘지향반사(orienting reflex, von Restorff effect)’라 한다. 쉽게 말하면 ‘저게 뭐지’ 반응(“what is it” response)이다. ‘저게 뭐지’ 반응에서 나타나는 뇌파를 ‘사건 연관 전위(Event-related potential)’라 한다. ‘에러’ 혹은 ‘돌출’ 사건에 연관되어 발생하는 뇌파라는 뜻이다. 뇌파는 뇌신경 세포들의 활성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전위를 머리 피부에서 측정한 값이다. 뇌파는 뇌 속에 있는 신경세포 하나하나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많은 신경세포의 활성이 합해진 것이다. 뇌파는 축구경기장 밖에서 관중들의 함성을 듣는 것에 비유된다. 골이 들어가지 않은 상황에는 그냥 웅성웅성하는 정도지만, 골이 들어가면 매우 큰 함성이 들린다. 관중 개개인의 소리가 아니라 전체가 내는 소리가 뇌파에 해당한다. 즉, 뇌파는 센서가 부착된 특정한 뇌 부위의 전체적인 활성을 나타낸다.

참고 그림은 ‘소리’에 대한 뇌파를 머리의 정수리 부근에서 측정한 그래프이다. ‘소리’ 자극 후 크게 두 개의 뇌파 파동이 나타난다. 구체적으로는 200밀리 초(ms) 전후에 나타나는 파동(N2)과 300밀리 초 전후에 나타나는 파동(P3)이다. 이 두 뇌파 파동은 소리에 대한 한 번의 인식과정을 나타내는데, 0.3~0.4초 걸려서 ‘저게 뭐지’ 반응이 일어남을 보여준다. 이만큼의 시간이 걸려서 소리가 인식되는 과정은 아비담마에서 설명하는 ‘인식통로(vīthi-citta)’를 지나가는 과정에 대비된다. 뇌파는 뇌신경 세포들의 활성을 머리피부 → 센서 → 컴퓨터를 거쳐서 보여주는 뇌활성이다. 이런 측정과정을 거치는 동안 약간의 시간이 지체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실제로 뇌에서는 이보다 더 빠르게 소리에 대한 반응이 일어났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저게 뭐지’ 반응에 걸리는 시간은 ‘인식통로’를 통과하는 17심찰나(0.23초) 시간에 매우 근접한다고 할 수 있다. 한 번의 인식이 일어나는데 걸리는 시간이 아비담마의 설명[인식통로]과 뇌과학적 현상[저게 뭐지 반응]이 매우 유사하지 않은가.

17심찰나를 통한 인식과정을 상좌부 스님들은 어떻게 알았을까? 이런 과정을 이론적으로 추론할 근거가 있었을까? 필자가 추론하는 한 그러한 근거는 없다. 깊은 수행을 통하여 대상이 인식되는 과정을 하나하나 뚜렷하게 느꼈을 것이다. 스님들은 ‘마음은 극히 짧은 시간에 일어났다 사라진다[刹那生·刹那滅]’고 한다. 0.23초(17심찰나) 동안에 17개의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진다. 하나의 마음이 일어나서 사라지는 데 걸리는 시간을 1심찰나라고 하였는데, 현대시간으로는 1/75초, 약 0.013초이다. 그렇게 짧은 시간에 하나의 마음이 일어난단 말인가. 뇌과학으로 살펴보자.

문일수 동국대 의대 해부학 교수 moonis@dongguk.ac.kr

[1665호 / 2023년 1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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